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석원(기업인) (문단 편집) === 몰락 이후 === 해체 이후 조용히 야인 생활을 했다. 부인 박문순은 성곡미술관을 운영하고 있고 장남 김지용은 고속도로 사업인 태아산업을 운영하고 있으나 김석원 본인은 나이도 있고 몸도 안 좋다 보니 몇몇 공적인 행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두문불출 지내고 있어서 재계도 정계도 모두 은퇴한 상황이었다. 그러다가 2005년 당시 계열사 소유의 부동산과 고속도로 휴게소 등을 헐값에 사들이고 개인주식을 쌍용양회로 하여금 비싸게 매입하게 하는 수법으로 그룹 재산 310억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되었고, 2007년에는 자택에 현금으로 50억을 보관하고 있다가 검찰에 압수당하면서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240202.html|관련기사]] 여기에 계열사에 부당지원하고 회사 자금 7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로 징역 4년을 받았다. 설상가상으로 2011년에는 [[참척|둘째 아들이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졌다.([[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15632|관련 기사]]) 김석원의 차남 김지강은 버몬트 대학교 유학 중 IMF로 그룹 전체가 휘청이자 한국에 돌아와 그룹 재건을 도왔으나 그룹 해체는 막을 수 없었고 이후 2002년 동아시아회사도 차리고 진두네트워크 인수도 시도했으나 이렇다할 성과를 내놓지 못한 채 주식투자로 겨우겨우 연명하다 목숨을 끊었다. 이런 점에서 마찬가지로 자살한 [[새한그룹]]의 차남 이재찬과 비슷하다. [* 본인과 가족들이 몸담고 있던 그룹이 해체당하고 이후 생활고를 겪었던 점도 비슷하다. 가장 큰 차이점은 이채찬이 속한 새한그룹은 해체됐어도 그 모체인 범삼성가는 건재한 반면 쌍용그룹은 그룹이 해체된 것은 물론 그룹 재건은커녕 현상유지도 매우 어렵다. 본인 사후의 일이지만 숙부 김석준은 그룹 해체 후에도 채권단을 거쳐 두바이 투자청이 인수 했어도 쌍용건설의 전문경영인으로 근무 했으나 세아상역이 주축인 글로벌세아그룹이 두바이 투자청으로부터 쌍용건설을 인수 후 쌍용건설 대표이사에서 물러나서 현재 쌍용가 사람들 중에서 과거 그룹의 주력 사업체에 관련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김지강은 한때 그룹 후계자로서 차기 후계자를 생산하기 위해 그룹이 휘청이는 와중에도 부모의 주선으로 일찍 결혼했던 형 김지용과 달리 결혼하지 않고 여자친구만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이런 수난을 말년에 다 겪었고, 최근에는 고령으로 인해 휠체어에 의지하는 등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였다가 2023년 8월 26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8세.([[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4153378?rc=N&ntype=RANKING|관련 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