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정일군정대학 (문단 편집) == 연혁 ==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월북]]한 [[남조선로동당|남로당]] 출신자들이 주축이 되어 [[빨치산]]부대와 남파공작원을 훈련하기 위해 [[황해도]]에 설립한 금강정치학원(金剛政治學院)이 기원이다. 한국전쟁이 사실상 실패하게 되자 권력기반 약화를 우려한 [[김일성]]은 [[박헌영]]과 [[리승엽]]을 필두로 하는 남로당파에게 [[미국 제국주의|미제]] 스파이활동과 공화국 전복 [[음모]] 혐의를 덮어씌워 [[숙청]]했는데 당시 남로당계열이 대부분이었던 금강정치학원도 이 과정에서 폐쇄 위기를 맞았지만 대남공작 인재확보를 위해 존속시켰다. 1960년대 금성정치군사대학(金星政治軍事大學)[* 김일성에서 일(日)자를 빼면 김성(金成) → [[금성]](金星)이 된다.][*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서 운영하는 금성정치대학과는 다르다.]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92년 김정일의 50회 생일을 기념해 김정일정치군사대학으로 명명되었다.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은 [[정찰총국 육·해상정찰국|조선로동당 작전부]]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2009년 작전부가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정찰국, [[35호실]]과 통합되어 [[정찰총국]]으로 개편되었기 때문에 정찰총국 소속인지 독립되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2022년 3월 16일에 시행된 [[화성-17]] 미사일 발사 실패의 여파로 미사일 파편들이 평양 주요 시설물에 떨어졌는데,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도 큰 파편이 떨어져 웅덩이가 생기고 건물 지붕이 날아갔다고 한다.[[http://naver.me/xqvixQ2K|#]] 2023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창건 50돐경축 열병식을 통해 김정일군정대학으로 개칭된 것이 확인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