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옥균 (문단 편집) === 소설/만화 === * 사실 김옥균과 관련한 [[문학]]화가 가장 먼저 이루어진 곳은 [[일본]]으로 1890년대부터 김옥균과 관련한 창작이 활발하였다. 이는 김옥균이 일본에 처음으로 온 정치 망명객 제1호인 점, [[상하이]]에서 맞이한 비극적인 죽음, 일본 [[제국]]의 팽창과 [[아시아주의]]와 관련한 일본 국민들의 기대와 열망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경향과 다른 특이한 작품을 꼽자면 아키타 우자쿠가 발표한 희곡 <김옥균의 죽음(金玉均の死)>(1920년)이 있다. 이는 1920년 7월 [[김동환(시인)|김동환]]이 [[번역]]하여 『창조』지에 게재되었는데 김옥균은 영웅이라기보다는 범부로 그려지고 정치적인 허무주의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일본 신극 운동을 주도하던 오사나이 가오루의 희곡 <김옥균(金玉均)>(1926년)도 있는데 이는 김옥균의 <갑신일록>을 바탕으로 창작되었으며 김옥균을 시대에 맞서는 개혁자로 형상화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일본 정부]]와 [[근대화]]를 막는 전통과 관습을 비판했다.[* 정확하게는 김옥균과 그의 이야기를 소재로 가져와서 당대 일본 정부와 상황을 비판한 것이다.] * [[한국]]의 경우에는 1928년 김진구[* 1896년생의 극작가, 야담가. 1930년대부터 노골적인 친일 성향을 보였으며 이 때문에 [[흑역사]]로 낙인찍혀 해방 후 철저히 잊혀진 탓에 언제 죽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의 희곡 <대무대의 붕괴>[* 대무대는 김옥균이 구상한 미래로 아시아주의에 맞닿아 있다.]가 사실상 처음으로 형상화된 작품이다. 작가의 성향상[* 그는 일본 유학 시절 일본 [[우익]] 인사들과 친교를 쌓았고 '일본 민족과 조선 민족을 반죽하여 한 덩어리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시아주의에 동조하는 친일적인 색채가 엿보인다. 이후 1930년대에는 주로 [[민족]] 수난사의 하나로 김옥균이 다루어졌으며 대체적으로 비운의 인물로 그려진다. 카프(KAPF) 멤버였던 [[김기진]]은 <심야의 태양>(1934년 이후 <청년 김옥균>으로 이름 변경)이라는 소설을 발표하는데 이 소설에서 김옥균을 실패한 혁명가로 묘사하며 [[혁명]]은 민심을 읽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1940년대에는 주로 친일적인 작품 속에서 오족협화나 [[대동아공영권]]의 '선구자'로 자주 등장했는데 대표적인 작품이 [[박영효]]의 친일극 <김옥균의 죽음>(1944년). * [[야스히코 요시카즈]]의 역사만화 <[[왕도의 개]]>에서는 김옥균을 존경하는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혁명 실패와 몰락의 과정에서 주인공의 처지와 거의 흡사한 것으로 묘사된다. 김옥균 본인도 비중있는 인물로 나오며 조선의 혁명가로 일부 고관들은 이제 한물 간 인물로 보고 있지만 민중들에게는 [[인기]]가 있으며 사람은 괜찮은 인물로 묘사된다. 글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일본 기생집에서 이름을 대면 공짜로 해주려 하는 묘사가 있으며 [[카츠 카이슈]]는 "인물은 인물이지만 솔직해서 일을 그르칠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박영효]]나 [[고종(대한제국)|고종]]이 좀 없어보이게 나오고 [[명성황후]]가 대놓고 [[흑막]]처럼 나온 것과는 대조적. 해당 작에서는 지나가는 언급으로 [[흥선대원군]] 역시 뛰어나다고 언급된다. * [[에가와 타츠야]]의 <러일전쟁이야기>에서도 등장하는데 [[만화]]에 등장하는 조선 측 인물들 중 가장 비중이 큰 인물이다. 현재까지도 한국의 김옥균 [[무덤]]보다 일본의 김옥균 무덤이 정비가 잘 되어 있으며[* [[도쿄]]의 아오야마 [[외국인]] 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그런데 묘소 관리비를 몇 년 째 아무도 내지를 않아서 철거될 뻔했는데 이걸 알게 된 주일 한국 [[대사관]]에서 황급히 체납분을 내서 철거되는 일을 막았다고 한다.] '김옥균 연구 모임'이라는 일종의 [[팬클럽]]도 존재한다.[* 재일 [[한국인]] 교수인 금병동([[관동대지진]] 진상 규명 등의 활동을 펼쳤다.)