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가사키시 (문단 편집) == 개요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agasaki_City_view_from_Hamahira01s3.jpg|width=10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visit-nagasaki.com/Photo_5330edd7-d76c-47bf-9849-1230d2fc807c_image.jpg|width=100%]]}}}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visit-nagasaki.com/Photo_5330faa3-32a8-43eb-9572-1087d2fc807c_image.jpg|width=100%]]}}} || {{{#!wiki 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Nagasaki_City_view_from_Mt_Inasa01s5.jpg|width=100%]]}}} || [[일본]] [[나가사키현]]의 현청소재지. 입지조건 덕에 예부터 [[항만도시]]로 알려진 곳이다. 유서깊은 무역항이다보니 [[항만]]의 발달과 더불어 근대에 들어 [[미쓰비시 중공업]][* 미쓰비시 중공업의 발상지가 나가사키이다. 미쓰비시조선소는 현재도 운영 중이며, 과거 선박건조에 쓰인 기중기가 세계유산에 등재 되어있다.]을 위시한 조선업과 방위산업이 발달했다. 하지만 그것이 미국의 핵공격을 부르는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또한 [[부산광역시|부산]]의 과거 모습과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지형과 도시 모양을 갖고 있어 부산 사람이라면 특히 친숙한 지역이다.[* 부산에서 흔히 볼수있는 가파르고 험준한 산복도로가 나가사키에도 많이 있다.][* 그러나 도시 규모로 봤을 땐 인구 300만이 넘는 부산에 미치진 못한다.] 이전에는 부산-나가사키간 항로도 있었다. 특히 주거 지역들을 보면 재개발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부산 달동네들과 유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쇄국정책을 고수하던 에도 시대 일본에서 유일하게 서양과 중국과의 교역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국제적인 항구 도시였다. 따라서 일본에서 서양문물이 가장 먼저 유입된 곳으로 이른 시기부터 상공업이 발달했으며, 1920년 기준 일본 내 7위의 인구를 갖는 대도시였다. 서양과의 교류가 잦아 [[근세]]에 [[포르투갈]], [[스페인]] [[선교사]]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였고, 덕분에 주로 탄압의 대상이였던 일본 [[가톨릭]]의 성지가 되었다. [[규슈]]의 경우 [[오토모 소린]], [[아리마 하루노부]], [[고니시 유키나가]] 등 많은 [[다이묘]]들이 가톨릭 신자였을 정도. 나가사키는 일본에 3곳 있는 [[대교구]] 중 1곳으로[* 나머지는 [[도쿄]], [[오사카]].] 평균 가톨릭 신자 비율이 1%가 안되는 일본에서 가톨릭 신자 비율이 무려 '''4.5%'''로 가장 높은 곳이다. 신교인 개신교도의 비율은 가톨릭만큼은 아니고 상당히 적은 편이며 다른 지역과 비슷하다. 물론 일본에서는 신도가 아니면 기독교의 종파를 딱히 구분해서 보지는 않는다. 부속 도서 지역의 경우도 예외. 나가사키 본토나 본토에 거의 붙어 있는 섬 일부가 아니면 역시 다른 지역과 큰 차이가 없다. 개신교 다수 지역인 [[오키나와]]는 일본과는 전혀 다른 문화권이라서 예외라 볼 수 없다. [[가톨릭]] [[성지]]도 많아 [[나가사키역(나가사키)|나가사키역]] 근처 니시자카 언덕에 있는 [[일본 26위 성인]] 순교성지가 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초 탄압 때 선교사와 일본인 신자 총 26명이 순교한 곳. 당사자들은 [[예수]]가 죽은 [[골고타 언덕]]과 비슷하다고 하여 이곳에서 죽기를 원했다고 한다. 그리고 [[카쿠레키리시탄]]이 드러난 계기가 된 오우라 천주당, [[메이지 유신]] 후 지어졌지만 원자폭탄 투하로 피해를 입었던 우라카미 대성당 등이 있다. 이곳들은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하기도 하였다. 또한 나가사키 현 동쪽에 위치한 운젠 시내 소재의 '운젠 지옥[* 일본 최초의 국립공원이라고 한다.]'이라고 불리는 유황온천 지대에서도 신자들에 대한 고문과 처형[* [[KBS]] [[역사스페셜]] 2012년 3월 8일에 방송된 [[https://www.youtube.com/watch?v=o_HMVhiJ5q0|임란포로 빈센트 권은 왜 화형당했나]] 편에서 운젠 지옥에서 행해진 가톨릭 신자 대상의 고문과 처형에 대한 언급이 잠시 나온다. 일본에 남아있는 당시의 기록을 보면 '산입(山入)'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산입이란 뜨거운 열탕이 솟는 운젠 지옥으로 신자들을 끌고 가 100도가 넘는 온천의 물로 고문을 가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고문은 수 일에 걸쳐 자행되었는데, 3일을 버티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가혹했다고 한다.]이 이루어져, 이곳에서 순교한 신자들을 기리는 운젠 지옥 순교지 기념비가 있다. 해당 지역의 풍습에 대한 것이 실제 나가사키시 고토지마를 배경으로 하는 [[바라카몬]]에서 자세히 나오는데, 성묘를 하는 시점에서 불꽃놀이를 한다던가, 묘의 글씨 색깔이 노란색이라는 것 등은 해당 지역의 특징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