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관중 (문단 편집) === 관점 === 삼국지연의를 지은 것 때문에 한동안 [[촉빠]]라서 [[위나라]]와 [[조조]]를 깠다느니, [[역사왜곡]]을 했다느니 하는 [[비판]]을 받았다. [[최훈]]도 그를 '저도의 유비빠'라고 평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관중이 촉빠라는 비판은 정말이지 얼토당토않고''', 오히려 '''나관중이야말로 조조에 대한 재평가를 처음으로 시도한 사람'''이다. 일단 [[삼국지연의]] 집필 이전부터 중국 [[민중]]은 촉한에 대해 옹호적이었고, [[조조]]와 [[위(삼국시대)|위나라]]는 원래 평판이 나빴기 때문에 삼국지연의도 선역의 유비, 악역의 조조라는 구도로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연의에서 나관중은 최초로 위와 촉의 서사적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으며, 그 결과 조조는 드디어 단순한 악당에서 벗어나 '''팬이 생길 건덕지가 있는 인물'''이 된다. 한때 유행하던 조조 재평가론도 나관중이 조조를 입체적 매력을 가진 명품 빌런으로 묘사해주지 않았으면 씨알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연의에서 [[조조]]를 많이 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데 오히려 나관중은 역사서에 없는 내용을 [[조조]]에게 붙여준 것이 엄청나게 많다. 특히, [[동탁]]을 암살하려 칠성검도를 꺼냈다 튄 이야기는 정말로 나관중이 난데없이 창작해 낸 이야기이다. 원래 역사상으로 동탁에 대응하며 떠오른 이는 [[원소(삼국지)|원소]]인데, 나관중이 이 시기의 원소 간지를 전부 조조에게 넘겨서 '''원소를 노답으로 만들면서까지 조조를 띄워줬다.''' 거기에대가 "내가 천하를 배반할지언정 천하가 나를 배반하게 할 수는 없다" 같은 희대의 명대사까지 손수 붙여준다. 물론, 정사에도 비슷한 의미의 말이 나오기는 하지만 사실 그건 "내가 남을 해쳤으면 해쳤지, 먼저 남에게 당하지는 않겠다."는 투의 피해망상 범죄자 냄새가 나는 졸렬한 발언이었다. 나관중은 이 말의 스케일을 키움으로서 조조를 감히 천하까지 노리는 최종보스로 만든 것이다. 반면에 조조의 대표적인 악행으로 꼽히는 [[관도대전]] 이후 원소군 포로 생매장은 통으로 삭제했으며 거꾸로 오히려 원소와 내통한 조정 신료들을 용서해주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천사의 편집]]을 해준다. 그 밖의 조조의 악행도 통삭제시키거나, 스케일을 줄이거나 나름의 이유가 있다는 식으로 천사의 편집은 계속된다. (다만 [[서주 대학살]]만큼은 백성을 살육했다고 언급한다.) 여기에 관우를 흠모하는 조조의 우정 묘사도 나관중이 처음으로 시도한 것으로, 그 이전의 작품인 [[삼국지평화]]에선 조조는 관우가 자신을 떠나려하자 분노해서 계략으로 그를 잡으려 하고, 화용도에선 관우의 고뇌같은거 없이 그냥 갑자기 자욱하게 안개가 끼여서 조조가 도망가는 식이라, 아무런 케미가 없다. 즉 그냥 잔인한 악당이었던 조조에게 인재를 아끼는 통이 큰 면모를 부여한 것도 나관중이다. 여기까지 읽어 보면 알겠지만 당시 조조에 대한 인식에 비해서 조조를 말도 안되게 띄워준 셈이다. 이러한 관점을 민간설화에서 차용한 것으로도 볼 수 없는 것이, [[삼국지연의]]의 전신인 [[삼국지평화]]에서도 조조는 그저 동탁 mk-2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다. [[나관중]]은 당시 섭렵 가능한 거의 모든 민간설화나 여러 역사 책에 흩어져서 묘사된 내용을 전부 그러모아서 연의를 저술한, 당시의 삼국지 최고 전문가이기에 이러한 서술 경향은 어디서 베껴온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나관중의 철저한 의도 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촉 진영 역시 관우를 속이는 유비라거나, 장판파에서 장비를 20여 기만 따라온 이유가 장비에게 맞아죽기 싫어서라고 표현하는 등 시각에 따라서는 오히려 나관중을 촉까 위빠로 볼 수도 있다. 