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연자 (문단 편집) === 북한 공연 === * 2001년 <제19차 4월의 봄 친선예술축전[* 김일성 생일 기념 연례 행사]>에 참가. 악단을 포함해 30여명이 북한에 갔다. * 4월 7일 평양 청년중앙회관[* tv에는 청년문화회관이라 나왔다.][[https://tv.kakao.com/v/356195799|#]청년중앙회관 안의 극장을 청년문화회관이라 하는 것일 수 있다.]](2,000명수용)에서 처음으로 콘서트. * 4월 9일 평양 국제영화제회관콘서트홀(2,500명수용)에서 콘서트.(김연자씨 말과 맞지 않아 실제 이뤄졌는지 불명. 이 날 공연이 없는 문헌[[http://hri.co.kr/upload/publication/UER200103_09.pdf|#]]도 있음) * 4월 11일 함흥에서 김정일과 회견. 당간부 500명과 김정일 앞에서 2시간 공연. 종료 후 환영만찬회.[[http://img.seoul.co.kr/img/upload/2018/03/23/SSI_20180323162829_O2.jpg|사진]] * 이 공연은 [[https://www.melon.com/album/detail.htm?albumId=357474|음반]]으로 발매됐다. * "원래 평양 공연을 3회 하기로 했는데(이틀 하기로 했다고 말하기도 함[[https://youtu.be/tQJ_4DiPr6k?t=410|#]]) 첫 공연 끝나고 두 번째 공연도 똑같은 회관에서 하기로 했는데, 뒤풀이 하는데, 간부들이 숙소로 와서 갑자기 높은 분이 뒤쪽으로 날 부르더라. "열차 타고 12시 출발해야 한다. 공연하러 가야 하니 무거운 짐은 호텔에 놓고 악기랑 의상 등 간단히 쇼할 짐만 빨리 챙기라. 이유를 묻거나 따지지 말라." 회관에서 악기 가져오고 4월 9일 밤 12시 열차에 탔다. 좋은 침대도 있고 시설이 엄청 좋더라. 나중에 알고 보니 김 위원장 전용 열차. 밤새 달려 다음날 아침 8시30분쯤에 도착해 보니 함흥이었다. 김연자가 김정일 장군님 한번 뵙고 싶다고 말했다. 그런데 저하고 남편만 또 차를 태워 또 어디로 이동을 시키더군요. 5분 늦게 도착해 한복 입고 대궐같이 엄청나게 큰 문이 있는 해변가 집 앞에 내렸다. 보초병들이 거대한 문을 열자 바로 거기에 김정일이 있었다. 엉겁결에 외쳤다. '와! 진짜다 진짜가 있다(어?! 실물이다 김정일씨![* 김연자가 이야기할 때마다 말이 조금씩 다른데 여러 가지 인터뷰를 조합해서 정리한 이야기.])'." 김정일이 문 앞에서 5분 기다린 건 처음 있는 일이라고. 현관 앞에 서 있던 김정일은 손을 내밀며 20년 동안 좋아했던 가수를 비로소 만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인민복 차림에 생각보다 건강해 보였고 말투는 TV에서 보던 대로 힘차고 카랑카랑했다. 11일 오후 3시쯤 함경남도 함흥의 한 군부대 접견실에서 만났다. 오후 5시부터 90분 동안 대회의장을 임시방편으로 무대로 만들어 공연했다. 객석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즉석인터뷰를 하는 등 북한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자유분방한 무대였지만 앞좌석에 앉은 김 위원장은 마치 심사위원처럼 미동도 않은 채 내 공연을 지켜봤다. 환갑인 김정일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더니 김정일이 몹시 부끄러워했다.[[http://dc.koreatimes.com/article/20111219/702525|#]] "굉장히 무서운 사람으로 생각했는데 다정하더군요. 공연 전에 40분 동안 같이 있더니 저녁 7시부터 2시간 동안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나는 김위원장의 오른쪽에 앉았다. 내가 공연 후엔 너무 지쳐 잘 먹지 못한다고 하자 그는 천천히 먹으라며 음식을 하나하나 놓아 주기도 했다고 한다. * 김연자의 메들리 테이프를 김일성이 선물 받아 듣고 좋아했다고 한다. "옛 가요를 묶어 발표한 메들리 앨범에 대해 김정일은 '아버지(김일성)와의 추억이 담겨있다. 82년도쯤 같이 들었다'고 회상했다". 김정일은 81년 발매된 김연자의 '노래의 꽃다발' 메들리를 들은 후 열렬한 팬이 됐다고 했다. 20년 동안 김연자 노래를 사랑했다고도 했다.[[http://nk.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6353|#]] * 한국 신문[[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0300172431|#1]], [[https://www.mk.co.kr/news/home/view/2000/06/72467/|#2]]에 쓰인 김정일의 "김연자는 왜 안 데리고 오느냐"란 말을 김연자가 보고 '가야지' 해서 김연자가 직접 말해서 갔다고 김연자는 말했다.[[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683243&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인터뷰]] "살아 돌아올 수 있을까 무서웠다. 