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유식 (문단 편집) === 창업 이전 === [[서울신문]]에 재직하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당시 PC 자체가 국내에서는 생소하던 [[80년대]] 초반 초등학교 6학년의 나이에 전산학원에서 처음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그는 청소년기 내내 [[컴퓨터]]와 게임에만 몰두하게 되는 [[오타쿠]]가 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 때 게임을 통해서 [[일본어]]를 배운 적도 있어서 일본어에도 능통해졌다고 한다. [[하이텔]]의 전신 케텔에서부터 [[PC통신]]에서 활동하기 시작, 90년부터 하이텔 '김유식의 횡설수담'이라는 코너에서 당시 짤막한 시리즈 유머가 대부분이던 시절에 독특한 형식의 유머글로 큰 인기를 끌어 하이텔에서 김현국([[PC Tools#s-3]])과 쌍벽을 이루는 네임드가 되었다. 당시 올렸던 유머글들은 후에 '김유식의 원조 횡수'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군 제대 후인 92년도부터는 하이텔에 '팝니다'라는 코너를 열었다. 이곳에서 그는 [[용산 전자상가]]의 지인을 통해 도매가로 싸게 사들인 컴퓨터 부품을 남성 유저가 많은 PC통신에 여자 이름으로 올리는 [[넷카마]] 상술로 판매해 돈을 벌면서 처음으로 사업가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경쟁업자들이 늘어나자 힘들어진 그는 이 사업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93년 컴퓨터 네트워크를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렇게 일본 신주쿠정보비즈니스전문학교 국제경영과에 입학했으나 네트워크 인프라가 한국보다 못하다는 사실에 실망해 1년 6개월 만에 학교에 관심을 끊었다. 한때는 아예 그만뒀다고 알려지긴 했지만 어찌저찌 졸업은 한 모양. 돈벌이로 눈을 돌린 그는 일본 전자제품을 사서 PC통신을 통해 한국에 판매하다가 日本人게임, 애니메이션, 영화까지 팔기 시작했다. 이를 동경유학생정보센터, 줄여서 동센이라 불렀다. 한국에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이 이루어지기 전이었던 당시에는 이런 물건들을 구매하려면 [[보따리상]]을 통해 흘러 들어온 것을 발품을 팔아가며 구해야만 했고, 해외에 거점을 두고 인터넷으로 직구를 중개하는 사업가는 매우 드물었다. 덕분에 이 사업은 성황을 이루었고 김유식은 유학 [[비자]]가 만료될 때까지 평균적으로 한 달에 약 천만 원이라는 큰돈을 벌었다. 주요 대기업 대졸 신입사원의 연봉이 평균 1500만 원 하던 시절이었다. 한마디로 나름 잘 버는 회사원의 1년 치 수입을 김유식은 한 달만에 벌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은 1996년 4월, 8억 여 원의 판매고 중에서 LD 한 장이 문제가 되어 "음반 및 비디오물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집행유예를 받았다. 지금까지도 널리 퍼져 있는 '[[야한 동영상|야동]]을 팔아서 디시인사이드를 세웠다'는 소문이 여기서 나왔다. 당시 적발된 LD는 [[음란물]]이 아니라 국내에서도 개봉했던 애니메이션인 무사 쥬베이([[수병위인풍첩]])였다고 한다.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CD 등을 판매하던 업체는 그 특성상 저 죄목으로 많이들 잡혀 들어가곤 했다. 김유식의 적발 기사는 현재도 확인할 수 있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6042700289119003&editNo=6&printCount=1&publishDate=1996-04-27&officeId=00028&pageNo=19&printNo=2545&publishType=00010|한겨레 신문 사회면에 실린 기사]] 25일간 구치소에 수감된 뒤 풀려난 그는 하이텔 횡설수설 동호회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잉여|할 일 없이 인터넷만 하던]] 시기를 보냈다. 그러던 중 북한의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정부의 미온적인 대처와 방송 3사의 천편일률적인 보도를 근거로 이 사건이 정부의 자작극이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성 글을 하이텔 횡설수설 게시판에 올렸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경찰청 보안수사대에 의해 검거되어 [[코렁탕|보안분실에 연행]]된 적이 있었다. 실컷 취조를 당한 후 어쨌건 무사히 나오긴 했는데, "조사받았다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는 경고를 어기고 PC통신에 '대공분실 이야기' 시리즈를 연재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https://m.hankookilbo.com/News/Read/199611190082293039|#]] 허나 이후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의문의 전화가 계속 걸려오자 겁이 난 나머지, 영국으로 [[도피유학]]을 떠났다. 떠나기 전에는 [[영어]]나 배울까 해서 갔는데 배우기는 커녕 [[도박]]에만 빠져서 호텔 카지노만 매일 출근하다시피 드나들다가 돌아왔다고 한다. PC통신에 연재했던 '대공분실 이야기'는 디시인사이드 "[[김유식 대표 에세이 갤러리]]"[[http://gall.dcinside.com/list.php?id=yusik&no=46&page=7&bbs=|#]]에 게재되어 있다. [[파일:external/img.khan.co.kr/16_a.jpg|width=500]] 영국 유학 시절 사진들.[* 왼쪽 사진에서 김유식의 뒤에 있는 전차는 런던의 [[제국 전쟁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야크트판터]] 구축전차이다.] 1997년 빈털터리가 되어 귀국 후 자신의 일본 체류 경험을 살려서 책을 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1441645|<일본인과 성문화>]] 베스트셀러에 올랐지만 출판사인 학영사가 인세를 지불하지 않아서 돈을 벌지는 못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