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천시 (문단 편집) == 역사 == ||<-10> '''김천시 행정구역 변천사''' || || 김산군 [br](金山郡, 1895) [br] 지례군 [br](知禮郡, 1895) [br] 개령군 [br](開寧郡, 1895) ||<|2> → || 김천군[br](金泉郡, 1914) || → || 김천부/시[br](1949) [br] [[금릉군]][br](金陵郡, 1949) ||<|2> → || '''김천시[br](1995)''' || [[고대]]에는 [[감문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지금의 [[감문면]]이 아니라 [[개령면]]에 있었다. 그 외에 김천의 옛 고을 이름은 감물(甘勿), 금물(今勿) 등으로 불렸다. 조마면에는 [[주조마국]], 혹은 [[졸마국]]이라는 [[가야]] 계통의 나라가 있었다고 비정하고 있지만 확실한 정설은 아니다. [[신라]] [[경덕왕]] 때 감문군이 개령군(開寧郡)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개령군 소속 영현이 4곳이 있었는데 김산현(金山縣, 김천 중심지), 어모현(禦侮縣, 어모면), 지례현(知禮縣, 지례면), 무풍현(茂豐縣, [[전라북도]] [[무주군]] 무풍면)이었다. 즉 신라 때는 개령면이 중심지였는데 역전된 것이다. [[9주 5소경]] 중 [[상주]]에 속했다. [[조선시대]]에 김산과 지례가 현에서 군으로 승격해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김산(金山), 지례(知禮), 개령(開寧)의 3개 고을이 있던 곳이며, 현 김천시 시가지는 김산군 지역이었다. [[구한말]] [[경부선]] 철도가 개통되면서 김산군 김천면에 [[김천역]]이 설치되면서 근대적인 도시가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14년 김산군을 중심으로 개령군, 지례군을 통합하고, 철도역이 설치된 김천면의 이름에서 따와 김천군이 설치되었다. 1931년 김천면이 김천읍으로 승격되었다. 1949년 김천읍이 김천부(府)→김천시(市)로 승격되었으며, 김천군의 잔여지역은 옛 김산 고을의 별칭(別稱)인 '금릉(金陵)'에서 따와 [[금릉군]](金陵郡)으로 개칭되었다. 1995년 도농통합 당시 김천시와 금릉군이 다시 통합하여 현재의 김천시가 되었다. 과거 [[금릉군]]에 대한 내용은 [[금릉군]] 항목 참조. 철도의 영향과 [[경상도]], [[전라도]]의 길목이라 한때 [[상주시|상주]]를 대신하여 [[경상북도]] 서부의 중심도시 역할을 하며 매우 잘 나갔으나(위의 역사에서 보듯이 '''1949년부터 시'''였다!), 1970년대 이후 바로 옆의 [[구미시|구미]]가 산업도시로 급성장하면서 입지가 약해졌고 경북 서부의 중심도시 역할도 구미에게 넘어갔다. 김천은 도시 발달이 정체되었지만, 경상북도에서 발달한 경북 남부에 속한 덕분에 타격이 덜 한 편이다.[* 이와 달리 경북 북부와 서부 경남은 1960년대~1990년대에 벌어진 산업화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낙후지역]]으로 전락은 물론 인구가 크게 유출되었다. 그나마 서부 경남에서는 [[진주시]]가 덜 낙후된 편에 속한다.] [[혁신도시]] 사업의 일환으로 [[경북드림밸리]]가 조성되면서, 침체되어 가던 김천의 시세와 인구가 반등할 가능성이 보였으나 잠깐의 반등을 보였을 뿐 여전히 상황이 좋은 편은 아니다. [[http://m.kimnet.or.kr/view.php?idx=574|#]]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