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진규(1985) (문단 편집) == 플레이 스타일 == [youtube(6tlgvwQqo8Q)] >'''"[[데이비드 베컴|베컴]]이 차면 골키퍼가 쫄고, 김진규가 차면 관중이 쫀다."''' >ㅡ [[김치우]] 거친 플레이와 구설수 때문에 가진 실력에 비해 저평가를 당한 선수인데 [[조 본프레레|본프레레]]부터 [[핌 베어벡|베어벡]]까지 대표팀 감독들의 변함없는 신임을 받으며 2006~08년도까지 대표팀 수비진을 책임졌던 선수로, 실력없이 거칠기만 한 선수는 절대 아니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나이를 고려해볼 때 그가 얼마나 대형 유망주로 주목 받았었는지 알 수 있다.] 전성기적에는 [[김태영(1970)|김태영]]의 뒤를 잇는 파이터형 수비수로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름을 날렸다. 타고난 피지컬을 바탕으로 한 터프한 몸싸움과 대인마크가 트레이드 마크였으며 겉으로도 드러나는[* 다리 힘이 중요한 축구선수들 중에서도 키에 비해 허벅지가 두꺼운 걸로 유명하다. 맞는 바지가 없어서 36인치를 억지로 입는다고. 그래서 붙은 [[별명]]이 힘진규, 허벅진규.] 강력한 다리 힘에서 나온 롱패스를 활용한 공격전개가 K리그 기준으론 매우 우수해 귀네슈 재임기부터 [[최용수]] 재임기까지 늘 서울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했다. 김진규가 노쇠화하여 떠난 서울은 2021년까지도 비슷비슷한 파이터형 수비수만 넘쳐나고 빌드업 가능한 센터백이 없어 공격전개로 곤란을 겪었다.[* 이 문제는 오스마르를 센터백으로 내리고, 빌드업 능력 좋은 [[이한범]]이 데뷔하면서 비로소 해결되었다. 최용수가 15시즌 김진규 대체자로 전격 발탁해 첫해부터 20경기 넘게 소화시켰던 박용우가 정상적으로 서울에서 포텐이 터졌다면 훨씬 빨리 해결되었을 텐데 최용수가 16시즌 중간에 떠나고, 후임으로 온 황선홍 시절에 2년차 징크스 겪는다 싶자 울산에 냅다 팔아버렸다.] 프리킥도 곧잘 찼는데 파워 자체는 엄청나게 묵직하지만 프로 데뷔 후 지금까지 딱 3번 들어간 실로 부정확한 물건으로[* 그나마 한번도 2013 아챔에서 [[베갈타 센다이]]의 골키퍼가 [[알까기|알을 까서]] 들어간 골이다.], 삼동현의 골과 함께 지구멸망의 징조로 불렸다. 또한 앞선 김치우의 발언과 같이 골키퍼나 수비진이 아닌 '''골대 뒤 관중'''들을 두렵게 하는 프리킥으로 유명하다. [[https://youtu.be/v8DNfy_umLQ?si=cpQirqBpbdUIvrT3|그 3번 중 1번 보러가기]] 그래서 프리킥은 [[김치우]]나 [[마우리시오 몰리나|몰리나]]가 주로 찼다. 경험이 쌓이고 수비진 고참이 되고 나서는 라인을 조율하는 커맨더 역할도 수행했다. 또한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공격 가담도 좋아서 13시즌에는 수비수면서도 6골을 기록했다. 단점은 발이 느리고 순발력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얼마나 느렸냐 하면 대표팀 시절 100m 측정 기록이 13초 중후반대였다. 12초 후반대인 수비형 미드필더 김상식이 주력은 일반인 수준이란 평가를 들었는데 그거보다 더 느렸다. K리그 주전급 공격수들 주력이 못해도 100m는 12초대에 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를 직접적으로 수비해야 하는 센터백으로서는 매우 느린것이다. 이로 인해 일대일 돌파는 피지컬로 찍어 누르면서 잘막고도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전 막판에 공간침투를 잘 허용하여 실점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때때로 있었다. 즉 발이 빠르고 무게중심을 잘 활용하는 선수들에게 매우 취약한 면모를 보였다는 말이다. 헌데 [[FC 서울]]은 [[세뇰 귀네슈]] 시절부터 다이렉트 패스를 통한 공격축구를 모토로 삼고 주전 센터백인 김진규의 힘있고 빠른 롱패스를 활용하는 방안으로 수비진을 끌어올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서울 감독들은 [[아디(축구인)|아디]], [[김주영(1988)|김주영]], [[이웅희(축구선수)|이웅희]] 같이 발 빠르고 활동량 많은 센터백들을 파트너로 붙였다. 이 외에도 [[다혈질]]인 성격 탓에 불필요한 카드를 수집하거나 지나치게 거친 플레이로 눈총을 찌푸리게 하는 경우도 있어 타 팀 팬들은 싫어했다. 성격 문제는 나이 들어 후배 수비수들을 리드해야 할 위치가 되고 나선 다소 나아졌다. J리그에서 복귀한 2007년부터 2014년까진 명실공히 K리그 A급 수비수였다. 서울이 2007, 2009, 2012시즌 리그 최소 실점, 2010시즌 최소실점 2위를 기록하는데는 [[김병지]], [[김용대]], [[아디(축구인)|아디]] 등 뛰어난 동료들의 공도 컸지만 동료들이 바뀌는 동안에도 쭉 팀의 중앙수비 라인을 책임진 김진규의 공이 컸다. 여기에 최악의 스타트를 보였던 13 시즌에는 탁월한 공격가담으로 주포 데얀의 부상과 쓰리백으로의 전환 실패 여파를 딛고 일어서는데 크게 기여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