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봉준 (문단 편집) == 프로게이머 == [[파일:스파키즈김봉준.jpg|width=400&align=center]]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주전 선수들이 대거 증발해 버렸던 당시 [[하이트 스파키즈]]의 신인 프로게이머였다. [[드래프트/스타크래프트 시리즈#s-2.9|2009년 상반기 드래프트]]에서 1차 지명으로 입단했다. [[김창희(1989)|창라인]]에 속해 있으며 [[조재걸]], [[이경민(프로게이머)|이경민]], [[김학수]]와 같은 팀이었다. 연습생 시절에 선택한 종족은 [[테란]]이었지만, '''컴퓨터 화면이 어두워 [[가시지옥#s-2|럴커]]가 잘 안 보여서''' [[프로토스]]로 전환했다고 한다. 정확히는 마린이 럴커에 약해서 그보다 유닛 체력이 월등히 높은 프로토스를 선택했다고 밝혔다. 2010년 6월 6일, [[STX SouL]]의 [[김윤중(프로게이머)|김윤중]]을 상대로 공식전 데뷔전을 치렀으며, 경기들을 잘 보면 경기 초반에 입을 막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데, 해설진의 말에 의하면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랩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훗날 새벽 방송에서 본인이 직접 밝힌 바로는 상대방에 대한 욕을 했다고 한다. 그 외엔 욕을 하기도 하고, 할 수 있다고 자기 암시를 걸기도 한다고... 이 시절에도 남다른 쇼맨십을 갖고 있어서 상대를 이기고 나서 관중석으로 뛰어나와서 세레머니를 하거나 신발을 벗고 게임을 하는 등 기행을 선보이기도 했다. 해설자들도 김봉준이 나올 때 '이 선수 물건이다', '재밌는 선수다.' 라는 식으로 언급하며 밀어주려고 시도했다. 문제는 프로게이머의 기본 소양인 게임 실력 자체가 떨어져도 너무 떨어졌던지라 저런 쇼맨십을 보여줄 기회 자체가 거의 없었다는 것. [[파일:1292128482_1.jpg|width=400&align=center]] [[신한은행 프로리그 10-11]] 2라운드가 진행 중이던 2010년 12월, 웅진 스타즈로 이적했다. 그러나 웅진에서는 공식전은 단 한 번도 출전한 적이 없었는데, 내부랭킹전 2승 58패라는 믿기 힘든 결과(자기 말로는 이 때 너무 져서 실력이 줄었다고 한다.)를 낸다. 그런데 스파키즈 시절에는 [[전태규]]가 보여준 자료에 의하면 스파키즈 내에서의 랭킹전은 꽤나 준수했다고... 팀에서 중간 성적은 거뒀으며 프로토스 중에서는 이경민 다음으로 높은 시절(151승 134패)도 있었다. 물론 그만큼 스파키즈 [[잉여라인|프로토스 상황이 안좋기는 했다]].[* 당시 스파키즈 프로토스 중 유일하게 타 팀 1군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이경민을 제외하면 남은 선수들은 김봉준, 김학수, 조재걸이었다. 조재걸은 잘생긴 외모로 스타성은 있다고 평가받았지만 실력은 김봉준, 김학수보다도 아래였다. 김학수는 이경민 못지않게 전략적인 플레이에 능했으나 이경민과 달리 그걸 성공시킬 기본기가 부족해서 이경민 빌드 깎아주는 하청업자 신세였다. 실제로 개인방송에서 이들의 플레이를 보면 김봉준이 손 자체는 김학수나 조재걸보다 깔끔한 편이며, 운영능력도 이들보다 나은 편이긴 하다. 물론 저래도 이경민을 제외한 팀 내 프로토스들 모두 다른 팀에선 전력 외 수준이기 때문에 그만큼 스파키즈라는 팀 자체가 열악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스파키즈 소속 타 종족 게이머들은 토스전이 약해서 커리어에 손해를 많이 봤다. 심지어 팀 역사상 최고의 커리어를 가진 토스이자 나중에 선수 은퇴 이후에는 이 4인방의 코치였던 [[전태규]]가 선수로 있을 때도 팀 선수들이 [[토막(스타크래프트)|토막]]이었으며 (대표적으로 팀 역사상 유일한 우승자 '''[[한동욱]]'''이 [[전태규]]마저 토스임에도 스1 역사상 알아주는 토막이였다(...).] 그러나 2018년 6월에 스파키즈 선수들에 의해 밝혀진 바로는 그 당시 하이트 스파키즈의 내부 랭킹전은 너무많은 게임수에 지친 선수들이 가위바위보로 승자를 가려 제출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봉준은 그저 가위바위보를 잘 해서 승률이 좋았던 것이다. 김봉준의 형편없는 실력을 본 [[시청자]]들은 어떻게 이런 사람이 프로게이머가 되었나 하고 의심을 품을 수도 있지만, 정직하게 도전하여 준프로 자격을 딴 선수이다.