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정은 (문단 편집) === [[숙청]] === [[김일성|할아버지]]나 [[김정일|아버지]]에 비해 권력 승계 당시의 불안정한 정치 기반을 의식하여, 자신의 고모부이자 정치적 후견인인 [[장성택]]과 이복 형 [[김정남(북한)|김정남]]으로 대표되는 친족들을 비롯해 많은 군 장성들을 사소한 사유만으로도 목숨을 빼앗는 공포 정치를 펼쳤고, 그 덕에 후계자 수업이 덜 끝난 상태에서, 그것도 2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최고 권력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권력 세계를 확실히 휘어 잡은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김정은 '''집권 초기''' 무분별 대규모 숙청을 통한 공포 정치는, 그의 정치적 입지가 [[북한]]의 건국자인 [[김일성]]과, 권좌에 오르기까지 수십 년간을 권력 핵심에서 복무하며 정무 감각을 익히고 세력을 다진 [[김정일]]에 비해 비교적 불안정하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은이 권력 전면에 나선 2012년 7월 이후 사형 당한 고위 간부는 100여 명에 달한다. 전술한 [[국정원]]의 발표 소스는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2016년에 발간한 『김정은 집권 5년 실정백서』를 인용한 것으로써 국정원 산하 김정은 집권 이후 총살처형된 간부들은 2016년 기준 총 140여 명으로 2012년 3명, 2013년 30여 명, 2014년 40여 명, 2015년 60여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는 [[김정일]] 집권 초기에 [[김정일]]이 권력 기반을 다지기 위해 자행한 [[심화조 사건]]에서 희생당한 수천 명에서 수만 명에 이르는 사람 숫자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오히려 김정일에 비해 권력 획득 과정이 안정적이거나, 큰 차이가 없음을 보여주는 반증이라는 의견도 있다. 김정은의 첫 표적은 [[김정일]] 사망 이후 군부 실세로 꼽히던 [[리영호]] 인민군 총참모장이었다. [[리영호]]는 [[김정일]]의 죽음이 임박하던 시절, 인민군 총참모장-당 정치국 상무위원-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파격 승진을 했던 인물로, [[김정일]]이 김정은의 사람으로 쓰려고 발탁한 인물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김정은은 2012년 7월 리영호를 ('일신 상의 이유로 모든 보직에서 물러났다'고 표면상 밝혔지만) 해임해 버렸다. 그의 해임은 김정은의 군 통제 강화 과정에서 비협조적 태도를 취한 데 대한 문책성 인사로 알려졌다. [[리영호]]를 포함해 [[김정일]]의 장례식 때 영구차를 호위했던 김정각, 김영춘, 우동측 등 군부 4인방도 김정은 시대 개막 이후 모두 숙청되거나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세종연구소]]와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주최한 2018년 4월 18일의 세종국가포럼의 발표에 의하면, 속칭 영구차 호송 7인방이 숙청된 일화는 과장된 면이 있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는 김정은의 잔학성을 강조하기 위해 영구차 호송 7인방이 거의 숙청되었다고 말하여 왔다. 이에 따라 다수 언론들은 거듭된 숙청으로 [[김정일]] 사망 당시 김정은의 후견인으로 점쳐졌던 총참모장 [[리영호]], 인민무력부장 김영춘 등 이른바 운구차 7인방은 모두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고 주장하면서 운구차 7인방이 대부분 숙청된 것처럼 왜곡 보도해왔다. 그러나 [[리영호]] 총참모장은 과거 군부가 관장하던 외화벌이 사업을 당과 내각으로 이전하는 데 반발하다가 2012년 7월에 해임되었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며 김정은은 동년 5월 14일 군대가 너무 돈 맛을 들였다. 총과 총알은 당과 국가가 만들어 주겠으니 군대는 싸움만 잘 하면 된다라고도 지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리영호의 해임은 김정은의 1인 지배 체제 강화와는 무관하게 북한 군부를 사정(査正)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숙청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운구차 7인방 중 김기남과 최태복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은 2017년 10월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를 계기로 은퇴했는데 당시 그들의 나이는 각기 88세와 87세였다. 