노인들에게 우리나라 옛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효 콘서트를 계획했다. ‘타향살이’, ‘불효자는 웁니다’, ‘눈물젖은 두만강’, ‘홍도야 울지마라’, ‘대지의 항구’등 흘러간 대중 가요를 선곡했는데, 이들은 북한에서도 널리 불려지고 있어 호응이 좋았다." * 그전까지 일부만 몰래 남한 노래를 듣던 북한이었는데, 김연자의 공연은 김정일이 공개했다. 4월 12일 조선중앙TV, 라디오방송인 조선중앙방송과 평양방송 등이 녹화 방송했다. 이전엔 남한 가수가 북한에서 공연한 것은 tv로 중계되지 않았다. 별도로 방영된 예술인 대담 프로그램에서 만수대 예술단 지휘자 조정림 등은 김연자의 대단한 평판을 이미 오래 전부터 들었지만 노래를 직접 듣고 보니 과연 듣던 바 그대로라고 칭찬했다. 전통적인 민요 창법을 바탕으로 현대적인 여러 가지 창법을 잘 배합해 독특한 형상적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했다.[[http://raythep.mk.co.kr/news_print.php?cc=270001&no=16162|#]] * 김정일은 농담을 잘했다. ‘녹두부침’ 같은 맛있는 음식을 남한에서는 왜 이상하게 ‘빈대떡’이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고 해 좌중에 웃음이 터졌다. 김정일은 북한 노래는 성악식 발성으로 통일돼 있어 남한의 트롯과 같은 창법이 그립다고 했다. 이수미의 '두고온 고향' 조용필의 '그 겨울의 찻집' 이 애창곡이고 '찔레꽃' '개나리처녀' 등도 좋아한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 남쪽 가수들 노래는 곡이 너무 빨라 뭘 노래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전자음악을 대중적으로 유행시킨 미국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를 비판하면서 이젠 그것도 싫증났으니 생음악으로 되돌아 올 것이라 했다. 다음 방문 때엔 가라오케에 가서 노래를 같이 부르자고 약속했다. [youtube(zQz1BOqvZeE)] * 2002년 두 번째 방북. * 4월 6일 4.25문화회관(6,000명수용)에서 콘서트. * 4월 8일 봉화예술극장(2,000명수용)에서 콘서트. * 4월 10일 만수대 예술극장(국립영빈관극장)에서 콘서트. * 김연자는 '반갑습니다’(북한가요)로 공연을 시작해, 여러 곡의 민요와 민요풍의 노래를 불렀다. 김정일은 김연자 일행과 만찬을 함께 했으며,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김용순 조선로동당 대남비서 등 고위간부들이 만수대예술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했다. 북한에서 공연은 2002년 4월 10일에 방송되었다. * "작년에는 우리 노래 18곡과 북한 노래 7곡을 합쳐 25곡을 불렀다. 올해 김정일이 처음으로 6곡을 신청했다." 김연자가 신청곡을 모두 기억하지 못해 센슈(千秋) 기획에 확인하니 '준마처녀' '사랑하시라' '처녀시절' '강성부흥 아리랑' '아직은 말 못해' '뻐꾸기' 등 북한 가요 6곡이었다. 센슈기획은 북한 요청으로 이들을 북한의 전자악기단에 맞게 편곡했다. * "북한 주민 10만 여명이 만드는 집체극 '아리랑' 리허설을 관람한 것도 잊을 수 없습니다. 당시 객석에는 저를 포함해 불과 30여명밖에 없었거든요." 김정일은 공연비용을 김연자 측이 부담하는 줄 몰랐다. 자선공연이었음을 알게 된 김정일이 김연자 일행에게 고개를 숙였다. 평양만이 아닌 지방에도 공연해달라는 제의를 받았다.(2002년에 지방공연 제의를 받았다는 얘기가 있으나, 2001년 공연 후에 김연자가 2002년엔 지방 순회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지방 공연제의는 2001년부터 받았을 수도 있다.[[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290400|#]]) "4월 말고 여름 좋으니 다음엔 여름에 와서 몇 군데 다니며 좀 오래 있어라." 2003년 한달간의 북한 지방 도시 순회 공연을 계획했는데 일본인 납치 사건이 터져, 계획을 취소했다. "김 위원장이 계속 북한 공연을 오라고 했는데 일본 내 반북 감정이 심해 항의도 많이 오고 두 차례 공연 때문에 '북한 가수'처럼 소문이 나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NHK 나가면 왜 북한 가수 내보내냐고 하더라고 한다." * 북한에서 김연자가 앉은 자리가 김대중 대통령이 앉았던 자리였다고 한다. 어떤 북한 간부는 김연자 공연표를 잔뜩 사서 암표로 10배 비싸게 팔았다고 한다. [[https://youtu.be/jdySrHrcOv0|강철환 유튜브]] 김연자가 북한에서 만든 한복을 입고 김정일을 만나서 "평양에서 만든 한복이다"고 말하니 김정일이 "밉다. 남한 한복이 훨씬 이쁘다. 우리보다 남조선이 더 잘 만들죠" 김정일의 혈액형을 질문하니 분위기가 싸해졌고, 다른 간부들이 기밀이랬으나, 김정일이 A형이라면서 그런 질문은 처음 받았다고 대답했다. 북한은 공연할 가사를 사전심의 했고 3명 정도가 리허설을 봤다. <아침의 나라에서> 가사에서 "서울 korea"를 빼래서 "korea korea"로 불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