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연자 (문단 편집) === 일본에서의 성공 === 김연자는 <아침의 나라에서>가 올림픽 주제가니까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해 일본 재진출을 결심한다. <아침의 나라에서>는 요시오카 오사무(吉岡治)가 작사한 <朝の国から>란 제목의 싱글로 발매됐다. 1988년[* [[https://ja.wikipedia.org/wiki/%E6%9C%9D%E3%81%AE%E5%9B%BD%E3%81%8B%E3%82%89|wiki]]에는 1987년 발매로 표기됐지만 오기일 가능성이 있다.] 5월 일본 バップ VAP 레코드사에서 1절은 한국말, 2절은 일본말 가사로 취입하였으며, 서울 올림픽 공식 주제가로 발표되고, 5월25일 도쿄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제목으로 88 서울 올림픽 공식 가요 발표회를 가졌다. 올림픽 찬가를 부른 가수가 일본에 왔다고 홍보했다. 1988년 6월 21일 갑자기 올림픽 주제가 변경이 발표되어 주제가 자격을 상실한 김연자는 크게 상심한다. 남편은 김연자의 일본 내 기획사 대표를 맡아 그녀의 모든 스케줄과 수입을 관리하며 김연자의 성공에 공을 세운다. 남편은 가요계 인맥이 많았고, 남편 때문에 김연자를 도와준 사람들도 많았다. “두 번째로 일본에 갔을 땐 아무런 신경 쓸 일 없이 노래만 부르면 됐어요. 그땐 남편이 제 매니저가 되어주었어요. 남편은 어떻게 하면 가수 김연자를 세계로 통하게 할 수 있을까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어떤 때 보면 남편이 저보다 더 제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같아요. 남편 이 야쿠자라는 등의 소문은 말도 안 돼요. 정말 자상한 사람이에요.” 어쨌든 이노래는 시판 2개월만에 10만장 이상 팔리며 히트한다. 덕분에 김연자는 일본에서 성공가도에 올라서 주로 일본에서 활동한다. 다음 해인 1989년 [[NHK]] 홍백가합전에서 <아침의 나라에서>를 불렀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eC0YMR5q3vM)]}}} || || [[1989년]] [[https://ko.wikipedia.org/wiki/%EC%A0%9C40%ED%9A%8C_NHK_%ED%99%8D%EB%B0%B1%EA%B0%80%ED%95%A9%EC%A0%84|제 40회 NHK 홍백가합전]] 朝の国から (아침의 나라에서) --당시에 [[일본]]에서 [[HD]][[하이비전]]으로 방영됐다-- || [[홍백가합전]]에 총 3번 출연하며 [* 1989년 '아침의 나라에서', 1994년 '흐르는 강물처럼', 2001년 '림진강'이라는 곡으로 출전.] 계속 히트곡을 내서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엔카 가수 중 한 명이 됐다. 1989년 6월 브라질. 상파울로에서 앙콜 공연. * 당시 레코드 회사에서는 그가 계속 ‘아침의 나라에서’ 풍의 노래를 하길 원했지만 김연자는 ‘엔카’를 부르고 싶었다. 일본에서 입지를 확고히 다지려면 그들의 정서에 맞는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아버지가 (재일)한국인인 미야코 하루미라는 유명한 가수 출신 프로듀서를 찾아가 일본 엔카를 부르고 싶다고 사정을 말씀드리고 받은 곡이 ‘암야항로(어두운 밤뱃길)’였어요.” 1989년 10월 5일 미야코 하루미(都 はるみ)가 프로듀스한 신곡 暗夜航路(암야항로)[* [[시가 나오야]]의 소설 '암야행로'와는 관련없다.]발매. 인기가 없다가 6개월만에 인기 폭발해 그녀의 대표곡으로서 장수한다. 60만장 이상 팔렸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VtO3R7Iap4A)]}}} || || キム・ヨンジャ - 暗夜航路(암야항로) || 1990 일본 산토리홀 엔카 가수 첫 공연 1990년 8월 15일 소련 사할린 동포 1만명 야외 자선공연 <눈물의 아리랑(?のアリラン)>. 사할린에 거주중인 노인 10명을 한국에 초대. 김연자가 기억에 남는 특별한 공연 3가지[* 올림픽 폐회식, 홍백가합전, 사할린 자선공연 [[https://youtu.be/AgKpXQxOECE?t=2228|#]]] 중 하나로 꼽았다. {{{#!folding 【공연 사진 펼쳐 보기 & 접기 】 [[파일:김연자ㄴ 011.png]] [[파일:김연자ㄴ 010.png]]}}} 1992년 9월 15일~25일 3회째의 브라질 공연. 상파울로시 의회로부터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사회 공헌한 사람에게만 수여하는 ‘안셰타장’을 수상. 상파울로시내에 ‘김연자 거리’ 창설의 명예. 1994년 [[NHK]] 홍백가합전에서 <흐르는 강물처럼>을 노래. [[미소라 히바리]]의 노래 '흐르는 강물처럼'을 부르는 것을 보면 왜 일본에서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한국으로 치면 조용필의 추모 공연으로 모나리자를 일본인이 부르게 한 것이다. [* 흐르는 강물처럼은 akb48의 제작자이기도 한 아키모토 야스시의 작사곡었다. 당시 작사가였던 야스시는 이곡으로 대 작사가의 반열에 올랐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MxfQ3zigAvA)]}}} || || 김연자 - [[川の流れのように]] (흐르는 강물처럼) || 1995년 10월 27일 발매한 싱글 ‘涙の鎖(눈물의 사슬)’은 엔카부문 테이프·CD판매량 1위를 차지하며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일본가요계를 평정했다는 소리를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Hok6FMTUQLE)]}}} || || 김연자 - 涙の鎖(눈물의 사슬) || 1997.2.23 미수교국인 쿠바의 수도 아바나 국립극장에서 쿠바국립교향악단의 협연으로 공연. 한국인 첫 쿠바 공연. 클래식 위주인 아바나 국립극장에서 팝송을 처음 부름. 동아시아 노래가 아닌 팝송, 스페인계 노래와 <아침의 나라에서> 부름.[[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199703085000201|#]]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DJF9mJ0OwYI)]}}} || || 雪國(설국) 원곡(1986):요시 이쿠조(吉幾三) || 2001년 [[NHK]] 홍백가합전에서 <[[임진강(노래)|림진강]]>을 노래했다. 북한 공연을 준비하며 배운 노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rBpx-NDPzog)]}}} || || 2001년 [[NHK]] 홍백가합전 김연자 <[[임진강(노래)|림진강]]> || 2001년 7월 일본 법무성 대상 수상 * 88년 이후 매년 한두 차례 교도소 위문 공연 하고 있다. 이 일로 법무성 대상을 받았다. "남편이 결혼 전부터 해오던 일인데 저 역시 일본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