그러므로 이들의 퇴장 사유는 단순한 고령 때문일 것이다. 또한 김영춘은 2013년 4월 인민무력부장직에서 해임되었지만 당 중앙위원회 군사부장직을 맡고 있다가 은퇴했으므로 숙청과는 무관하다. 2013년에 김영춘의 나이가 77세였으므로 당시 그의 인민무력부장 해임도 나이에 따른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김정각은 2013년 4월 총정치국 제1부국장에서 인민무력부장으로 승진했다가 김일성군사종합대학 총장직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후 김정각은 인민무력성 제1부상직으로 다시 이동했다가 2018년에는 인민군 총정치국장이라는 군부 1인자 직책에 잠깐 올랐다가 2018년 5월 평양시 당 위원장을 지냈던 김수길에게 총정치국장 자리를 넘긴 걸로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우동측 전 국가안전보위부 제1부부장은 2012년 3월 [[뇌출혈]]로 쓰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퇴장도 정치적인 숙청과는 전혀 무관하다. 이처럼 운구차 7인방의 운명을 분석해보면 [[장성택]]을 제외하고는 김정은의 1인 지배체제 강화를 위해 숙청된 인물은 없다는 것이 세종연구소의 발표 내용이다.[* [[http://www.sejong.org/boad/bd_news/1/egoread.php?bd=10&itm=&txt=&pg=1&seq=4293|세종국가전략포럼: 2018 남북정상회담과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 전략]]] 2013년 12월에는 자신의 고모부이자 김정일의 사망 이후 북한 2인자로 군림하던 [[장성택 처형 사건|장성택을 전격 처형]],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죄목 중에는 김정은에 대해 왼새끼를 꼬며(딴마음을 먹고), 김정은을 추대하는 자리에서 건성건성 박수를 쳤다는 것도 있었다. 한미 당국이 [[북한]] 체제에 커다란 파급력을 낳으며 내부 쿠데타까지 몰고 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장성택]]의 허망한 죽음이 의외로 그냥저냥 지나가자 북한 체제의 견고함[* regime's durability.]이 상상 이상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장성택]]은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의 남편이자, 김정일 정권 시절에는 비록 실각과 복권을 여러 차례 반복했지만 늘 권력 2인자 자리를 놓지 않았던 최고 실력자 중 한 사람이었다. 세종연구소는 세종국가포럼의 발표 내용에서 고모부인 [[장성택]]이 처형된 이유로 '반혁명적인 종파행위'와 '방탕하고 난잡한 여자 관계'를 들고 있다. 여기서 '종파'(宗派)란 '개인이나 분파의 이익을 추구하며 당과 '혁명운동'을 분열·파괴하는 집단'을 가리킨다. [[장성택]]이 김정은에 대한 반란을 꾀했다는 것으로, 김정은은 장성택을 제거할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2015년 4월에는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재판 절차도 없이 대공화기인 고사총으로 공개 처형되었다. 처형 이유는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에서 꾸벅꾸벅 졸았기 때문이었다. 현영철의 처형 한 달 뒤인 2015년 5월 김정은은 최영건 부총리도 처형했다. 최영건은 김정은이 추진하는 산림녹화정책과 관련해 불만을 표출하고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을 이유로 처형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2월에는 우리 군대의 합참의장에 해당하는 [[리영길]] 인민군 총참모장(군부 서열 3위)을 처형했다. 죄목은 종파분자 및 세도·비리인 것으로 전해졌다. 반(反)김정은 파벌을 구축하고 권력 남용 비리를 저질렀다는 얘기다. 그러나 2016년 5월, 리영길의 생존이 확인되면서 [[국정원]]의 잘못된 정보임이 판명났다. 로동당 기관지 <로동신문>이 10일 보도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차 전원회의의 인선 내용을 보면, 리영길 전 총참모장이 중앙군사위원,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임됐다. 가장 최근인 17년 4월 15일에는 대장으로 진급한 상태다.[* 박근혜 정권 당시 국정원이 가져온 북한 인사들의 처형 소식은 잘못된 것들이 많았고, 주류 언론들도 이를 그대로 재생산하는 데 바빴다.