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형곤 (문단 편집) == 정치 활동 == [[1989년]], 당시 [[영등포구]] 을에서 재야 단일 후보로 출마한 [[고영구]] 후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초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후에 [[참여정부]] 시절에 [[국가정보원]]장을 역임한다.]를 지지하면서 처음으로 정치권과 엮이기 시작했다. 당시에 야권 후보를 지지하는 연예인들은 음양으로 불이익을 받았기 때문에 김형곤의 이러한 행보는 매우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는 보수 정당 후보였던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후보를 따라다니며 유세지원을 하였다.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여당후보였지만 군사정권에 큰 반감을 가진 사람이었다. 당선 후 [[하나회]]를 쓸어 버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김형곤이 김영삼을 지지했던 것도 크게 이상하진 않다고 할 수 있다. 김형곤 뿐만 아니라, 당대의 수많은 진보 성향 인사들이 이 점때문에 [[김영삼]]을 일제히 지지했다. [[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국민신당(대한민국)|국민신당]] [[이인제]]를 지원했다. [[군사정권]]에 의해 탄압받던 대중의 아픈 속마음을 달래준 일과 군사정권에 의해 억압받았다는 두 가지 경력으로 [[1997년]] [[괌]] 명예친선대사에 선정되었으며 [[1999년]]에는 [[자유민주연합]]의 명예총재특별보좌역을 역임하여 당시 개판이던 자민련의 이미지 개선에 일조하였다. [[파일:15076126662746.jpg]] [[16대 총선]]이 있었던 [[2000년]] [[성동구]][* 당시엔 성동구 선거구가 갑/을로 분구되지 않았다.]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자민련 공천을 받았으나 [[김종필]] 총재의 독주에 반감을 가지고 탈당하여 무소속으로 출마한 것으로, 결과는 3위로 낙선. 12,258표를 얻어서 8.6% 득표를 했으며, 기성 정치인이 아닌 무소속 후보 치고는 적잖은 득표긴 하다. 당선자는 [[새천년민주당]]의 [[임종석]]. 이후 정치권에서 물러나게 되었지만, 정치인들과 친분은 계속 유지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