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성환(1965) (문단 편집)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직후 치러진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노원구 병]]에 출마하려 했으나 민주당이 해당 지역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며 더 강한 후보를 찾는 바람에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 2일 전에야 공천을 받았다. 노원병은 이전 당선자인 [[임채정]] 의원이 재임 중 국회의장을 역임했기에 정계 은퇴 수순을 밟는게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이를 노리고 [[노회찬]] 후보가 오래 전부터 지역 조직을 다져왔기에 [[한나라당]] [[홍정욱]] vs [[민주노동당]] 노회찬으로 오래 전에 구도가 확정되었다. 5년동안 지역 활동을 하지 못하다 출마 결심을 하고도 공식 공천을 한동안 받지 못했으니 출발부터 불리했던 셈이다. 이때 노회찬과의 단일화를 거부했다는 루머가 퍼지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노회찬 캠프로부터 어떠한 단일화 제의도 받지 못한 상황이라 완주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당시 홍정욱 후보는 [[동작구 을|동작 을]]에 공천을 신청하나 실패[* 이 지역구에 나선 민주당 [[정동영]]을 잡기 위해 한나라당은 울산에서 [[정몽준]]을 끌어다 전략공천했었다.]해서 급하게 노원병에 배정되었다. 오래 전부터 출마를 준비해온 노회찬 캠프가 단일화 없이 단독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판단도 허무맹랑한 수준은 아니었다. 당시 서울을 휩쓸어버린 [[뉴타운]] 광풍과 여론조사에 쉽게 잡히지 않았어도 민주당에 충성심을 유지한 유권자를 염두에 두지 못했던 것이 오판한 이유라면 이유다. 이 결과로 2천 여 표 차이로 홍정욱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된다. [* 그리고 노회찬은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불과 2년 후에]] 그 때의 억울함을 [[한명숙|이자 쳐서 제대로 갚았다.]] ~~그리고 '''또'''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2014년]]에 [[나경원|억울한 일]]을 당하게 된다~~] 여담으로 귀향을 준비중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락을 받았는데, 민주진영 재집권을 위해 사전에 정책을 조사하고 개발할 정책연구소 총괄을 김성환 후보에게 맡기고 싶어했던 것이었다. 김성환은 당시 노원병에 출마의지를 드러낸 상황이라 떨어지면 열심히 돕겠다고 답변했는데 실제로 낙선했다. '낙선을 바라는 바는 아니었지만 이왕 그렇게 되었으니 연구소 설립을 총괄해달라'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연락을 다시 받고 한국미래발전연구원 설립에 착수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정 경험을 바탕으로 못다한 복지 국가에 대한 공감대를 늘리고자 저술 활동을 준비했다. 이 시기 김성환은 미래발전연구원 기획실장을 맡아 진보의 미래 집필 작업을 도왔으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구술된 내용을 바탕으로 유고집이 될 진보의 미래 편집을 총괄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