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민석(1964) (문단 편집) === 고난의 정치 여정 === 결국 "가출했던 아들이 집에 돌아온 심정이다"라는 말을 남기며 [[국민통합21]]을 탈당한 뒤 2003년 [[새천년민주당]]으로 복당했지만, 이후 출마하는 선거마다 고배를 마셨다. 당장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영등포구 갑]]으로 지역구를 옮겨 출마했지만, [[한나라당]] [[고진화]] 후보에게 패배했고, 심지어 [[열린우리당]] [[김명섭]] 후보에게도 밀리면서 3위로 낙선하는 수모를 당했다. 그가 새천년민주당에 복당한 시점은 2003년 11월 4일로 열린우리당 창당 '''일주일 전'''이었는데[* 다만 실제로는 1개월 반쯤 전인 9월 20일에 새천년민주당 의원 37명과 [[독수리 오형제|한나라당 의원 5명]]이 각각 탈당 후 '''국민참여통합신당'''이라는 교섭단체를 만든 시점으로, 정식 창당만 안된 상태였다.] 차라리 새천년민주당 복당 대신 열린우리당 입당을 선택했다면 당장 17대 총선에서부터 재기에 성공했을지도 모를 일. 노무현과 척을 졌던 [[송석찬]], [[김명섭]], [[송영진(정치인)|송영진]] 등도 열린우리당에 합류했던 만큼 김민석이라고 가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실제로 [[우상호]], [[임종석]], [[송영길]] 등 김민석을 제외한 386 정치인들 대다수는 [[열린우리당]]으로 가서, 그 후 우상호는 4선 의원에 20대 국회 전반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임종석은 문재인 정부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 송영길은 [[인천광역시장]]을 거쳐 더불어민주당 제5대 대표를 역임했다. 이후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당(2007년)|민주당]] 예비후보로 경선에 뛰어들었지만, [[이인제]] 후보에 밀려 2위로 탈락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서울시장 선거 당시 회계 문제로 컷오프를 당했지만 승복하고 불출마한 뒤 [[오리알]] [[유세]]단을 이끌었고, 그 후 치러진 전당대회에서 [[통합민주당(2008년)|통합민주당]] 최고위원에 2위로 당선되며 부활하는 듯 했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불법 정치자금 수사가 발목을 잡았고 당시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비난하며 당사에서 한 달간 농성을 벌였지만 끝내 구속되고 말았다. 후술할 불법 정치자금 수수 논란으로 '''2015년까지 피선거권 상실과 벌금형이 확정'''되었다. 대법원 심리가 진행 중이던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부산광역시장]] 출마를 선언했지만, 경선에서 [[김정길(1945)|김정길]] 전 [[대한체육회]]장에게 밀렸다. 공백기 중에 2010년 [[칭화대학]] 중국법 석사, 2011년 [[럿거스 대학교]] [[로스쿨(미국)|로스쿨]] [[전문석사|J.D.]] 과정을 마쳤다. [[안철수]], [[김한길]]의 [[새정치민주연합]] 출범으로 민주당 당명이 사라지자 민주당의 이름과 전통을 지킨다며 2014년 [[민주당(2014년)|원외 민주당]][* 다만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직전에 [[신기남]] 의원이 합류해서 잠시 원내정당이 되긴 했다.]을 창당하고 당대표로 취임했다. 이후 원외 민주당 간판으로 20대 총선에 비례대표로 출마했지만, 2위로 낙선하면서 국회 복귀에 또 실패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