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동주(타자)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KBO에 단 4명 뿐인 통산 슬래시 라인 3-4-5의 일원이다.'''[* 나머지는 [[양준혁]], [[최형우]]와 [[김태균]].] 컨택과 파워 양면에서 리그 최상위급 능력을 발휘했으며, 이른바 우동수 트리오에서 파워는 가장 쳐졌지만 정교한 타격과 타점을 쓸어담는 컨택, 적절한 파워로 리그 최상급 타자로 군림했다. 전성기 시절 김동주는 부상으로 커리어로우를 기록한 2006년을 제외하면 리그 내에서 기복없이 꾸준히 활약을 했다. 김동주의 전성기를 데뷔 2년차인 1999년부터 마지막 규정타석을 채우고 지명타자 골든글러브 경쟁을 했던 2011년까지로 보고 이 기간내에서 2006년의 성적과 규정타석을 못채운 2005년의 성적만 제외하고 살펴보면,[* 그 2005년에도 타석이 모자랐을 뿐 비율상으로는 OPS가 9할을 넘겼다.] - 출루율이 가장 낮은 해가 2011년의 '''0.393'''이었으며, 사실상 신인 기간인 1999년의 0.394를 제외하면 나머지 기간동안은 전부 4할 이상의 출루율을 기록했다. - 타율이 가장 낮은 해가 2004년과 2011년의 0.286이었는데, 타율이 낮지 않았음에도 타율과 출루율의 갭은 항상 7~8푼 이상을 유지했고, 1할을 넘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오히려 타율이 가장 낮았던 두 시즌도 타출갭은 1할 넘게 차이가 났다.] - 장타율이 제일 낮은 해가 2004년의 0.467이었으며[* 데뷔시즌인 98년의 장타율은 무려 0.473.], 2011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히 5할 이상의 장타율을 넘겼다. - 이러한 높은 출루율과 장타율 덕분에, 2004년과 2011년을 제외하고 나머지 시즌의 OPS는 모두 0.9 이상이었으며, 1 이상을 기록한 시즌도 무려 3번이나 된다.[* 타율 2위와 홈런 31개를 기록한 2000년, 타격왕과 출루율 2위를 기록한 2003년, 출루율-장타율 2위와 OPS 1위를 기록한 2009년.] - 그래서 이러한 타격능력치를 잘 반영했다고 평가받는 WRC+ 스탯은 스탯티즈 기준으로 2006년을 제외하면 99년과 2011년 사이에 '''단 한번도 14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 그리고 이 성적들을 KBO 최악의 투수구장인 '''잠실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면서 기록했다. 30홈런을 넘긴 시즌은 단 1번 뿐이지만 잠실구장을 홈으로 썼음을 감안해야 한다. 또한 통산 273홈런을 쏘아올렸고, sWAR도 [[최정]]이 2020년에 경신하기 전까지는 66.35로 은퇴한 2014년 이후 6년 동안 까지 가장 높았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타자로서는 비판할 구석이 전혀 없던 선수이다. 3루수로서는 벌크업으로 인해 수비범위는 좁았지만 유격수 출신의 준수한 어깨를 바탕으로, 말년의 노쇠화와 잦은 부상만 아니었다면 충분히 시즌 전체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준수한 수비력을 보여주었다. 물론 압도적인 타격능력으로 좋은 점수를 받았겠지만, 수비력으로 비교우위를 가진 선수들을 제치고 국제대회에 거의 개근하다시피 하였던 국가대표 3루수 겸 붙박이 4번타자였다[* 단적으로 이승엽과 이대호가 있던 베이징 올림픽에서도 4번타자는 김동주의 몫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