분명 촉 장수들의 활약을 늘려 준 부분도 있지만, 원래 엄청난 영웅이었던 [[유비]]는 전공이 전부 삭제되거나, 남의 전공으로 둔갑당했고 한술 더 떠서 유비를 상당히 [[위선]]적이고 무능한 사람으로 보이도록 묘사하고 있다. (이는 [[노신]]도 지적한 사실.)[* 정말 의도적으로 [[위선자]] 컨셉을 잡은 건지, 아니면 근현대에서 이렇게 해석이 된지는 불명. 일단 루쉰도 '위선자 같다'라고 했지 확정짓지는 않았다.] [[제갈량]] 역시 처음 느껴지는 포스는 소설 쪽이 더 강할지 몰라도 소설 속의 제갈량은 하나하나 따져보면 의외로 역사 속의 제갈량보다 허접하며[* 정확히 짚고 넘어가자면 전투에 있어서 기책, 책략 등은 [[한신]]과 맞먹을 정도로 과대평가되었으나 정치적인 능력인 내정과 관련된 부분은 과소평가되었다.], 유비 못지 않게 위선자에다가 [[권신]]으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렇게 촉의 비판적인 서술도 골고루 균형있게 수록해서 입체감을 살린 것은 나관중이 처음이다. 이와 더불어 나관중 이전에 쓰여진 [[삼국지평화]]에선 아예 역사왜곡을 해가며 억지 해피엔딩/촉한 승리 엔딩을 만든 데 비해[* 유비의 친척으로 설정된 유연의 아들 유총이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그때까지 살아있던''' 헌제가 이를 보고 만족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만일 이 때까지 헌제가 살아있었다면 서진 멸망 당시에는 120세가 넘는다(...) 이러느니 차라리 유총이 헌제 후손을 다시 찾아내 한나라를 재건했다는 설정이 더 나을 지경] 나관중은 촉한이 멸망하고 결국 진나라가 천하통일을 한 것으로 끝낸다. 이후 [[후삼국지]] 같은 물건들에 비하면 나관중은 최대한 '''역사적 사실이 허용하는 내에서''' 책을 저술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도 삼국지연의와 정사 삼국지를 구별 못하는 사람들도 있으니 그만큼 나관중이 역사적 사실에 어느정도 치중하며 저술했다고 볼 수 있다. 단 연의의 내용으로 미루어보면 [[제갈량]], [[조운]], [[관우]]를 매우 존경한 것은 사실이다. 특히 관우의 경우에는 나관중 본인은 관우가 죽는 장면조차도 묘사하지 않을 정도로 존경했던 것 같다. [[명나라]]대의 나관중본에서 관우는 죽지 않고 절체절명의 순간에 하늘의 부름을 받아 신이 되어 승천한다. [[청나라]] 시대에 [[모종강]]본이 나오면서 관우가 죽는 장면이 추가 된다.[* 모종강은 관우가 손권 앞에 붙들려왔을 리 없다는 배송지의 평가와 달리 손권과 대면하는 장면을 만든다.][* 가정본 일부에는 [[관우]]가 [[안량]]을 참수할 때 묘사도 '''안량이 관우가 이야기하러 오는 줄 알고 방심'''했기 때문으로 나오는 장면이 있다. 그러나 안량 방심 대목은 나관중의 서술이 아닌 후에 추가된 것으로, 모종강은 관우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가볍게 삭제한다.] 단 당시 민간에서 인기가 있었던 [[장비]]는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나관중이 촉빠라는 후대의 인식과는 달리 [[삼국지연의]] 출간 이후엔 나관중본 연의의 '''촉까 경향'''이 중국 대중들에게 거북함을 주어, 시장에서 그러한 서술이 소폭 완화된 [[모종강]]본으로 판본이 대체되는 결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영웅논담]] 때도 나관중본에서는 유비가 [[번개]]를 무서워하며 치졸한 변명을 하고 조조는 이를 보고 한심해 하는 데에 비해, 모종강본은 유비가 "번개가 치면 군자도 두려워했다 합니다."