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정남(북한) (문단 편집) == 기이한 행보 == 이상하게 인터넷 커뮤니티 등지에서 김정남은 순전히 외모 때문에 불공정하게 [[오덕후]] 취급을 받는 경우가 빈번한데, 2001년 5월 1일 김정남의 [[일본]] 밀입국 사건은 아키하바라 방문 목적 운운하며 비웃을 일이 아니라 중대 정치 뉴스였다. 이게 당시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이유는 김정남은 북한에서의 위치 덕분에 암묵적으로 사실상 자유로운 출입국이 가능했을 것이라는 게 당연했다. 실제로 김정남의 위조 여권에는 이미 여러 번 일본을 방문한 기록이 남아있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5433019|#]] 일본은 김정남을 불법 입국자 수용소에 처넣었고 5월 4일에 추방해버렸다. 이것 때문에 당시 외무대신이었던 [[다나카 마키코]]가 "이런 인간을 일본에 두면 북한에서 미사일이 날아온다. 빨리 돌려보내지 않으면 큰일난다. 빨리 쫓아내라"라고 발언해 [[중의원]]에서 [[스즈키 무네오]]가 질문했었으나, 당시 중의원 의장 [[마치무라 노부타카]]는 그런 발언은 찾을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때 김정남은 '''비행기 1등석을 모조리 사버리는 [[FLEX|미친 짓]]'''을 통해 비행기까지 쫓아온 기자들을 따돌렸다. 이를 두고 [[미국]]이 김정남의 밀입국 정황을 미리 포착하고 [[미국 중앙 정보국|CIA]]를 통해 일본 정부에 압력을 넣었다는 [[카더라]]도 있었을 정도다. CIA 개입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0&aid=0000062225|#]])은 해당 링크에서 한 정보기관 관계자에게 부정 되었지만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것 자체가 일본이 김정남을 밀입국자 취급한 게 당시에 매우 심각하게 받아 들여졌다는 증거다. 김정일이 노발대발할 만한 일이 맞는다. 또한 김정일이 노한 것에는 김정남이 자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미디어에 자신을 노출했다는 점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일부 북한 전문가들은 김정남의 일본 밀입국 사건이, 그렇지 않아도 이복 동생들에게 상당 부분 밀려나 있던 그가 아버지에게서 완전히 신뢰를 잃어버린 사건이라고 평한다. [[파일:external/dimg.donga.com/6818096.1.jpg]] (2001년) 해당 밀입국의 목적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중동]] 지역 미사일 판매 대금을 받으려 한 것이었다는 둥 추측이 많았지만, 아무 도움도 되지 않을 유치원생 나이의 어린 아들 김금솔과 아내 신정희, 그리고 처가 친척으로 알려진 리경희만을 동반한 점으로 볼 때 사실 진짜 [[도쿄 디즈니랜드]]에 아들을 데리고 놀러 가는 게 목적이 아니었을까 하는 설이 지지를 얻고 있다. 진실은 알 길이 없지만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현지 공항에서 김정남의 아내와 여자 친구는 어두운 표정으로 얼굴을 가리기에 급급한데 아무것도 모르는 김정남의 아들이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은 씁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당시 언론에서는 이 사진을 보고 아들의 손을 잡고 가는 동행한 사람은 김정남의 아내가 아니라 보모이며, 선글라스를 낀 미녀가 김정남의 아내라는 설도 있었다. 또는 선글라스녀는 경호원이라는 설도 있었다. 선글라스를 낀 젊은 여자는 이름은 서영라, 1976년생으로 [[조선로동당]] 126 련락소 직원으로 김정남의 경호원 겸 감시역으로 배치된 상태였다. 전직 국정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 때는 내연녀였지만 나중에 세 번째 부인이 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남 내연녀' 서영라는 北 공작원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22RAW88pjk]]] 아무튼 이 사진의 실체에 대해 왈가왈부가 많았던 것은 사실. 일본 밀입국 시도 사건 때문에 김정일의 눈 밖에 나서 외국을 떠돈다는 소리가 있었으나 [[김정일]]이 [[뇌졸중]]으로 쓰러졌을 때, 발 벗고 달려가 [[프랑스]]측 의료진을 섭외해서 평양으로 왕진 오게 했다고 한다. 나름 효심은 있는 듯했다.[* 실제로 김정일은 비록 권력의 후계자는 되지 못했으나 장남인 김정남에 대해 강하고 애틋한 부성애를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김정남이 해외에서 북한 입장에서는 온갖 반동스러운 발언을 하고 다녀도 딱히 제지하지 않고 자유로운 생활을 꾸준히 보장해준 것. 실제로 김정남은 김정일 생전에는 평양에 제법 들락날락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외에 쌓아둔 인맥이 많은데, 특히 중국에서의 인맥이 막강하다. 김정은의 측근이 김정남을 제거하려고 하자 중국이 막았다는 설도 있을 정도고.[[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9037695|#]] 실제 김정남은 상당기간 중국 마카오에서 생활했으며 아들 김한솔이 김정남의 암살후 인터넷에 올린 영상에서 아들인 자신과 김정남의 가족들을 도와준 정부로 네덜란드, 미국과 더불어 '''중국 정부'''를 언급한 것을 보아[* 영상의 진위여부는 불명확 하지만 국가정보원이 김한솔일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김정남은 중국정부와 큰 접점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때문에 김정남이 살아 있을때는 '''중국의 지원'''을 뒤에 업고 북한내 친중국파 장성들과 같이 '''동생과의 [[내전]]'''을 벌이는 예측도 나왔고, 김정남이 암살당한 이유가 중국의 개입이나 북한내 김정남파의 봉기를 두려워해서라는 주장도 있다 앞서 언급한 일본 방송 인터뷰를 보면 '''"북한"'''이라는 명칭을 썼는데 이게 굉장히 파격적인 일이다. 남한 정치인이 대한민국을 "남조선"이라고 지칭하는 것과 같다.[* 2012년에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통령 후보가 발언한 '남쪽 정부'가 우리에게 어떻게 인식 되었는가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그나마 김정남이 김정일의 장남이니까 당장 화를 안 입었지 만약 단순한 북한 고위층이었다면 얼마 못 가 죽었을 것이다.[* '''결국 [[김정남 피살 사건|16년 후에 사망하고]] 말았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3대 세습을 반대한다'''는 말을 매우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물론 목숨을 생각해서 바로 내부적인 결정을 따라야 한다고 살짝 물러나긴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