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을동 (문단 편집) === 2008년 이전 === 사실 배우 생활을 하면서도 틈틈히 정치에 도전하기도 했는데, 사실 그녀의 아버지인 [[김두한]]이 소싯적에 자유당인 시절도 있다지만, 본격적으로 제도권에서 활동하면서 [[사사오입 개헌]] 반대도 하고 진보당과 신민당에 입당하기도 한 데다가 [[국회 오물 투척 사건]]까지 일으키기까지 하는 등 쭉 야당 정치인으로 활동하면서 이승만과 박정희에게 저항했던 이력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문제는 그 국회의원 선거활동 때문에 돈을 많이 까먹어서 김을동 본인이 그때 '''고생'''하면서 살았다고 얘기할 정도였으며, 김두한이 죽었을때 '''눈물 한방울도 나지 않았다'''고 했을 정도로 아버지를 좋아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래도 할아버지 김좌진의 명의로 나오던 국가유공자 연금을 고아원에 기부하고 있었다는 걸 안 뒤로는 아버지를 용서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먼 미래에 아버지의 인기를 바탕으로 입문하여 최종적으로 국회의원 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1991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1990년)|꼬마민주당]]에 입당해 서울시의원 동대문갑 2구에 출마했다. 김을동이 이전부터 배우로 잘 알려진 인물인데다가 당시 [[장군의 아들]]이 대히트를 쳤기 때문에 후광효과가 기대되었지만, 막상 선거전에 들어가니 저조한 투표율과 야권 단일화 실패로 인해서 결국 선거에서 근소한 표 차이로 낙선했다. [* 이때 민주당에 같이 입당했던 사람이 야구선수 [[최동원]]이었다.] 이후로도 [[민주당(1991년)|민주당]] 당원으로 재직하다 1995년 지방선거 때 [[동대문구]] 제3선거구에서 당선됨으로써 의정 활동을 시작했다.[[파일:1991 서울시의원 김을동.jpg|height=600]] 1991년 전국 동시 지방 광역의원 선거 서울시의회 동대문(갑) 2선거구 민주당 김을동 선거포스터 그러나 이듬해 민주당이 [[새정치국민회의]]와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으로 분열 사태가 일어나자 민주당을 탈당하고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면서 정치 노선을 바꿨고 [[15대 총선]] 때 과거 아버지가 출마해 당선했던 서울 [[종로구(선거구)|종로구]]에 출마했지만, 하필 선거에 나선 '''상대 후보들이 [[노무현]], [[이명박]], [[이종찬(1936)|이종찬]]이라서 4위로 낙선'''했다. 이후 [[1998년 재보궐선거]] 당시 [[새정치국민회의]] [[노무현]] 후보 유세에 [[자유민주연합]](자민련) 위원장 자격으로 나섰는데, 이는 [[DJP연합]]으로 새정치국민회의와 자유민주연합이 후보 단일화를 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후 [[2000년]] [[16대 총선]]에서는 지역구를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선거구)|성남시 수정구]]로 옮겨서 출마했지만, [[새천년민주당]] [[이윤수(정치인)|이윤수]]에게 패해 낙선했고,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자민련을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해 같은 선거구에 나섰지만, 이번엔 [[열린우리당]] [[김태년]]에게 밀려 낙선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