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좌진 (문단 편집) == 기타 == * 지금까지 김좌진의 [[암살]]은 단순히 [[공산주의]]자들의 암살로 여겨졌으나 암살 사건을 연구한 [[학자]]들은 복잡한 배경이 있다고 보고 있다. * 박상실은 김좌진이 운영하던 [[방앗간]]에서 일하던 일꾼이었는데 김좌진을 암살한 뒤에 도망쳤다. 김좌진의 [[장례식]]에서 밝혀진 바로는 박상실은 고려공산청년회의 회원이자 재중 한인청년동맹원으로 알려졌다. 김좌진의 측근들은 박상실이 혼자 김좌진을 암살했을리 없고 배후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배후로 지목된 인물은 [[김봉환]]으로 한때 '김일성'이라는 [[가명]]을 쓰고 있었던 탓에 [[북한]]의 [[김일성]]이 김좌진 암살의 배후라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그러나 이후 연구를 통해 김봉환과 김일성은 다른 인물임이 밝혀졌다. 북한의 김일성은 김좌진이 [[사망]]할 당시 18세(1912년생)여서 암살 배후일 가능성은 희박했다. [[중국]] 자료가 공개되면서 박상실의 정체도 드러났는데 박상실은 가명이며 진짜 이름은 '공도진' 혹은 '이복림'이라고 한다. 이복림과 박상실이 동일 인물인지를 밝히는 명확한 증거는 없으나 [[연변대학]] 교수 김동화는 두 사람이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 사실 [[일본]] 내무 보고서와 [[공산당]] 측 주장에 일치하는 주장이 있다. [[빈주 사건]]에 대한 [[보복]]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아래 비판 문서의 '간민호회 [[테러]]와 최계화 암살', '김좌진이 살해된 근본 이유' 관련 문단 참고. *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신용하 명예교수는 공산단체 '적기단'의 배후설을 주장한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95092700209115003&edtNo=45&printCount=1&publishDate=1995-09-27&officeId=00020&pageNo=15&printNo=22980&publishType=00010|신용하 교수 기사]] * 부인도 여럿이고 축첩도 해서 [[후손]]이 많은데 서자가 [[조직폭력배]] 출신 [[국회의원]] [[김두한]]으로 김두한의 딸인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19대) [[김을동]]에게는 조부가 된다.[* [[송일국]]은 김좌진의 증손자.] 김좌진의 부인들이었던 오숙근과 나혜국은 모두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까지 살아남았다. 오늘날 김두한의 큰어머니[* 정확히는 서자가 아버지의 정실을 이르는 표현인 적모(嫡母)다.]로 잘 알려진 오숙근(吳淑根)은 1958년 사망해 김좌진과 함께 합장되었으며 나혜국은 [[노태우 정부]]가 끝나는 시기인 1992년 11월에 사망했다. 후손은 정실 부인 오숙근 사이에서 난 장녀 김석출, 첩 김계월에게서 얻은 장남 [[김두한]], 후처 나혜국에게서 얻은 김철한이 있다. 김석출과 김철한은 정식 자식들이고 김두한이 [[서자]]이다. 아래에 언급된 증손자 김도현은 김두한의 손자[* 김두한의 둘째아들 김현성의 아들이다.[[http://demaclub.tistory.com/m/2758|#]].]이며 송일국은 김두한의 외손자[* 김두한의 딸 [[김을동]]의 아들이다.]이다. * 2013년 8월 [[대한민국 해군]] 손원일급 [[잠수함]] 4번함이 '김좌진함'으로 명명되었다. 증손자 김도현은 [[대한민국 육군|육군]] [[병장]]으로 전역한 뒤 [[대한민국 공군|공군]] [[부사관]]이 되었다가 다시 [[대한민국 해군|해군]] [[장교]]로 임관한 [[재입대|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로 증조부의 유지를 잇고 있다.[[http://news.mk.co.kr/newsRead.php?year=2015&no=776455|#]] * 일본군의 기밀 자료에 따르면 "김좌진의 키는 약 185cm,[* 본인의 아들인, 큰 키로 유명했던 김두한보다도 더 큰 장신이다.] 얼굴은 타원형이고 눈빛이 형형하고 사람이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정도의 인상이며 총명함이 출중하고 좌담에 능하며 특히 해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라는 상세한 내용이 남아 있다. 김좌진은 오늘날 남아 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시피해서 일제 기록 속의 김좌진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그를 그려볼 수 있는 중요한 요소이다. 문제는 저런 자료는 김좌진 본인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기 때문에 독립군에서도 극비로 다뤄졌어야 할 자료인데 그런 자료가 일본군의 손에 넘어갔다는 것. [[KBS]]에서 2019년 8월 추적한 자료에 의하면 이를 일본군에 넘겨준 사람은 김좌진의 최측근인 이정(李楨)이었던 걸로 밝혀졌다. 이정은 북로군정서의 막료로서 "진중일지"라는 자신의 일기에 당시 독립군들의 상황을 알 수 있는 일들을 자세히 서술해서 오늘날 우리가 만주 독립군들의 실상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를 제공한 인물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일제의 밀정에게 김좌진의 구체적인 신상명세를 건네줬다는 것은 상당히 충격적이다. 게다가 이정은 청산리 전투 4년 뒤인 1924년 일본에 김좌진 장군을 비롯한 독립군들의 기밀 자료들을 밀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방송에서는 [[우덕순]]도 거론했는데 우덕순은 의심스러운 행적만 발견될 뿐 밀정 행위는커녕 반민족 행위조차 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았다. 반면 이정은 실제 역사학자들의 연구에서 밀정 행위가 명백하게 증명되었다는 점이 결정적인 차이다.] * 외증손자인 [[송일국]]과 외모가 상당히 비슷하며 키는 아예 둘 다 185cm로 동일하다. 물론 시대를 감안하면 김좌진 쪽이 훨씬 크다. 당시 남성 평균 키가 161cm였다는 것과 현재 남성 평균 키가 174cm라는 걸 생각하면 현재 기준으로 정확히 2m가 된다. * 암살당할 당시 가지고 있었던 유품인 은식기가 1995년 손녀 김을동에 의해 진품명품 1화에서 감정을 받았는데 감정가를 받지 못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xaVIY9gm46I|#]] * [[제26신병교육연대]]의 별칭은 그의 이름을 딴 '김좌진부대'다. * 아래 비판 항목중 하나인 [[빈주 사건]] 같은 흑역사가 사료에서 발굴되면서 일부에서는 [[김두한|아들]]의 [[백색테러|행적]]과 똑같다고 [[부전자전]]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