[* 당시 가정 형편을 생각하지 않고 철없이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아서 [[소고기]] 파티를 해서 무버지가 빚내서 결제하셨다는 이야기도 종종 하였다. 그럼에도 아들에게는 비밀로 하셨던 무버지의 헌신이 지금의 BJ 김봉준을 만들었다.] 김윤중과의 데뷔전에서 보듯이 게임이 잘 풀릴 때는 나쁘지 않은 플레이를 보여줬지만[* 가볍게 하는 스폰빵이지만, [[김택용]](!)을 [[단장의 능선(스타크래프트)|단장의 능선]]과 [[폴라리스 랩소디(스타크래프트)|폴라리스 랩소디]]에서 꺾기도 했다. 물론 당시의 김봉준은 방플을 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아 있긴 하다.] 변수에 매우 취약하며 전략성이 거의 없다시피한 게 심각한 문제였다. 이 전략성 문제는 지금도 전혀 개선이 없어서 2018년 [[ASL 시즌4]] 예선을 앞두고 전태규가 예선 참가를 선언한 김봉준의 코칭을 하루 맡았을 때 대노하여 지적했다. 상대 빌드를 확인하고 내 빌드를 맞추는게 아니라 아무 생각없이 자기 빌드만 들이밀며, 그 빌드를 왜 쓰는지에 대한 생각도 없이 그냥 배웠으니까, 유행하니까 쓴다 수준이다. 즉, 전형적인 주입식 플레이로 프로게이머가 된 케이스라는 얘기. 기본적으로 손이 깔끔하다는 장점과 프로브를 쉬지 않고 잘 찍어서 중반 뽕뽑기 물량이 잘 터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외에는 딱히 [[장점]]은 없는 선수. 오히려 과도한 프로브 덕에 중반에 게임을 끝내지 못하고 후반으로 넘어가면 인구수는 200인데 병력은 쥐꼬리만한 상황이 발생한다. 당연히 선수 시절 성적은 매우 좋지 않다. 총 전적이 28승 48패로, 공식전에서는 김윤중, [[박성준(1986)|박성준]], [[송병구]]에게는 이겼고, [[김명운]], [[변형태]], [[서지훈(프로게이머)|서지훈]], [[신대근]], [[이제동]]에게는 졌다. 특히 김명운과는 3번 맞붙어서 다 패했다. 어차피 실력 면에서 상대가 안 되므로 패하는 거야 당연지사지만, 저렇게 적은 전적 중에 하필 김명운만 3번이나 만났다는 사실이 포인트.[* 스파키즈가 해체되고 나서 웅진에 이적했을 때 김명운과 자주 연습을 했는데, 은퇴하기 전까지 어떤 방법으로도 김명운을 이겨본 적이 없다고 하였다. 심지어 김명운이 일부러 김봉준에게 유리한 빌드를 주문하고 시작해도 김봉준이 어김없이 졌다고 했다.] || [youtube(wK-tPptWids)] || || [youtube(jlIy-SKzsIE)] || 훗날 2017년 경 [[아프리카TV]] 방송 중에 이 때를 잠시 소회하며 말하기를, 프로게이머가 된 후 첫해에는 무급으로, 2년차부터는 연봉 200~500만원을 받고 일하면서 [[이명근|감독]]으로부터 각종 외모 비하와 푸대접을 받았었으나, 그땐 10대의 어린 나이에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지라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인식도 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다만 어렸던 당시에는 외모나 성적에 대한 인격모독에 서러워서 감독과 코치진이 안 보일 때 구석에서 쭈구리로 자주 울었고 그런 자신을 동기들이 다독이곤 했다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그 외모로 오히려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해서 인생사 [[새옹지마]]라 여기고 좋은게 좋은거라고 하나의 추억 정도로 여기고 있다고 한다. 당시 사람들과도 지금은 웃으며 잘 지낸다고...[* 심지어 그 악명높은 감독이랑도 가끔씩 안부전화를 하고 다니는 것으로 보인다. 해당 방송을 하기 얼마전에도 방송 잘보고 있다고 연락이 한번 왔었다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다른 선수, 코치들은 감독과 이미 완전히 손절한지 오래다. 한때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신 후 감독을 제2의 아버지라 여기고 믿고 따랐다던 전태규 코치도 지금은 감독 얘기만 나오면 학을 뗄 정도.] 2011년 10월 20일, 공식적으로 프로게이머 은퇴가 공시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