[[http://mn.kbs.co.kr/news/view.do?ncd=3236121|리영수 총참모장 확인생존 위한 맹종]] 여기서 보듯이 지상파인 KBS도 리영길이 처형되었다는 잘못된 정보를 그대로 방송하고 있다. 이 문서도 리영길이 생존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잘못된 정보를 2016년부터 실어놓고 있었다.] 2017년 2월, 김정은의 이복 형인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화학무기인 [[VX]] 액체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자세한 내용은 [[김정남 피살 사건]]을 참조. 한편 세종연구소는 2018년 4월의 발표에서 다수의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숙청이 김일정과 김정일 시대의 즉흥적인 숙청과는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이 2016년에 발간한 『김정은 집권 5년 실정백서』에 따르면, 김정은 집권 이후 총살처형된 간부들은 2016년 기준 총 140여 명으로 2012년 3명, 2013년 30여 명, 2014년 40여 명, 2015년 60여 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김일성]] 사망 후인 1997년부터 1999년까지 약 3년 동안 이른바 [[심화조 사건]]을 통해 숙청된 간부들은 아무리 최소로 잡아도 2,000 명 정도로 추산된다. 김정은 집권 이후 140여 명의 간부가 숙청되었다면 그 숫자가 적은 것은 아니지만 [[김정일]] 시대 심화조 사건으로 숙청된 간부들의 약 7% 정도에 불과한 수치다. 게다가 '심화조 사건' 때 최대 25,000여 명이 숙청되거나 유배되었다는 주장도 있기에 이 수치와 비교하면 김정은이 숙청한 숫자는 [[김정일]]과 비교했을 때 더욱 낮아질 수 있다. 심화조 사건으로 당시 핵심 실세였던 [[문성술]] 당 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본부당 책임비서까지 처형되었으므로 [[김정일]] 시대에도 핵심 간부들이 결코 숙청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 시기 [[국정원]]이 숙청되었다고 발표한 [[북한]] 간부들 중 일부는 얼마 후 복권되거나 다른 직책으로 이동한 것이 확인되고 있어 실제 숙청 규모는 [[국정원]]이 발표한 것보다 훨씬 적을 수 있다. 이는 [[현송월]]이나 같은 음악단 단원들, 리영길이 처형당했다는 잘못된 국정원 발 정보가 유통되었다는 것에서 드러난다. 김정은은 권력이 안정된 이후 후기 소련처럼 온건한 숙청(최고 권력에 위협되지 않는 간부는 살려두는 숙청)을 실행하고 있다. 또한 [[김일성]]이나 [[김정일]]처럼 잔혹한 대량 숙청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국제 감시를 피하기 위해 공개 처형보다 비밀 처형의 빈도가 늘어났다고 한다.[[http://m.monthly.chosun.com/client/mdaily/daily_view.asp?idx=14165&Newsnumb=2021121416|#]] 2018년 기준으로 김정은은 [[북한]]의 오랜 [[핵무기]] 개발로 인해 받고 있는 국제 사회의 각종 경제 및 인적 제재를 돌파하고, [[북한]] 경제를 치유하기 위해 [[문재인]]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시진핑]] 국가주석 등과 소위 "정상 국가의 수장"으로서 외교를 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대북전략 중 하나가 김정은을 외교 무대에 데뷔시켜서 국제적 규범을 따르도록 만들겠다는 것이었는데, 어쩌면 성공한 셈이다. 심지어 기자회견 형식으로 선언문까지 냈는데 '''이는 김정은이 국제 외교 무대에 정식으로 데뷔했음을 알려주는 확실한 신호다. 이렇기 때문에 [[김일성]], [[김정일]] 시기와는 다른 온건한 정책을 펼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선대에서 주로 이루어져 왔던 인권 문제나 무자비한 숙청 문제에 관한 지적들이 정식 외교 무대에서 계속 거론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이 원하는 당장의 대가는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모두 없애고, 앞으로도 독단적인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 표명과 행동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미국]]이 입에 담지는 않고 있지만, 후일 [[북한]]의 최대 외교적 숙원인 [[미국]]과의 정식 수교가 이루어진다면 [[미국]]에 의해서 북한내 인권 문제가 충분히 거론될 수 있다. 