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지하 (문단 편집) ==== 당사자들의 주장 ==== 부인 김영주씨의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하였다. >"정권의 박해야 예상했지만 '민청학련' 사건이 터지면서 요상한 일이 벌어졌다. 김 시인이 좌우 양편에서 박해를 받은 것이다. 고대 사회에서 산 인간을 제물로 바치듯 좌파 일각에서 김 시인을 박정희 정권이 죽이도록 유도해 '민족의 제물'로 바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차츰 그 상황을 인식한 어머니는 사위를 살리기 위해 정권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조용하게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남편은 어떤 의미에서는 장모 덕분에 살아남았다." >"좌파의 색채는 여럿이다. 순수한 사람도 많지만 야심가도, 종북주의자도, 간첩도 있다. 돌아보면 민주화 과정에 악(惡)도 기여한 바가 있다. 온갖 세력이 합쳐야 민주화가 가능했다. 민주화했다고 떠드는 사람들이 때론 은밀하게, 때론 공개적으로 남편 속을 들쑤시고 마음에 상처를 줬다. 석방된 이후 20년 동안 12차례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젊은이들의 분신자살이 이어진 1991년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글을 발표한 뒤엔 무슨 사회적 발언만 하면 못 잡아먹어 조직적으로 난리를 쳤다. 그 배신감과 원통함이 오죽했겠나. [[http://news.donga.com/Society/New2/3/03/20120716/47788278/1|기사1]]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27/2011022701043.html|기사2]] [[2018년]], 문단 거물 [[고은 성폭력 사건|고은의 성추문]]으로 시끄러운 와중에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가졌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3/04/2018030401888.html|인터뷰]] 이 인터뷰에서 김지하는 [[고은(시인)|고은]]이 김지하의 장모이기도 한 '''[[박경리]] 작가가 자신의 말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과부년 주제에 말을 안 들어. 하라고 하면 할 것이지"이라고 비하한 것을 전해들었다고 증언했다. 고은의 그 말에 당시 운동권 학생들의 사상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던 [[리영희]]와, 문학계 거물인 [[백낙청]] 두 명도 함께 낄낄댔다. 그러나 해당 주장은 이를 뒷받침할 녹취록이나 교차 검증 증거가 없으며, 오직 증언만 있기 때문에 진위여부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