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응용 (문단 편집) === 기타 === * 호적상으로는 1941년 9월 15일생이지만 실제로는 1940년 음력 3월 1일[* 양력 4월 8일. 일본프로야구 최다통산안타 보유자인 [[장훈(야구선수)|장훈]]과 친구 사이기도 하다.]생으로 [[평안남도]] [[숙천군]][* 당시에는 [[부군면 통폐합]]에 의해 평원군에 편입되어 있었으나, 김 감독은 '숙천 출신'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 출신이다. [[초등학교]] 3학년때 [[6.25 전쟁]] 발발로 아버지 손에 끌려 [[1.4 후퇴]] 때 월남하였다. 이북에 있었을 때는 축구를 했었다고 한다. 1954년에 [[부산광역시|부산]] 개성중학교[* 부친 김식영은 개성중 서무과장으로 근무 중이었는데 야구한답시고 공부를 안 하는 아들이 못마땅하여 야구를 관두라는 불호령을 내렸으나 어린 김응용은 "그럼 학교에 안 가겠습니다"라며 3일간 버텼고 결국 부친이 백기를 들었다고 한다.]에서도 축구를 했었으나 야구부 주장이 와서 "넌 이제 야구선수다"라고 하는 바람에 야구선수 생활을 시작하였다. 부산상고 시절 한때 유니폼을 똑바로 입지 않기도 하고, 학교 대신 번화가에 놀러가는 등 비뚤어지기도 했으나 [[어우홍]] 감독의 애정어린 지도 덕택에 마음을 고쳐먹고 활약하기 시작했다. [[박영길]]이 술회하기를 부산상고-경남고 시합에서 김응용이 홈런을 치면 "에헤이~"하고 환호하며 경남고 1루수의 엉덩이를 딱 때리면서 2루로 달려갔다고 한다. * 평소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잘 안 하기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선수들에게 정을 줄까봐 일부러 안 한다고 한다. [[김성근]] 감독도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잘 안 한다. 단, 김성근은 선수가 홈런을 칠 때만 안할 뿐[* 2010 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는 [[양준혁]]이 홈런쳤을 때는 하이파이브를 했다.] 경기에서 이긴 뒤엔 선수들과 하이파이브를 한다. 하지만 김응용 감독은 선수가 홈런칠 때는 물론 경기에 이겼을 때도 하이파이브를 잘 안 한다. [[장성호]]는 김응용 감독이 팀이 끝내기로 이기면 혼자 덕아웃을 빠져나가 손목 운동을 하면서 흡족해한다고 증언헀다. * 화려한 행사도 싫어하고, 약간의 [[의전]]도 달가워하지 않는다. 2012년 [[이종범]]의 은퇴식 때 초/중/고/대 소속팀들의 관계자와 함께 흙을 붓는 순서가 있었는데 그때 이종범에게 "야 뭐 복잡한게 있냐?"라고 말해서 [[시청자]]들을 웃겼다. * [[강영식]]과 [[채태인]]이 예전에 김 감독의 집에서 숙식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두 선수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야구]]를 못 할 뻔했는데 김응용 감독이 집으로 데려와 자식처럼 키우다시피 했다. 공교롭게도 두 선수 모두 김 감독이 좋아하던 덩치 큰 왼손잡이 선수였고 더구나 채태인은 [[개성고등학교 야구부|까마득한 고등학교 후배]]였다. 그리고 둘 다 김 감독이 휘하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강영식은 2000년 해태 감독 시절 1년간 데리고 있었고 훗날 삼성 감독으로 온 뒤에는 프랜차이즈 외야수 [[신동주(야구)|신동주]]를 내주는 조건으로 강영식을 데려왔다.[* 하지만 다시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고 트레이드 통보했을 때 김응용한테 찾아가서 가기싫다고 울기도 했다.] 채태인은 감독이 아닌 사장 시절에 데리고 있던 선수였는데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 당시 삼성의 지명을 한 것도 사장이던 김응용이 채태인의 지명을 지시한 것이나 다름 없을 정도로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 [[임창정]], [[고소영]] 주연의 [[영화]]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에서 [[카메오]]로 나온 적이 있다. 