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용환(1932) (문단 편집) == 여담 == 2007년 [[17대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의원을 적극 지지하였다. [[18대 대선]] 정국에서도 [[강창희]]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원로자문단 격인 "[[7인회]]" 멤버이자 [[새누리당]] 상임 고문으로 있었다.[* 대표 진박이었던 [[이한구]] 전 [[새누리당]] 원내대표와는 동서 지간이다.] 그러나 당선 직후 '''[[최태민]]의 그림자(= [[최순실]] 국정 농단)에서 벗어나라''' 라는 발언을 했고 그 이후 박근혜의 눈 밖으로 멀어졌다고 한다. 사실 김용환 뿐만 아니라 이외에도 나라를 잘 이끌어가자는 인물의 가치있는 비판 및 발언조차 박근혜는 멀리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김용환은 박근혜가 '임기를 다 마칠 수 있을 지 모르겠다.'라는 발언을 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죽기 몇개월 전, 한 측근이 병상에 누워있던 김 전 의원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전하자 김 전 의원은 '''“거 봐, 내 말 안 들어서 그렇게 됐잖아”'''라며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http://news.joins.com/article/21453307|#]] 김종필과의 관계는 김대중과 김상현의 관계와 비슷하다. 김대중의 측근이었던 김상현처럼 김종필의 측근이었으나, 둘 다 [[권노갑]], [[한화갑]]같은 가신관계는 아니고 약간 독자적인 정치노선을 밟으며 본인들이 모시던 정치 지도자와 결별과 재결합을 반복하다 끝내 화해하지 못한 채로 정치 활동을 마감했다. 김종필과 다르게 김영삼 후보를 대통령으로 지지하기를 거부하며 민자당을 탈당했다가 자민련 창당으로 재결합했으나, 김종필이 이후 내각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자 자민련을 나가 한국신당을 창당했고, 이후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JP와 김용환의 불신의 싹은 1999년의 내각제 공약 파행이 아니라, 이미 1997년 당시 JP가 DJP를 연기하며 자신을 패싱하고 안기부장 [[권영해]]를 통해 YS와 끝까지 (긴급명령을 포함한) 내각제 직거래를 하려고 했었다는 [[이종찬(1936)|이종찬]]의 해석이다. 김용환의 이탈은 내각제에 대한 소신보다는, JP가 자신의 권력을 위해서라면 내각제 역시 수단일 뿐이라는 불신이 있어서 결국 반JP의 길로 가게 되었다는 것. [[https://www.donga.com/news/Politics/article/all/20150424/70902683/1|#]] 재무부 장관시절 유명한 재일 야쿠자이자 기업가였던 [[정건영]]에 대한 외환은행의 추가 대출지원을 단호하게 거절한 적이 있다. 그래서 한동안 일본에는 가지도 않았다고.[* 당시 나이는 만 44세였는데, 이 때문에 정건영이 누구인지 잘 몰랐다는 후일담이 있다.] [[보령시·서천군]]에서 19~21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태흠]] [[충청남도지사]]가 그의 보좌관 출신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