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유신 (문단 편집) == 역임 관작 == ||<-3> '''{{{#white 삼국사기 신라본기 및 김유신 열전에 기록된 역임 관작}}}''' || ||<|4> '''{{{#white 관등}}}''' ||[[소판|소판(蘇判)]] ||서열 3위 관등. || ||[[이찬|이찬(伊飡)]] ||서열 2위 관등. || ||[[대각간|대각간(大角干)]] ||서열 1위관등인 각간에다가 대 자까지 붙힌 최고위 관등. || ||[[태대각간|태대각간(太大角干)]] ||삼국사기 김유신 열전에선 태대서발한(太大舒發翰)을 받았다 한다. 사실상 김유신만을 위한 최최고위 관등. || ||<|6> '''{{{#white 직위}}}''' ||압량주 군주(押梁州 軍主) ||삼국사기 선덕여왕 본기엔 '압량주 도독'이라 되어있다. 도독과 군주는 같은 직위로 압량주의 군대를 총괄했다. || ||대장군(大將軍) / 상장군(上將軍) ||삼국사기 선덕여왕 본기엔 대장군, 김유신 열전에는 상장군을 받았다고 한다. || ||상주 장군(上州 將軍) ||상주의 군대를 총괄했다. || ||상주 행군대총관(上州 行軍大摠管) ||상주 지역의 군대를 총괄하는 동시에 모든 총관의 수장이 되었다. || ||대당 대총관(大幢 大摠管) ||신라의 군대편제인 9당의 총지휘관. 부지휘관은 [[김인문]]이었다. || ||[[상대등]](上大等) ||신하로서 오를 수 있는 최고의 지위. 귀족의 대표이자 국왕의 최측근이었다. || ||<-3> '''{{{#white 김유신 열전에 기록된 당 관작}}}''' || || '''{{{#white 직위}}}''' ||봉상정경(奉常正卿) ||밑 작위와 겸함. 열전엔 당고종이 봉했다고 하는데 사실일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김유신 열전의 원본은 후손들이 과장한 행장록이기 때문. || || '''{{{#white 작위}}}''' ||평양군 개국공(平壤郡 開國公)[* 김유신이 [[고종(당)|당고종]]으로 부터 하사 받은 [[작위]]이다. 작위 뿐만 아니라 관작과 식읍도 받았는데 봉상정경(奉常正卿)과 식읍 2,000호 이다. 그래서 합쳐 부르면 봉상정경평양군개국공식읍이천호(奉常正卿平壤郡開國公食邑二千戶)이다. 다만 김유신에게 내려진 영지인 평양은 실제로 김유신이 지배한 것은 아니니, 명목상 식읍인 것으로 보인다. 유사하게 [[김인문(신라)|김인문]]에게 내려진 작위인 임해군 개국공(臨海郡 開國公)이 있다. 봉지 임해군은 백제 서해안에 해당한다. 참고로 [[고구려]]를 무너뜨린 [[설인귀]]의 작위는 평양군공(平陽郡公)으로 고구려 멸망에 큰공을 세우고 [[안동도호부]]의 도호로 임명되어 고구려 지방을 다스린 적이 있으므로 고구려의 수도 평양의 작위라 헷갈리기 쉽지만 설인귀 작위 평양의 양(陽) 자가 한국 평양의 양(壤) 자와 다르고 중국어 독음도 다르다. 설인귀 작위의 평양(平陽)은 현재의 중국 [[산서성|산시성]]에 위치한 다른 지역으로 서로 다른 지역이다.] ||위 직위와 겸함. 봉지인 평양군은 고구려의 수도인 그 [[평양]]인 것으로 보인다.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