앞으로 북미 간의 협상과 거래의 결과에 따라서 김씨일가, 특히 [[김일성]], [[김정일]]이 저질러 왔던 인권 탄압과 숙청의 강도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김정은 정권이 온건한 숙청을 하는 지금보다 더 완화될 일말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김정은이 계속해서 인권 탄압을 멈추고자 하는 행보를 보이면 미국에 반항한 인권탄압 독재자의 비참한 말로는 걷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권력이 안정화된 2010년대 후반~2020년대 전후로는 고위 간부들을 숙청하더라도 왠만해선 다시 복권시키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숙청 비중조차 줄어들고 있으며, 문책성 처벌에서 그치는 경우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 이하급 간부들의 경우 여전히 처형하거나 정치범수용소로 보내기도 한다.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00402/100459786/1|김정은의 간부 현장 처형 방식]] 아래는 김정은에 의해 숙청당한 것으로 확인된 고위 인사들의 명단이다. * 김철[* 인민무력부 부부장. 2012년 3월에 처형됨] - '''처형됨''' * [[리영호]][*신변불분명] * [[우동측]][*신변불분명] * [[장성택]] - '''처형됨''' * [[리룡하]] - '''처형됨'''(장성택의 최측근, [[조선노동당]] 행정부 제1부부장) * 장수길 - '''처형됨'''[[https://www.yna.co.kr/view/AKR20131203179200014|#]](장성택의 최측근, [[조선노동당]] 행정부 부부장) * 박광철 (장성택의 측근, [[스웨덴]] 대사) * 박춘홍 (장성택의 측근, [[조선노동당]] 부부장) * 량청송 (장성택의 측근, [[조선노동당]] 부부장) * 강민철 (장성택의 측근, 채취공업상) * 한효연 (장성택의 측근, 금속공업상) * 림남수 (장성택의 측근, 석탄공업상) * [[노희창(사회단체장 및 기업인)|노희창]] (장성택의 측근, 대외건설부당비서)[*탈북] * 강태석 (장성택의 측근, 무역회사 간부)[*탈북] * 장계순 - '''처형됨'''(장성택의 누이) * 전영진 - '''처형됨'''(장성택의 매형, [[쿠바]] 대사) * 장용철 - '''처형됨'''(장성택의 조카, [[말레이시아]] 대사) * 장태령 - '''처형됨'''(장용철의 아들) * 장태웅 - '''처형됨'''(장용철의 아들)[* '''그 외에도 장성택의 직계 가족들은 어린이들도 가리지 않고 대부분 사형되었다고 한다.'''] * [[은하수관현악단]] 관계자들(2013년에 해당 악단 해체됨) * [[문경진]] 악장(바이올리니스트) - '''처형됨''' * 정선영(바이올리니스트) - '''처형됨''' * 신원불명의 은하수관현악단 감독 - '''처형됨''' 총 10명의 단원이 처형된 것으로 알려짐. * [[김정남(북한)|김정남]] - '''암살됨''' * 김근섭[* [[조선노동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2014년 9월에 처형됨] - '''처형됨''' * 신원불명의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84%A0%EB%AF%BC%EC%A3%BC%EC%A3%BC%EC%9D%98%EC%9D%B8%EB%AF%BC%EA%B3%B5%ED%99%94%EA%B5%AD_%EB%A6%BC%EC%97%85%EC%84%B1|임업성]] 부상 - '''처형됨'''[* 2015년 1월] * 변인선[*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작전국장. 2015년 1월 처형됨] - '''처형됨''' * 조영남[* [[국가계획위원회]] 부위원장. 2015년 2월에 처형됨] - '''처형됨''' * 신원 미상의 대동강 [[자라]] 공장 지배인[* 2015년 5월 처형됨] - '''처형됨'''[[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00402/100459786/1|#]] * [[현영철]] - '''처형됨''' * 최영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내각]] 부총리. 2015년 5월에 처형됨] - '''처형됨''' * 김용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내각|내각]] 교육부총리. 2016년 7월에 처형됨] - '''처형됨''' * [[황병서]][*복권됨] * [[최룡해]][*복권됨] * [[박태성]][*복권됨] * [[김원홍]][*신변불분명] * [[리용호]][*신변불분명] * [[김성혜]][*복권됨] * [[김옥]][*신변불분명] * [[안금철]][*복권됨] * [[김두일(북한)|김두일]][*복권됨] * 한성렬 외교부 부부장[*신변불분명]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