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부선 (문단 편집) == 정치 활동 == 수많은 집회에 참가하였다. [[제주 4.3 사건]] 관련 집회부터, [[미군 여중생 압사 사건]], [[광우병]] 쇠고기 수입 반대,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 [[최진실]]법, [[이라크 전쟁]] 반대, [[장자연 자살 사건]] 등 연예인으로서는 상당할 정도로 시위나 집회에 참여하곤 하는데, 4.3 사건의 간접적 피해자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단순한 오지랖으로 해석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대마초 비범죄화 운동.''' [[진보신당]]에 입당해 정당의 홍보대사로 선임되어 활동했다. [[심상정]], [[노회찬]], [[홍세화]], [[김탁환]]과 활동하며 진보신당의 전사이자 동지로 떠올랐다. 과거 진보 논단에서 그녀를 호의적으로 인상비평(?)한 적도 있다.[* 한 진보계열 계간지인지 서적에서 언급된 적이 있다. [[강준만|계간 인물과 사상]]으로 보인다.] 사실 그가 사회 운동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더 직접적인 계기는 1986년의 구속 수감 때였다. 당시 [[10.28 건국대 항쟁]]이 일어났고 관련 학생들이 구속되면서 그와 같은 곳에 수감된 것. 교도소로 이감된 이후로도 몇개월 간 [[운동권]] 대학생들과 교류하며 그들과 친해진 것도 있었다. 더불어 상류층과 파티하며 마약을 하는 연예계의 추한 일면과는 정반대로 신념을 위해 목숨까지 거는 사람들의 존재에 큰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본인은 술회하고 있다. [[파일:17357c785d354dd98ab.jpg|width=350]] 하지만 [[진보신당]]이 해산된 이후부터는 총선 때마다 민주당을 지지했는데 민주당은 정작 자신의 소송을 도와주는 의원들이 없었다며 실망을 표하였다. 그리고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이기라며 당시 새누리당 대표인 [[김무성]]을 응원하며 민주당을 비꼬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사실 이때까지는 민주당이 장자연 사태 등에 미온적인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시였지만 이 이후로 [[더불어민주당]]과 소속 의원들을 비판하는 입장을 점차 개진하기 시작했다. [[파일:sdsdf2392.jpg|width=340]] 2017년 대선에서 [[안철수]]를 찍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곧 이어 자신이 [[문재인 정부]]의 블랙리스트 1호라며, 그 이유는 대선 때 안철수를 공개 지지하고 찍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무런 증거를 제시하지 못 하였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단순 음모론으로 밖에 판단된다.[[https://m.entertain.naver.com/read?oid=020&aid=0003096450|김부선 “블랙리스트는 문재인 정부도 존재하는 것 같다”]]] 4년동안 무료변론으로 김부선의 소송에서 대리인을 맡아줬던 [[박주민]] 변호사 조차도 김부선은 공격대상으로 삼았다. 박주민은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던 2018년 김부선에게 비판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김부선/논란 및 사건사고#s-3.4|박주민 비난 발언 논란]] 참고. [[https://entertain.v.daum.net/v/20180823165444136|김부선 "박주민, 무능한 패소 변호사...믿을 정치인 없어" 공개 비판]] [[제20대 대통령 선거|20대 대선]]을 앞두고서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하였다. 대선에서 낙선한 이재명이 인천 계양 을로 출마하자 어차피 질 게임 우스갯소리로 김부선을 공천하자는 말이 나왔는데 기사에서는 윤희숙과 저울질이라고 한다. 이준석 대표는 이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며 정치를 희화화해서는 안 된다며 인천 계양을에 연고가 있고 다음 총선에서도 출마할 수 있는 사람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