극 중 경기는 대부분 [[LG 트윈스]]와 [[해태 타이거즈]]의 경기이다 보니 특별출연한 듯. 영화 DVD의 특전영상에 김응용의 NG씬도 2컷이나 들어가 있다?![* 재밌는 건 이때 [[김성한]] 당시 코치도 김응용 감독과 같이 출연하였다는 거고, 대단한 연기를 선보이며 인상을 심어주었다.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김성한이 밝힌 일화로 김응용이 제작자에게 '출연료는 안주나?'했더니 1억원은 받아야겠다고 농담반 진담반으로 했다가 김응용에게는 1천만원, 김성한에게는 7백만원을 입금시켰다고 한다.] * 역대 야구감독 중에서 가장 높은 [[인지도]]를 얻었다 할 만하며 [[선동열]]과 [[이종범]]이 모두 [[일본]]에 진출하게 되자 인터뷰에서 나온 "[[동렬이도 없고, 종범이도 없고]]."라는 [[명언]]은 그 당시 최고의 유행어로 등극하며 수많은 연예인들이 김응용의 성대모사를 하기도 했다. 덕분에 철옹성같은 카리스마의 대명사였던 김응용 감독의 이미지가 "푸근한 옆집 아저씨"로 개선되기도 했다. * [[2000 시드니 올림픽]] 대표팀에서 처음으로 프로야구 선수들 위주로 구성된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맡아 동메달을 획득했다. 야구 종목에서 딴 첫 메달이자 역대 국가대표팀 가운데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대표팀의 금메달 다음 가는 성적이다. * 2004년 8월 5일 문학구장. 12-5로 삼성이 앞서 있던 8회 초 삼성 진갑용이 타석에 들어서려고 할 즈음, [[SK 와이번스|SK]] 덕아웃에서 느닷없이 김기태가 뛰쳐나와 백스톱 쪽 그라운드를 가로질러 쏜살같이 삼성 덕아웃으로 달려갔다. 다만 김기태는 싸우러 간게 아니라, 삼성의 덕아웃을 급습하던 [[틸슨 브리또|브리또]]를 말리기 위해서[* 당시 브리또는 삼성의 상대 투수였던 [[케빈 호지스]]로부터 몸쪽 위협구를 맞을 뻔 했는데 이에 격분해서 방망이를 들고 야구장 내부 통로를 통해 삼성 덕아웃에 쳐들어갔다.] 간 것이었다. 그리고 SK 선수들이 그 뒤를 따라 삼성 진영으로 줄줄이 쳐들어가며 [[벤치 클리어링]]이 발발하였다. SK 외국인 선수 [[호세 카브레라]]가 김응룡 감독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이 포착됐으나, 김응룡 감독이 카브레라의 목을 휘감고 제압했다. 당시 64세. 다음날 김응용 감독에게 헤드록을 당한 카브레라는 구토와 어지럼증을 느껴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고, 삼성 포수 [[진갑용]]에게 역시 헤드록을 당했던 SK 포수 [[박경완]] 역시 목 부상을 입었다. * [[2009 WBC]] 감독 선발 문제가 뜨자 선동열 삼성 감독이 김응용 삼성 사장을 대표팀 감독으로 추천하며 자기가 불펜에서 대기하겠다는 농담을 했다. *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게스트로 출연했을 당시 몰래 온 손님이 [[이종범]]과 [[양준혁]]이 나왔다. 양 팀의 감독으로 우승을 거뒀고 양 팀을 대표하는 선수라 섭외가 된 듯 하다. 그간 섭외가 많았음에도 단독 방송은 처음이라고 한다. 인간적인 모습들이 꽤 나오니 팬이라면 꼭 보는 것을 추천한다. * 가족으로 아내와 딸 둘이 있다. 아내 최은원[* [[세브란스의전]] 출신으로 종로구의사회 회장을 지낸 소아과 의사 최억일(崔億鎰) 박사의 차녀이다.][* 여담으로 야구장에는 딱 한번 가보셨다고 하는데, 옆자리의 관중들이 남편을 향해 거친 욕을 내뱉는것을 보고는 두번다시는 가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여사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를 나왔고, 두 딸이 모두 [[음악]]을 전공했다고 한다. 