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형곤 (문단 편집) == 생애 == 1960년 5월 30일 [[경상북도]] [[영천시|영천군]] 영천읍(현 [[영천시]])에서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이후 군인이었던 아버지의 근무지를 따라 상경하였고, [[서울무학초등학교]]와 장충중학교, [[중경고등학교]], [[동국대학교/학부|동국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취득한 [[교원 자격증]]도 있다고 한다. 2004년 12월 18일 SBS <학교전설 - 받아쓰기 대회> 26회 외국인 특집 편에서도 본인이 스스로 알렸다. 국어교육과를 졸업한 만큼 2급 정교사 자격증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만약 개그맨이 되지 않았다면 일선 학교의 [[국어교사]]가 됐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 대학교 재학 중 [[1980년]] [[동양방송|TBC]]의 개그 콘테스트에서 은상을 받은 것을 시작으로 [[개그맨]]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TBC 출신들로는 [[서세원]], [[주병진]], [[김학래]], [[장두석]], [[이성미]] 등이 있다.] 김형곤은 1980년에 데뷔하자마자 뚱뚱한 몸에 동그랗고 귀여운 얼굴, 재치있는 입담으로 [[젊음의 행진]], 젊은이의 토요일 등에서, [[장두석]]과 함께 워낙 비싸요~ 라는 유행어를 탄생시키며 인기를 모았고, 그 다음해 영화도 찍었다. 이 당시 활동했던 개그맨들 중 가장 돋보였던 세 명이 바로 [[주병진]]과 김형곤 그리고 MBC에서 활약한 [[서세원]]이었다. 김형곤을 기억하는 이들은 주로 KBS에서 활동하는 것으로 많이 아는데, 잠깐이긴 해도 MBC에서도 활동했으며 이 시절에 앨범도 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uikMv7LlPw|<어허! 그것 참>]]이 이 시절에 부른 노래. MBC에 나와 이 노래를 부르기도 했는데 선배 MBC 개그맨들이 이 노래에 맞춰 뮤직비디오같이 나와서 가사 대로 뜀뛰기하고 그렇게 지쳐서 헥헥하다가 노래부르던 김형곤 보고 "아니, 당신이 한번 뛰어봐!"라고 화내고 노래부르던 김형곤이 무안해 하던 개그씬이 나오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KBS]]에서 본격적으로 [[유머 1번지]]의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개그콘서트]] [[코미디]] 40주년 특집에서는 [[김준현]]이 회장님역을 맡았다.]과 <[[탱자 가라사대]]>[* 초반에는 '꽁자 가라사대'였다.], <꽃 피는 봄이 오면> 등의 코너에서 시사 개그를 선보이면서 사회적인 붐을 일으켰다. 그러나 김형곤의 거침없는 시사개그와 풍자에 위기감을 느낀 [[전두환]] 군부가 그를 협박하여 방송 코너가 해체되고 한동안 연예활동을 중지했다. (사실은 더 일찍 해체될 수 있었는데 간신히 살아남았다고 한다.) 전두환 군부의 협박 어쩌고는 전혀 사실이 아닌게, 회장님 코너는 전두환 재임시부터 노태우 재임시까지 오랬동안 방영되었고, 그 후속인 탱자 가라사대와 꽃피는 봄이 오면 등 김형곤의 시사 개그도 윗선의 태클이 전혀 없이 잘만 방송되었다. 오히려 대한민국 건국이래로 지금까지 대통령에 대해서 마음껏 개그소재로 과하다시피 삼던 시절이 노태우 재임기이다. 즉 그냥 군사정권은 독재였다는 프레임을 씌우기 위한 날조 선동 중의 하나이다. 방송이 방영된 날짜만 확인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보수우파 정권시기에는 대통령 풍자와 비판을 얼마든지 하지만, 진보좌파 정권시기에는 정권 아부성의 개그를 제외하면 정치가 개그소재로 쓰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노태우 때도 문재인 때도 항상 같았다. TV 활동이 금지당한 후부터는 주로 소극장에서 스탠드 업 코미디 공연을 했다. 