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지하 (문단 편집) === 1991년 죽음의 굿판 칼럼 === 1991년 4월 명지대생 [[강경대]]가 시위 중 전경의 구타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발생한 [[1991년 연쇄 분신 파동]]은 온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었다. 이에 김지하가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기고한다.[* 확인할 수는 없지만 후에 회고하기를 조선일보쪽에서 보다 자극적으로 제목을 바꾸었다고 한다. 본 제목은 '젊은 벗들, 역사에서 무엇을 배우는가'였다고 한다.] 김지하는 생명주의 사상에서 접근하여, 목숨을 버리면서 하는 민주화 시위를 저주의 굿판에 비유하였다. 이 칼럼에서 김지하는 "자살은 전염한다. 당신들은 지금 전염을 부채질하고 있다. 열사호칭과 대규모 장례식으로 연약한 영혼에 대해 끊임없이 죽음을 유혹하는 암시를 보내고 있다."면서 운동권 세력들이 연이은 자살을 조장하고 있다고 공격했다. 심지어 이 칼럼에는 학생들처럼 자신의 죽음을 강요당했던 자신의 경험이 스며있다고 주장했다. 이 칼럼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왔다. 그동안 김지하를 투쟁 동지로 여겨왔던 운동권과 진보 진영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김지하가 그들을 부도덕한 세력으로 매도하며 군부독재에 아부한다고 격렬하게 반발했다. 진보 성향 문인들의 단체였던 민족문학작가회의는 김지하를 제명했고, 진보진영에선 김지하를 변절자, 배신자로 규정하고 모든 관계를 끊어버렸다. 대다수 운동권 인사들, 진보 성향 문인들은 김지하와의 사적인 만남조차 거부했다. 반면 정권과 보수우익세력은 이 칼럼을 대서특필하면서 운동권을 인명을 도구로 보는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했다. 여기에 [[서강대]] 총장 [[박홍(종교인)|박홍 루카 신부]]가 [[주사파|주사파 배후세력설]]을 주장하면서 파문을 일으킨 상황에서, 당시 궁지에 몰려있던 노태우 정권은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으로 단숨에 상황을 반전시켰다. 공안당국에 의해서 범인으로 조작된 강기훈은 훗날 최종 무죄 판결로 누명을 벗지만, 그 당시에는 자살 조장이라는 식의 언론 플레이를 통해 운동권의 명예가 실추됐다. 노태우 정권은 [[정원식]] 밀가루 사건 등과 연계시켜 [[공안정국]]을 도모했다. 이후 분신 등 시위는 사그라들고 재야와 학생운동, 노동운동은 급격하게 위축된다. 소련 등 공산권 붕괴도 여기에 한 몫했다. 한편 김지하는 인터뷰에서 오히려 운동권 동지·후배들이 칼럼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매도한다면서 정신병원 진료도 여러 차례 받았다고 말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27/2011022701043.html|#]]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