꽤 오랫동안 [[기러기 아빠]] 신세였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 홀로 지내다가 해태 말기에는 방세조차 내기 힘든 신인들을 불러들여 자기 집에서 지내게 했다. 그런데 해태 말년에는 해태가 가난한 팀이라 그런지[* 아무래도 해태가 돈이 없다보니 김응용 감독이 10회 우승을 시켜줬어도 연봉을 많이는 못 줬다. 그나마도 다른 팀 감독들이 우승감독이 저정도 받으면 우리는 짜게 받는 거 아니냐해서 계약금 대신 연봉으로 올려달라 한 거라고 한다. 2000년 김응용 감독이 받은 연봉은 '''이름값에 걸맞지 못한 겨우 1억 3,000만원에 불과했다'''.] 두 딸의 [[미국]] 유학비를 대느라 월급에서 남는 게 거의 없었고 이전에 저축한 돈도 까먹었다 한다.[* 더군다나 그 시기가 1$=1,800₩ 수준의 살인적인 고환율을 자랑하던 [[외환위기]] 시절이라는 건 감안해보자.] 신인 투수 [[조지훈(야구선수)|조지훈]]과 김강래에게 한우를 사줬다가 손에 쥔 60만 원짜리 계산서를 들고서 '통장 잔고 확인해봐야겠다' 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kbo&ctg=news&mod=read&office_id=076&article_id=0002280956|#]] * 김응룡 감독이 2012년에 한화 감독으로 부임하자마자 [[http://sports.donga.com/3/01/20121015/50130604/3|"펜스거리 짧지 않나?"]] 지적을 하였고 한화는 바로 펜스를 뒤로 미는 공사를 하였다. 이후로 펜스 근처에서 공이 잡힐때마다 응룡존이 1승했다는 드립이 생겼다. * [[애정통일 남남북녀]]에서 스승의 날을 기리기 위해 양준혁과 김은아가 김응용과 만나게 되었다. [[용인시]]에 소유한 대지에 농사를 짓고 여생을 보내는 중. 방송을 보던 야구팬들은 한화를 떠나서 신수가 훤해졌다고... 양준혁이 김은아에게 김 감독은 뜬금없이 직구를 던지는 걸 좋아한다면서, 김응용에게 고기 사먹게 용돈 달라고 하자 지갑에서 5만원을 꺼내 줬다. 하지만 밭을 멘다고 사람쓰면 일당으로 백만원 정도는 들 평수를 양준혁이 하게 됐다. * 방송 막바지에서 이북 출신인 김은아 양이 이북식 반찬을 해와 김응용에게 전달하자 눈시울 붉히는 모습을 보여 야구팬들의 가슴을 짠하게 만들었다. 이북식 음식을 보자, 김 감독은 어머니와의 추억과 이북식 닭곰탕인 온반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의사가 하루에 한 잔만 술을 하라고 했다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아 괜찮다면서 여러번 마시며 고향의 어머니와 가족을 그리워 하는 모습을 보여 시청자를 애잔하게 만들었다. * 김응용 감독의 덩치가 20대에는 지금보다 더 좋아 엄청나게 크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신발사이즈가 310mm이라는 얘기에는 다들 더욱 놀란다고 한다. 하긴 185cm 키에 발도 그만큼 크면 이상한 건 아니겠지만, 예나 지금이나 300mm대 신발을 신는 사람을 대한민국에서 찾기 어렵다는 걸 생각하면 놀랄만도 하다. 국내에서는 300mm대 신발이 많이 없는지라 신발을 사야 할 때는 스프링캠프 등 해외로 나가야 할 일이 있을 때 한번에 몇 켤레씩 잔뜩 사들고 왔다고 한다. * 선수들의 개인 타이틀을 챙겨주지 않기로도 유명하다. 타율 타이틀의 경우 누적스탯이 아닌 비율스탯인지라 자칫하다간 타율을 까먹을 수 있기 때문에 [[박용택|시즌 최종전에는 내보내지 않거나]] 심지어 [[홍성흔|자팀 선수의 라이벌 선수]]에게 고의사구를 던지면서 --욕은 먹을지 언정-- 타이틀을 챙겨주는데 김응용의 경우 '진정한 리딩히터는 마지막 경기까지 뛰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고 일본에서 선수생활 후 한국으로 건너온 감독들의 타이틀 챙겨주기 움직임을 굉장히 싫어하였다. 김일권이 국가대표 시절 세계 대회에서 수위타자 등극을 눈 앞에 두고 있었으나 김응용은 '쳐서 먹어 임마'[* 안타를 많이 쳐서 타격왕을 하라는 의미.] 