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동주(타자) (문단 편집) == 여담 == * 15년 이상 [[두산 베어스]]를 이끌어 왔던 선수로, 원클럽맨이다. 대표적인 별명은 '''두목곰'''. 단, 2004년 시즌 종료 이후 돌연 은퇴를 선언하다 2개월 후인 2005년 1월에 다시 번복하며 선수 복귀했었다. [[https://n.news.naver.com/article/055/0000031833|#]] 은퇴 선언과 번복을 계기로 전처의 인터뷰가 나오며 대중들이 김동주 본인의 사생활에 대해 인지하기 시작했다. 2004년 시즌 종료 당시 이혼때 받은 판결 때문에 연봉협상 때 삭감될 것을 생각해 은퇴를 선언했었다고 한다. * [[일본프로야구]]로 진출하는 것을 희망했으나 1회 WBC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부상 등이 부정적인 영향을 주어 바라던 일본행은 결국 무산되었다. 두산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2014년 시즌 기준 두산에선 [[홍성흔]]과 함께 두산에서 우승반지를 낀 적이 있는 둘 뿐인 현역이었다. * 2010년 시즌 중반에 광고 하나를 찍었다. 제품은 '''비듬샴푸'''광고이다.[br][youtube(bWHtoWaPjUY)][* 이 광고는 히어로즈 시절 [[이현승(야구선수)|이현승]]이 광고 모델을 하였다가 모델이 바뀌었다.] * [[코미디빅리그]]를 매우 즐겨본다고 한다. * 덩치도 크고 힘도 좋아 싸움 실력이 아주 좋다고 한다. 현역 시절엔 일명 ‘벤클 탱커’ 라는 별칭도 갖고 있을 정도. 덕분에 당시 두산은 벤클 최강팀으로 군림했고, 폭주하는 김동주는 당시 삼성 라이온즈[* 리그 전체에서 최고참급인 [[양준혁]]과 고려대 1년 선배이자 벤클마다 김동주 못지않은 활약상(...)을 펼쳤던 [[진갑용]]이 있었다.]나 한화 이글스[* 리그 최고참 급인 [[송진우(야구)|송진우]], [[구대성]], [[정민철]] 등이 현역이었고 고려대 2년 선배 [[조성민]]도 한화에서 활약하고 있었다.]를 제외하고는 막을 팀이 없었다. 아니면 두산 코치들이 직접 말린다던지. 2011년 10월 2일, [[LG 트윈스]]와의 벤클당시 나이가 더 많은 이병규에게 욕하는 것처럼[* 사실 송신영에게 그런 것이다. 잘 살펴보면 송신영이 두산쪽에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김동주에게 맞선 것.] 구도를 잡은 카메라워크로 인해 오해가 생긴 적도 있다.[* 은퇴 후에는 이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당뇨 지병으로 인한 관리 때문에 살이 많이 빠졌지만 선수시절 당시에는 엄청 컸다.] * kbo 전설의 벤치클리어링으로 기억되는 봉중근-안경현의 벤치클리어링, 사실 봉중근은 안경현이 달려올 때 안경현 뒤에서 마운드로 달려오는 김동주가 더 무서웠다고 한다. 실제로 당시 벤치클리어링을 다시보면 안경현 뒤에서 풀 스프린트로 달려오는 김동주와 이를 보고 도망가는 봉중근이 보인다 후에 방송에서 김동주를 잡아준 심수창[* 심수창은 김동주의 고교(배명고등학교) 후배이다.]이 너무 고마웠다고 하고 후에도 몇번 더 이 사건이 언급될 때마다 김동주가 너무 무서웠다고 언급한다. 심지어 15년이 지난 후에도 방송에서 말하는걸 보면 정말로 무서웠던 걸로 보인다. * [[파일:/image/032/2011/05/15/2011051501000476.jpg]][br] 입 모양을 보면 고운 말은 오고가지 않은 듯.[* 2011년 5월 15일 잠실 SK전에서 스트라이크 존 판정에 불만을 품은 김동주가 김정국 심판에게 항의하던 장면. 이 과정에서 김동주는 김정국 심판에게 쌍욕을 했고 그 이후에 김정국 심판이 김동주에게 화를 냈다. 참고로 김동주가 김정국 심판에게 쌍욕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979년생인 김 심판이 1975년생인 김동주보다 네 살 어린 후배였기 때문이다.] 참고로 이 시즌은 흥분한 이대호를 말릴 수 있던 짬밥인 김동주의 마지막 풀타임 시즌이다. [[https://youtu.be/7yjihAOEOLU|##]] * [[2007년 한국시리즈|2007년 한국시리즈 3차전]] 당시 [[이혜천]]이 [[김재현(1975)|김재현]]에게 던진 몸의 맞는 볼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났을 때 분위기 살벌한 인파 속에서 채병용에게 헤드락을 당했다.