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정렬(1917) (문단 편집) ===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 || [[파일:김정렬_프로필.jpg|width=100%]] || || 공군참모총장 시절 || 1948년 9월 13일 그는 조선경비대 항공기지 사령부 비행부대 부대장으로 임명되었고 [[여수·순천 10.19 사건]]이 발생하자 진압작전에 참가하여 공중 지원을 실시했다. 1949년 2월에는 [[중령]]으로 진급, 육군항공사관학교 초대 교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제주 4.3 사건]] 진압 및 옹진지구전투 지원'이라는 임무를 맡아 출격했다. 이후 [[국군조직법]]에 의해 [[대한민국 공군]]이 [[대한민국 육군|육군]]으로부터 독립한 1949년 10월 1일에 초대 [[대한민국 공군참모총장|공군참모총장]]에 임명되었고[* 최용덕 장군이 초대 국방차관으로 영전하여 있었던 까닭도 있다.] 이듬해 5월에 공군 [[준장]]으로 진급하였다. 이때 그는 공군 육성에 전심전력을 경주하여 오늘날의 공군을 만드는데 기초를 쌓았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그는 공군참모총장으로서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전투기의 필요성을 건의하였다.[* 이때 건의한 것이 회고록 이름인 항공의 경종이다. 지금은 절판되었기 때문에 중고나라 및 헌책방에서 구할 수 밖에 없다. 또한 15000원이지만 헌 책방에서 기본적으로 3만원~4만원 정도 된다. 아무튼 책을 사서 보면 아쉬울 수도있는데 [[김정렬(1917)|서암]]이 쓰다가 중간 지병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미완성 회고록으로 남았다. 그러나 공군 창설에 대해서는 충분히 잘나와있기 때문에 만족할만하다. 참고로 제목에 있는 항공의 경종은 부록에 수록되었다.] 열악하게도 당시의 공군의 비행전력은 연습기와 연락기뿐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건의를 한 이후 1950년 7월 2일 미 극동 공군으로부터 [[P-51|P-51]][* 1940년대 말에 미군의 항공기 명명 체계가 바뀌면서 전투기도 Pursuit에서 Fighter가 되었다.] 전폭기 10대를 지원받았다. 그는 자신의 전투기에 탑승, 진두에서 지휘했다. 그렇지만 당시 만 33세에 불과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리고 그의 지휘를 따라 공군은 육군의 근접지원 및 후방 차단 작전을 감행, 국군의 지상작전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특히 그는 1951년 8월 17일부터 9월 18일까지 지리산지구 전투경찰사령부 요청을 받고 P-51 전폭기들을 이용,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에 투입시켜 지상작전을 도왔다. 휴전 후인 1954년 12월에는 다시 공군참모총장에 취임하였다. 1957년 7월 6일 공군 [[중장]]으로 예편한 후, 같은 달 [[대한민국 국방부장관|국방부 장관]]으로 발탁되었다. 그 후 [[박정희]]가 소장진급심사 대상자가 되어 소장 진급이 확정된 상황에서 [[곽영주]]의 훼방으로 인해 소장 진급이 취소되자 이 소식을 듣고 급하게 달려가서 심사위원들을 잘 달래고 박정희를 변호해줘서 박정희가 무사히 소장에 진급하게 도와줬다. 이 은혜를 잊지 않고 있었던 박정희는 훗날 김정렬을 [[민주공화당]] 의장, 제7대 [[전국구]] [[대한민국 국회의원|국회의원]] 등에 임명하였다. [[5.18 민주화운동]]의 유혈 진압 이후, [[대한민국 제5공화국|제5공화국]]을 출범시키려던 [[전두환]]의 부탁으로, 친구였던 [[최규하]]를 설득, 8월 16일에 하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대한민국 제6공화국|제6공화국]] 초기인 1987년 [[국무총리]]에 임명되었다.[* [[국무총리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정두언]]의 증언에 의하면, 김정렬은 총리 재임시에 매일 저녁 식사 후 [[코냑]]을 한 잔씩 마셨다고 한다. 그래서 총리실에서 부처 예산으로 코냑잔 여러 개를 구입했었다고 한다. 김 총리 부인이 퇴임 전 이삿짐을 쌀 때 이 코냑잔 중 일부를 같이 부쳤는데, 여느 날과 같이 저녁 식사 후 코냑을 마시던 김 총리가 잔이 없어진 걸 발견하고 "평생을 부끄러움 없이 살아왔는데 하루 아침에 명예에 먹칠하려고 그러느냐"고 당장 공관에 다시 코냑잔을 갖다 놓으라고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재밌는 건 [[4.19 혁명]] 당시에도 이승만에게 [[하야]]를 건의했다는 점.[* 드라마 [[제5공화국(드라마)|제5공화국]]에서도 이 부분이 언급된다. "세상 참 묘하구만. 이승만 대통령에게 하야하라고 설득한 지가 엊그제인데 오늘 똑같은 부탁을 받으니 말이야."][* 드라마 [[제2공화국(드라마)|제2공화국]]에서는 [[4.19 혁명]] 당시 [[홍진기]]와 함께 [[이기붕]]을 찾아가 “이렇게 국민들의 민심을 잃은 상태에서 계엄령으로 무력 진압하게 되면 유혈사태가 뻔해지는데 이 상황에서 [[김일성]]이 남조선 동포들을 구하겠다며 내려온다면 어떻게 막나?”면서 부통령 당선 사퇴를 건의하는 장면이 나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