한 마디로 일축하고 김일권을 1번타자로 기용했고 그날 5타수 2안타를 치면서 수위타자 타이틀을 내줬다고 [[전설의 타이거즈]]에 출연한 [[김성한]], [[김종모]], [[김일권]]이 술회했다. * 휘하 선수들에게 [[고기]]를 매우 많이 먹을 것을 강조했다. 그러는 한편 본인 또한 고기를 매우 많이 먹었다. 이유야 당연히 [[운동선수]]들은 육체노동을 하는 직업답게 [[단백질]] 섭취를 매우 중요시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렇다.[* 김응용과 비슷한 사례로 [[박항서]]가 있다. 박항서가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되어 베트남에 갔을 때, 베트남 축구선수들의 식단이 '''채소밖에 없는 등 너무나도 부실하여''' 박항서 본인이 직접 사비를 들여가며 식단 개선에 힘을 쓰는 한편 베트남 축구 협회에도 베트남 축구선수들에게 고기를 최대한 많이 배급할 것을 요청해서 현재는 고기가 풍부하게 나오는 등 식단 자체도 많이 좋아졌다.] 선수 식당에서도 본인이 직접 선수들 상대로 매 끼니마다 잔반 검사를 했을 때 '밥을 남기는 것은 용서를 해도 고기를 남기는 것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고 말할 정도로 휘하 선수들에게 고기를 최대한 많이 사 주고 그걸 억지로라도 꾸역꾸역 먹였다고. 김응용 본인도 고기를 상당히 좋아하며 해태 시절의 제자들 피셜에 따르면 햄버거를 많이 먹는 편이었다고 한다. * [[KBO 올스타전/2015년|2015년 KBO리그 올스타전]]에서 최초로 그의 공로를 기리는 행사가 진행된다. 제안자는 [[김경문]] [[NC 다이노스]] 감독이며 이날 김응용 감독은 나눔 올스타팀의 감독인 [[염경엽]]([[넥센 히어로즈]]) 감독을 대신해 1회의 감독을 맡았다. * 정치 성향은 진보적이다. 2017년 [[19대 대선]]을 앞두고는 [[문재인]] 후보를 지지선언했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前 대표를 지지하는 사회 각계인사들 모임 '더불어 포럼'에서 공동대표를 맡았다.[* 건달 할배로 유명한 [[채현국]] 이사장이 상임고문을 맡았다.] * [[2017년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자로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마운드에 오를 예정이었다. [[http://www.news2day.co.kr/n_news/news/view.html?page_code=&area_code=&no=93970|[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 김응용 회장…애국가 가창 백지영]] 그런데 이날 김응룡을 능가하는 [[문재인|깜짝 손님]]이 등장하였다.[* 공교롭게도 김응용 전 감독은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을 지지하겠다고 선언한 적 있다.] [[2017년 한국시리즈]] 문서로. 대통령 보안상 김응용 감독을 시구자로 홍보하고 진짜 시구자가 나온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에선 타이거즈를 9번 우승시킨 감독이고 한국 야구계에 공로가 큰 사람을 [[병풍]] 취급 하지 않았냐 하는 비판의 목소리들도 있었다. * 2019년 12월 10일에는 해태, 삼성 감독 시절 제자들 그리고 동시대에 활약했던 야구 원로들과 함께 서울 [[청담동]] 리베라호텔에서 팔순연 잔치를 열었다. 2020년 4월이 되어야 정확히 팔순을 맞이하지만, 프로야구 시즌 등의 일정으로 야구인들이 다 모이기 힘든 점을 고려해 2019년 말로 앞당겨 팔순 잔치를 치르기로 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듬해 연초부터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이렇게 다수의 인물이 실내에 한데 집결하는 것이 오랫동안 어렵게 되면서, 시기를 앞당겨 팔순잔치를 미리 치른 것이 어찌보면 신의 한 수가 되었다.] 