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현식 (문단 편집) == 사망 == '''결국 [[1990년]] [[11월 1일]][* 공교롭게도 김현식이 그렇게나 아끼던 [[후배]] [[유재하]]의 기일이다.] 오후 5시 20분에 자신의 자택 서울시 용산구 동부이촌동 렉스아파트에서 [[간경변|{{{#ff3018 간경변}}}]]으로 인해 끝내 세상을 떠났다.''' 그의 누나인 김혜령이 임종을 지켰고, 동아기획 김영 사장은 전날 [[각혈]]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가 세상을 그리 빨리 뜰 줄은 몰랐으며 당일 불과 '''2시간 전'''인 오후 3시경에 김현식이 전화로 '''[[회광반조|"사장님, 저 괜찮으니까 오늘 퇴원해서 내일 녹음에 들어가야겠어요."]]'''라면서 밝게 얘기해서 전혀 짐작도 못했다고 한다.[* 권인하의 회상 등을 살펴보면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상하고 일부러 밝게 말했을 가능성이 높다. 사망하기 얼마 전 권인하의 집에 전화했는데 권인하는 그 때 스케줄 때문에 받지 못했다. 권인하의 아내가 김현식으로부터 전해달라고 들은 말은 '''"제수씨, 인하한테 잘 먹고 잘 살아라고 전해줘요."''' 였다고. 이 외에 김종진에게 자신의 아들 김완제를 부탁한다고 하는 등, 타계 직전에는 이미 어느 정도 예상하고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 날 그의 누나에게 '''"갔어요."'''라고 한 마디로 사망 소식을 전해 듣고 망연자실했다고 한다. 이 때 김현식은 겨우 32살이라는 한창 젊은 나이였다. 2010년 김현식 20주기 기념 다큐멘터리에 나온 김영 사장이 회상하길, 전화를 받고 믿기지 않아서 '''"그럴 리가 없어! 어제 겨우 두 시간 전에 현식이가 나한테 밝게 전화하면서 내일이라도 녹음 들어간다고 했다고! 그런데 현식이가 죽었단 말이야?!"'''라면서 소리쳤을 정도로 충격받았다고 한다. 김혜령은 선배였던 한영애를 찾아가 '''"언니... 현식이 갔어요."'''라고 말한 얘기에 한영애는 '''"스튜디오 왔다 갔다고요? 근데 그게 왜요?"'''라고 무덤덤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아니...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갔다구요, 저 하늘로..."'''라고 다시 얘기했는데, 이때 온몸에 힘이 풀리며 쓰러졌다고 한다. 사후 그는 벽제 화장터[* 현 명칭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 후 한 줌의 재로 돌아가 [[경기도]] [[성남시]] [[야탑3동]]에 위치한 분당 메모리얼 파크[* 당시에는 남서울공원묘지라 불렸다.]에 안장된다. 그의 묘비에는 1집 앨범에 수록된 당신의 모습의 가사와 할머니란 가사가 적혀있다. 유작인 '내 사랑 내 곁에'를 제외한 실질적 유작인 5집 앨범 '넋두리' 앨범이 바로 이때 병원에서 외출을 다녀오다시피 해서 간신히 만들어진 것이다. 김영 사장이 포기하자는 말에도 각혈을 하면서 죽어갈 때까지 엄청난 유작을 남기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