대학로에서 '곤이랑 아트홀' 이라는 공연장을 운영했고[* [[컬투]]가 데뷔 전 김형곤이 운영하던 코미디 극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하며, 1998년 김형곤의 대학로 극장을 컬투(당시는 컬트삼총사 시절)가 인수해서 공연장으로 썼다.], 이 외에도 강남 등지에 공연활동을 했는데 스탠드 업 코미디 공연을 하던 당시 [[노태우]] 정권 때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방귀]]뀌는 스타일이라는 개그를 했다가 [[국가안전기획부]]에 끌려가 [[코렁탕|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대통령과 부하들이 회의를 하는데 방귀를 뀌면 어떻게 할까라는 조크였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방귀를 뀌면 당당하게 "괜찮아, 임자도 뀌어." 하고 전두환 대통령이 뀌면 [[장세동|부하]]들이 "각하, 제가 뀌었다고 하겠습니다."라면서 자기가 전두환 대신 덮어쓰고 노태우 대통령이 뀌면 괜히 자기가 뀌어놓고서 부하한테 "네가 뀌었제?" 하니까 부하들이 "제가 각하 방귀 대신 뀌어줍니까?"라면서 맞먹는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물태우라고까지 불린 노태우의 유약한 리더쉽을 풍자한 것이었는데,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이를 문제시하며 "각하 방귀뀌는 걸 네가 봤냐?"며 김형곤을 추궁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김형곤이 공연한 술집과 바에서 음란 퇴폐쇼를 했다[* 밑에 말한 트랜스젠더 댄서들이 나왔다는 이야기.]는 명목으로 대표[* 당연히 김형곤이지만 서류상으로는 김형곤의 아내였다.]를 구속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후에 자신의 공연에서 "아니, 내가 대통령 방귀 뀌는 걸 꼭 봐야 개그를 할 수 있단 말이야? 그게 어디 대한민국 안기부가 나설 일인가?"라며 회고하기도 했다. 참고로 이러한 해방적 분위기는 노태우가 당선 이후 "날 개그프로 소재로 써도 좋다"라고 말한 탓이 크다. 이는 안기부의 과잉충성 내지는 노태우의 말바꾸기이며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으로 공안정국이 형성된 이후 안기부가 과거 모습으로 회귀한 것도 작용했다. 90년대에는 정치인으로서 활동하다가 2000년 정계에서 은퇴한 이후 다시 코미디언으로 컴백했다. 주로 극장 공연 위주로 활동하다가 2003년 [[폭소클럽]]으로 코미디 프로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으며 폭소클럽의 코너 <스페셜 클럽 2>에서 녹슬지 않은 시사개그를 선보이며 크게 인기를 끌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이후 각종 뮤지컬 및 개그공연의 연출 및 대본작성을 맡으며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특히 2005년 대학로에서 올린 <엔돌핀 코드>는 '웃음학 강의'라는 컨셉으로 높은 예매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선행 실천에도 적극 앞장섰는데, <엔돌핀 코드> 공연의 일부 수익금을 [[백혈병]]과 소아암으로 투병 중인 어린이들을 위해 기부했으며 병원에 찾아가 어린이들에게 직접 싸인을 해주고 목도리와 모자를 선물하기도 했다. 또 저서와 음반 발매를 하기도 했는데 자서전 격인 <김형곤의 엔돌핀 코드>와 그의 스탠딩 코미디 강의를 모아놓은 <김형곤 폭소클럽 시리즈> 등이 있다. 2006년 상반기에는 한국 코미디언 최초로 [[카네기 홀]]에서 공연할 예정이었다. 말년에는 체중을 감량하는데 성공하여 그간의 뚱보 이미지를 탈피하기도 했다. 자신의 다이어트 비법을 공개하며 큰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직접 다이어트 캠프도 운영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