여기서 타이거즈VS라이온즈 레전드 매치 기획도 나왔다고 한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인물은 해태, 삼성 두군데서 다 뛰어본 [[이순철]], [[양준혁]] 그리고 [[조계현]]. [[파일:김응용 감독 팔순연.jpg]] * 한화 이글스 감독 시절을 제외하면 한국야구에서 드물게 야구 인생에서 '다' 성공했다. 이 말인 즉슨, 베이징 올림픽 우승 감독이지만 늘 한국시리즈 우승에는 실패하는 [[김경문]] 감독, 국제전 최고의 감독이지만 한화에서는 죽을 쓴 [[김인식]] 감독, 삼성 라이온즈의 통합 4연패와 정규리그 5연패를 이뤘지만 국제대회에서는 약한 [[류중일]] 감독과 달리 선수 시절도 화려하고 리그에서도 감독으로서 해태의 9번 한국시리즈 우승과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끈 데다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시드니 올림픽에서 일본을 꺾고 한국에게 동메달을 안기는 등 KBO 리그와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모두 성공했다는 얘기. 심지어 프런트 수장으로서도 삼성왕조 설계로 크게 성공했다. *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해태 선수들이 말하길, 덩치에 맞지 않게 소심한 성격이라고 한다. 강태원, 김일권, 이건열, 장채근, 최해식이 밝힌 일화로, 김응용 감독은 선수들이 자신의 방을 찾아올때 뭔가 불안하다 싶으면 문고리를 걸어놓은 상태에서 문을 빼꼼 연다던지, 경기 중에 뭐가 불안한지 종이를 찢는 행동을 일삼았다고 한다. 그렇게 종이를 찢다가 경기가 끝나고 나면 오더지가 반으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 그리고 본인은 그런 소심한 성격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선수들을 때리고, 폭군처럼 군림했다고 한다. 8-90년대 해태 타이거즈에 있으면서, 자기 눈에 거슬리면 바로 발길질을 하거나 물건을 집어던져 공포 분위기를 조정하면서도, 막상 중요한 경기에서는 타석에 선 타자를 제대로 못보거나, 마운드의 투수에게 뭐라 말을 못하고 코치만 보냈다고 한다. [[이순철]]이 말하기를 '''보기에는 굉장히 대범하고 냉혹해 보이는 분인데, 옆에서 보면 무척 여린 사람이더라.''' 라는 평가를 했고, 과거의 악연을 이후 화해하면서 이해가 간다는 평을 남겼다. * 삼성 감독 시절 부산상고 47회 동기생인 정규창 교장이 개성고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었고 부산 원정 때 꼭 야구공, 야구배트를 들고 모교를 방문했다. 정규창 교장이 재학생 당시 김응용 감독은 주위 학생들의 도시락을 다 까먹고 시치미를 뚝 뗐다고 술회했는데 이제서야 그때 까먹은 도시락값을 한다고 웃었다. * 삼성 사장에 취임할 당시 [[부산상업고등학교]] 후배이기도 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축하 화분을 받았다. 그러자 주위에서는 이참에 야구장 좀 지어달라고 대통령한테 부탁하는 게 어떠냐는 부추김에 곤혹스러워하기도 했다.[[http://egloos.zum.com/lm4w/v/6217156|#]] * 본인이 미국 대학팀에서 연수를 받은 덕에, 1983년 초 동계 훈련 기간에 자율 야구의 일환으로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omanvolleyball&no=3979579|배구공을 훈련에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기리그 우승 및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다. * 술을 좋아하여 해태 감독 시절 저녁 식사때마다 맥주 3~4병을 [[반주]]로 들이켰다고 한다. 그러다가 98년 시즌 팀의 모기업이 경영난에 처하고 마침 의사의 절주 권고도 받아 이후로는 술을 절제하는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