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학범 (문단 편집) == 기타 == * 축구계에서 알아주는 [[골초|애연가]]다. 하루에 3갑 이상 피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경기 전 상대팀의 비디오 분석을 하면서 많은 양을 태운다고 한다. 어느 인터뷰에서 의사가 어차피 못 끊을 [[담배]]는 계속 피우는 게 스트레스 안 받고 좋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https://m.sports.naver.com/general/news/read.nhn?oid=111&aid=0000339570|#]] 한편 아시안게임 때는 담배를 줄여가며 선수들과 [[밀당]]을 했다고 한다. 애연가이다보니 인터뷰가 길어지면 기자와 맞담배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축구경기를 보러가면 경기장 흡연구역에서 맞담배를 튼 기자들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 [[위르겐 클린스만]]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의 근무 태만 논란이 거론되면서 클린스만과는 상반된 사례로 김현회 기자의 기사에 소개되었다. 기사에 따르면 올림픽 대표팀 감독 재직 당시 김학범은 인천에서 낮 경기를 보고 성남에서 저녁 경기를 보고, 바로 다음날에는 강원 경기를 보러 춘천을 갈 만큼 일만큼은 열씸히 했다고 한다.[[http://www.sports-g.com/news/articleView.html?idxno=203802|#]] * [[노안]]이다. 김학범 감독은 1960년생으로 K리그에선 [[최강희(축구인)|최강희]]보다 1살 어리며, 유럽에선 [[라파엘 베니테스]], [[요아힘 뢰프]]와 동갑이고 [[주제 무리뉴]]보다 3살밖에 많지 않다. 비슷한 처지의 얼굴 나이대를 가진 [[카를로 안첼로티]]보다는 1살 어리다. 2015 시즌 개막전 때 상대팀인 전북 현대의 최강희 감독과 기싸움을 벌인 적이 있는데, 김학범이 '개막전은 우리 성남의 놀이터다'라고 도발하자 최강희는 '도발하지 말고 머리부터 심고 와라. 도발 노. 가발 이식!'이라고 받아쳤다.[* 근데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과의 아시안 게임 준결승전에서 어느 팀을 응원할 거냐는 질문에 최강희가 '머리 남은 김학범 응원할 것, 항서형 미안~'이라고 했다.] * [[마우리치오 사리]]와 공통점이 많다. 두 사람 모두 대머리에 선수 경력이 한미하고 은행원을 본업으로 했다가 감독으로서 성공했다. 게다가 애연가인 점까지 동일. * 별명으로는 [[알렉스 퍼거슨]]과 합친 학범슨이 많이 쓰인다.[* 이 별명은 사리가 유명해지기 훨씬 전부터 널리 퍼진 별명이기 때문이다.] 특히 헤어드라이어로 유명한 퍼거슨의 불같은 성격과 유사하게 무서울 때는 굉장히 무섭고 한편으로 사적일 때는 따뜻한 면도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 일화 시절에는 경기 내적인 면뿐만 아니라 외적인 면에서도 상당히 외골수적인 면이 강했다. 언론플레이와 팬 서비스에도 인색한 감독이었는데 어느 정도였냐면 경기력에 손실이 생긴다는 이유로 선수나 프런트 차원의 팬 서비스도 제한을 가했다. [[샤다라빠]]의 증언에 의하면 성남 감독 시절 훈련을 보러 간 팬에게 훈련이 제대로 풀리지 않자 뭘 보냐고 쌍욕을 퍼부었다는 일화가 있다. 후임이었던 [[신태용]]은 이런 면에서 김학범과 아예 정반대였다. 본인도 야인이 된 후에는 꽤나 유해졌다고는 하지만 성남 FC로 복귀한 이후에도 그리 달라진 모습을 보이진 않는다. 일설에 의하면 성남 FC의 검은 유니폼은 경기력에 지장을 준다는 김학범 감독의 반대로 무산될 뻔하기도 했다. 그래도 U-23 대표팀 감독 부임 이후로는 이런 단점들이 많이 개선되긴 했다. * 나이에 비해 [[https://www.youtube.com/watch?v=jYFI3Wt70mk|풀업을 상당히 잘한다]]. 적지 않은 나이와 골초인 점을 감안할 때 자세 또한 정자세로 유지할 정도면 코어 힘이 상당하다. 이는 선수들이 김학범 감독을 잘 따르는 요인이기도 하다.[* 감독이 선수들에게 모범이 되는 이 모습은 선수들이 믿고 따르는 원동력이 된다. 비슷한 예시로 [[손흥민]]은 어린 시절 아버지 [[손웅정]]에게서 개인 훈련을 받고 기본기를 익혔는데 아버지가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였기에 손흥민 본인도 불평없이 아버지를 믿고 따르면서 지금과 같은 위상을 가지기까지 큰 원동력이 되었다.] [[분류:1960년 출생]][[분류:강릉시 출신 인물]][[분류:강릉중앙고등학교 출신]][[분류:명지대학교 출신]][[분류:명지대학교 대학원 출신]][[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선수]][[분류:수비수]][[분류:대한민국의 남자 축구 감독]][[분류:대한민국의 장로회 신자]][[분류:강릉 김씨]][[분류:국민은행 축구단/은퇴, 이적]][[분류: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분류:성남 FC/역대 감독]][[분류:허난 FC/역대 감독]][[분류:강원 FC/역대 감독]][[분류:광주 FC/역대 감독]][[분류:1984년 데뷔]][[분류:1992년 은퇴]]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