에 의하면 "김옥균은 [[갑신정변]] 이전부터 일본에서 유명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라고 했다. 당시 일본인들 반응으로 김옥균이라는 인물은 '매우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인물'로 그렸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김옥균을 조선의 [[사이고 다카모리]]로 보는 정도인데 당연한 이치로 [[일제강점기]] 당시에는 [[조선총독부]]에서 강력하게 김옥균 미화 사업을 벌일 정도였다. 몰락한 김옥균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가 [[총독]]과 식사를 한다거나 김옥균 처의 수기가 연재되기도 했다. * 망명하려는 김옥균이 조선 관헌에게 송환될 위기에 처하자 일본 선장이 나와서 총을 들이대면서 [[묄렌도르프]] 일당에게 호통쳐서 위기를 넘기는 단편도 있다.[* [[민족문제연구소]]가 꼽은 친일 작품이지만 한국 위키 등에서 치토세마루 호의 츠치 선장이 김옥균의 망명을 도왔다는 내용이 있다. 이런 쪽을 보면 그냥 내려주면 죽으니 인도적인 측면에서 숨기고 [[거짓말]]을 한 것처럼 표현되는데 이는 그가 망명 후 저술한 <갑신일변>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실제로 인도적인 차원이었는지는 알 길이 없으며 이 일화는 <[[왕도의 개]]>에서는 김옥균이 일본인을 믿지 못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에 쓰인다. 한국인은 친일 문학으로 일본인은 당시의 일본을 비판하는데 쓴 소재라는 걸 보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 [[프레시안]]에서 박은숙 씨가 저술한 김옥균 평전 <김옥균 역사의 혁명가 시대의 이단아>를 두고 김기협 씨와 박은숙 씨가 논쟁을 벌인 바 있다.([[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10624143846&Section=04|김기협의 서평]] [[http://www.pressian.com/books/article.asp?article_num=50110701143948&Section=04|박은숙의 반론]]) 격렬한 김옥균까인 김기협도 문제지만 박은숙도 지나치게 김옥균을 고평가하는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다. 그녀는 [[김홍집]]을 지나치게 까면서 김옥균을 견줘 찬양하고 있다. * 대체역사 웹툰 <[[왕 그리고 황제]]>에서는 [[대한제국]]의 총리대신이 되어 고종의 오른팔로서 활약한다. * 대체역사 웹소설 [[고종, 군밤의 왕]]에서는 야심 넘치는 민족주의 정치가로 등장한다. [[김옥균(고종, 군밤의 왕)]] 문서 참조. *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에서 청나라에 징병관으로 간 4학년 사관생도로 등장한다. 그리고 거기서 만난 한 소년이 어디로 가야 나으리 같은 무관이 되냐 묻자 한양으로 가라고 한다. 그리고 그 소년의 이름은 [[위안스카이]]. 자세한 내용은 [[김옥균(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참고. * [[조선, 혁명의 시대]]에서는 대한제국의 3대 총리이자 역사의 변화로 황제가 된 [[완화군]] [[이선(조선, 혁명의 시대)|이선]]의 가장 충실한 신하이자 셋 뿐인[* 나머지 하나는 [[에밀리 브라운]]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폴란드 여의사 [[마르가리타 얀코프스카]], 나머지 하나는 [[니콜라이 2세]].] 친구로 나온다. 다른 개화당원들과 달리 스승 [[유홍기]]와 [[프랑스]]의 영향을 받아 [[일본]], [[프로이센]]을 선망하는 다른 개화당 인사들과 달리 이선의 민주주의 구상을 어느정도 이해하는 인물, 나중에는 이선이 미래를 보고온 인물임을 [[유홍기]]의 유언을 통해 깨닫고 죽기전에 [[이선(조선, 혁명의 시대)|이선]]에게 물어보며 자신의 원래 운명과 대한제국이 일본에 멸망하는 운명을 듣고는[* 미래 서울에는 [[마천루]]가 가득하며 [[스마트폰|손안의 작은기계]]로 [[카카오톡|소통하고 다닌다]]는 사실도 알려준다.] 이선에게 한사람의 [[조선인]]으로서 조선을 구한것에 감사한다.[* 작가의 말에 따르자면 소설의 원래 주인공은 [[완화군]] 이선이 아니라 김옥균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김옥균으로는 조선을 바꾸는데 한계가 있어서 불가능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