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민석(1964) (문단 편집) === 학생운동 시절 === [[1964년]] [[5월 29일]],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동(서울)|신길동]]에서 3형제 중 막내로[* 큰 형은 잡지 '[[말(잡지)|말]]'의 기자를 지냈고 2010년대 후반부터는 [[판도라]]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나와 [[조국백서]] 주도세력으로 유명해진 [[김민웅]] [[경희대학교]] 교수, [[서울겨레하나]] 대표이다. 작은 형 김민화는 1987년 젊은 나이에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태어났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본 유학 시절 결혼했다. 1982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으며,[* [[더불어민주당]]의 [[은수미]] 전 [[성남시장]]과 같은 과, 같은 학번의 동기이기도 하다.] 4학년 때인 1985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에 당선돼 전국대학 총학생회 연합체인 '전학련' 의장으로 활동하는 등 1980년대 초의 학생 운동을 주도하였다. 1985년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농성 사건]] 및 삼민투[* 민족통일, 민주쟁취, 민중해방위원회. 약칭 삼민투이다.] 사건을 배후 조종한 혐의로 5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 받고 3년간 복역하였고, 1988년 사면으로 출소했다. 학생운동 활동이야말로 정치인 김민석의 행보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수감 중 작은형 김민화가 교통사고로 사망하자 김수환 추기경의 노력으로 귀휴 조치되었고 이때 조문객으로 찾아온 [[김대중]]을 만났다. 당시 김민석의 어머니 김춘옥 여사는 교통사고 사망 보상금으로 "민화의 집"을 설립하여 구속자 가족과 수배학생들을 돌보았고, 김대중과 김영삼 부부가 민화의 집 개소식에 함께 참석할 정도로 "김민석 어머니"에 대한 신망이 높았다고 한다. 어머니 김춘옥 여사는 김민석이 옥고를 치르는 동안 구속자가족협의회를 설립하였고, 재야단체인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약칭 민가협) 초대 의장이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