[* [[파일:4454.jpg|채병용에게 헤드락을 당했다]] ] 아마 바로 전 경기인 2차전 때 자신과 빈볼시비로 벤치클리어링이 한 번 일어났었기 때문에 그걸 빌미로 복수(...)를 한 것이라는 게 중론. 물론 이 헤드락을 당하고 미쳐 날뛰며 [[김민호(1969)|김민호]] 코치가 붙잡고 말려도 밀치며 극대노한 상태를 보여줬다. [[채병용]]을 가리키며 '너 뒤진다'는 손으로 목 긋기 제스쳐를 취한 건 덤. * 현역 시절 [[최정]] 못지않은 [[류현진]] 킬러였다. 김동주는 [[류현진]]과 통산 맞대결에서 32타수 16안타로 타율이 정확히 5할에 달하며 3개의 홈런을 류현진으로부터 뽑아냈다. 뿐만 아니라 김동주는 타팀의 에이스급 선수들에게 강했는데, 이런 선수가 상대팀의 강한 투수가 나오는 경기를 일부러 피했다는 것은 악의적인 루머이다.[[https://www.google.com/amp/m.chosun.com/news/article.amp.html%3fsname=news&contid=2012122801628|#]] *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7&oid=020&aid=0002218144|조인성이 자신의 배트를 자주 빌려간다고 한다]]. 실제로 [[조인성(야구)|조인성]]과 김동주는 고교때부터 동급생이자 절친한 친구라고 한다. 김동주가 보여주던 벤클에서의 카리스마와 다혈질적인 성격을 생각해보면 의외의 일면이다. * [[넥센 히어로즈]]의 [[한현희]]가 경기중 쓸데없이 웃는 버릇이 있었는데, 김동주의 말한마디로 버릇을 고쳤다는 일화가 있다. 참고로 그 조언을 한 날 김동주는 한현희에게 [[한현희#s-4.1|데뷔 첫 삼진]]을 당했다.(...) * 2004년 1월 8일 리니지를 하다가 현피 뜨러 가서 사인만 해주고 왔다는 [[http://sports.hankooki.com/lpage/baseball/200401/sp2004010811453231710.htm|기사]]가 발굴되었다고 나오지만 2019년 2월 13일 안경현의 넘버쓰리에 출연해서 본인은 리니지라는 게임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얼마나 억울했는지 NC에다가 주민등록번호 알려줄테니까 조회해보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http://www.podbbang.com/ch/1769422|#]] * 가수 [[김건모]]와 꽤 닮은 편이다. 나름 홀쭉했던 프로 초년병 시절에도 닮았다는 얘기가 가끔 나왔는데 은퇴 이후 살이 더 빠진 지금은 매우 비슷해졌다. 그러고보니 둘 다 부산 출신이다.[* 단 김동주나 김건모나 어릴 때 서울로 올라와서 사실상 서울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 선수 시절엔 [[오월동주]]라는 별명이 있었다. [[사자성어]]의 뜻과는 관계 없이 그냥 [[5월]]달에 유난히 좋은 성적을 기록해서 생긴 별명. * [[황두성]]은 가고 싶어했던 팀이 [[OB 베어스]]였다고 한다. 그 이유가 배명고 선배인 김동주랑 함께하고 싶어서였다고... * 두목곰이라는 무서운 이미지와는 다르게 목소리가 상당히 나긋나긋하고 차분한 말투를 가졌다. * [[사생활]]이나 [[인간성]] 관련해서는 상당히 말이 많은 선수지만, 그와 상반된 것이 [[팬 서비스]]만큼은 상당히 훌륭했다고 한다. 출근 시에도 팬들의 싸인 요청에 특별한 이유가 없지 않는 이상 다 응해주는 편이었고, 원정 경기때 어린이 팬이 김동주 유니폼을 입고 있자 존댓말까지 써가면서 사인을 해준 일화도 있으며, 대전 원정에 응원을 온 팬에게는 사인볼 여러 개와 잠실구장 테이블석 티켓 2장을 준 일화도 있다.[* 2018년 엠팍에 당사자가 직접 밝혔고, 그 다음 해인 2019년 김동주 본인도 더그아웃 매거진 유튜브에 출연해 밝힌 적도 있다.]'''심지어는 베이징 올림픽 연습경기 도중에 쉬는 타임에도 싸인을 해줬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인성 논란 등 온갖 괴담이 본격적으로 드러난 선수 말년에도 2군까지 따라다니거나, 1군 콜업을 요구하는 피켓을 제작하고, 변변한 은퇴식도 치르지 못하고 은퇴한 후에도 호프집에서 조촐하게나마 팬들이 은퇴식 자리를 마련해주는 등 끝까지 응원해주는 팬들이 꽤 있었다. 김동주와는 180도 대조되는 깨끗한 사생활은 물론 선수 커리어 내내 서승화와의 난투극을 제외하면 별 다른 물의를 빚은 적이 없이 모범적인 선수 생활을 하다가 말엽에 팬 서비스 논란이 불거지면서 엄청난 이미지 실추를 겪은 [[이승엽]]과 대조적이다. 물론 OB-두산 베어스의 역사는 김동주의 입단 전후로 나뉠 만큼 김동주가 팀의 이미지에 기여한 역할은 지대하다. 그리고 팬들 입장에서는 간접적으로 알 수밖에 없는 선수 개인의 사생활보다는 팬들 앞에서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팬들을 대하는 태도에 기초하여 선수를 판단하게 된다는 점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즉, 선수의 이미지 형성에 있어서 팬 서비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 * [[배명고등학교]] 시절 검증된 파워로 장외 홈런을 하도 많이 쳐 야구장 뒤에 있는 주택 창문을 많이 깨먹는 바람에 보호 그물망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얘기가 있다.[* 이와 비슷한 케이스로 고려대 선배 [[마해영]]이 있다. [[고려대학교 야구부|고려대학교]] 시절 야구장에서 훈련할 때 홈런을 너무 많이 친 나머지 고대 과학도서관의 창문을 자주 깨서 과학도서관 건물에 창살을 쳤다고 한다. 그리고 [[박병호]]도 비슷한 일화가 있다. 박병호 역시 성남고등학교에 다녔을 때 창문을 하도 깨서 학교 건물에 펜스가 쳐졌다고 한다.] * 야구게임 [[9M 프로야구]]에서 라이센스를 못 땄는지 김대장이라는 가명으로 나왔다. * 2006년 WBC에서 어깨 부상을 크게 당해 43경기 출전에 그치며 FA가 1년 미뤄졌는데, 당연하게도 현재까지 이를 굉장히 아쉬워한다. 더그아웃 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두산 베어스의 후배 정수빈이 FA가 되는 시즌이라 부상을 당해도 어떻게든 빨리 복귀하려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그런 영향도 있을 거라고 대답하면서 "근데 난 다쳐서 FA가 1년 밀렸잖아...."라며 말 끝을 흐리고 시무룩해져서 갑자기 말을 잇지 못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어쩔 줄 모르고 숙연해진 건 보너스. * 단순한 홈런타자가 아닌 시대를 앞선던 OPS 히터, 그리고 상당히 좋았던 팬 서비스로 인해 은퇴한 지 10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상당히 많은 재평가가 이루워지고 있다. 물론 부상으로 인해 누적스탯이 좋지 못한 점이나 베테랑으로써 팀을 이끌지 못한 점과 구단 프런트와 돈 문제로 인해 사이가 틀어진 점, 그리고 사생활 관련해서는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그래도 결론적으로 나오는 평가는 KBO 역대 최고의 3루수 중 한 명이었으며 OB-두산 베어스을 대표하는 얼굴이었으며 팬 서비스만큼은 좋았던 선수로 결국 KBO 40주년 레전드 40인으로써 선정되었고 같이 레전드로 선정되었던 [[정근우]]가 그 어느 팀의 레전드 대우도 받지 못하며 팬들의 비판만 받다가 초반에 뛰었던 SSG 랜더스(현역 당시 SK 와이번스) 홈 경기에서 겨우 시상을 한 반면, 김동주는 두산의 레전드로써 잠실구장에서 팬들의 환호를 받으며 상을 수여받으며 두목곰으로써 팬들에게 남게 되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단장인 [[김태룡(1959)|김태룡]]은 김동주랑 인사를 나누기는커녕 행사 내내 얼굴조차 비추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가 구단 프런트와 남겼던 감정의 골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 모습. * 김동주의 현역 시절 1군 마지막 타석은 2013년 5월 17일 [[한화 이글스]]와의 원정경기였다. 9회초 5대4로 뒤지고 있는 1사 1,3루 상황에서 5-4-3 병살타로 물러나며 동점 주자를 불러들이지 못하고 그대로 패배했다. 마지막 타석 큰 응원가와 성대한 기립박수를 받았던 [[이대호]], 은퇴 경기에서 멀티 홈런을 때려낸 [[이승엽]], 마지막 타석까지 평범한 땅볼에도 전력질주를 하며 오랜 선수 시절의 꾸준함을 방증했던 [[양준혁]]과 달리, 한 팀의 최고 레전드 선수를 떠나보내기에 너무나 아쉬운 현역 마지막 타석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