라고 멋들어진 변명을 하면서 조조를 감화시키는 등 유비에 대한 분칠이 더 심하다. 심지어 모종강본에서는 조조가 관우를 시험하기 위해 유비의 부인들과 함께 지내게 했더니 관우가 밖에 서서 밤을 지내는 장면까지 추가되었고 [[제갈첨]]이 [[등애]]에게 [[항복]]할까 고민하는 장면도 삭제되었다. 즉, 굳이 따지자면 나관중은 "영웅쟁패" 위주로 썼고, 모종강은 진정한 "숭유반조"(=촉빠위까)의 입장을 견지했다. (단, 모종강본이 나관중본의 관점을 전부 부정한 건 아니다.) [[삼국지가 울고있네]]에 따르면 일본에서 "조조가 삼국 제일 영웅"이라고 하자, 중국 측에선 비웃은 게 일본은 나관중본이 알려지고 중국은 모종강본이 대중적이어서라는 썰도 있다. 한마디로 '''촉빠위까는 [[모종강]]과 [[모성산]]인데 엄한 나관중만 덤터기를 뒤집어 쓰는 것이다.'''[* 사실 모종강도 조조에 대해선 악인이지만 웬만한 위선자들보단 조조가 훨씬 낫다든가 하는 식으로 조조가 단순한 악한이 아닌 '''대단한 악인'''이라는 식으로 [[평가]]한다.] 국가를 가리지 않고 오늘날 대중들이 알고 있는 삼국지연의는 대게 모종강본의 내용을 기초로 하지만, 저자에는 나관중이라고 쓰여 있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나관중이 촉빠였다는 오해를 산다. 오나라에 대해서 말하자면, [[http://pwt9887.egloos.com/4899120|여기]]서 [[손책]]의 일화를 보고 확인해보자. 추가로, 손책이 [[진등]]에게 10만 대군을 이끌고 갔다가 몇 천의 군대에게 발린 적이 '''2번''' 있는데 이것도 없앴다. 다만, 이것은 진수도 기록하지 않았으며, 확실하지도 않다. 하지만, 나관중이 엄청난 양의 민간설화나 야사들을 참조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관중이 '''의도적'''으로 삭제했을 수도 있다. [[손권]]의 경우는 간발의 차이로 이득을 본 편인데, 나관중은 연의에서 손권의 아량과 군주로서 도량을 보여주는 에피소드를 많이 추가하여 수성의 군주 이미지를 분명하게 했다. [[합비]]에서의 추태는 실제에 비해 스케일이 작아진 데다가, 그것마저 손권에 대한 손오 무장들의 충성심이 주로 묘사되었고 손권의 대표적인 치부인 [[이궁지쟁]][* 그냥 손화와 손패를 두고 분란이 일어나 손권이 손화는 쫓아내고 손패는 처형했다 정도로 묘사되지 구체적인 진행과 피해는 묘사되지 않는다.]이나 [[여일(삼국지)|여일]] 등용도 묘사하지 않아서 이미지 하락을 막아주었다. 다만, 손권의 아버지 [[손견]]의 경우 손해를 본 유명한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화웅]]을 벤 것이다. 연의에서는 손견군이 벤 화웅을 [[관우]]가 베었다고 묘사했지만, 실제 역사에서 관우와 화웅은 평생 단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사실 화웅은 원래 유명한 무장도 아니고 연의에서 관우가 죽였기 때문에 유명해진 무장이어서 이 공을 넘겨 준 걸 가지고 크게 손해 보았다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또 정사에서 [[동탁]] 진영은 손견을 [[원소(삼국지)|원소]], [[원술]], [[유표]]와 함께 위협적인 인물로 평가했는데 연의에서는 용맹있는 장수로서만 조명된 감이 없지 않아 있다. 다만, 정사에서 원술의 객장이었던 손견을 당당히 독립세력으로 묘사했기에 오히려 이득이라고 할 수 있다. [[주유(삼국지)|주유]]의 경우, 주유 최대의 공인 적벽대전도 제갈량의 동남풍으로 승리한것으로 묘사되었으며[* 정사에서 제갈량은 외교적인 부분밖게 기록되지 않았다.] 조인과의 치열한 싸움인 남군에서의 공방전도 제갈량의 계략으로 성을 탈취당해서 피를 토하는 장면으로 각색되었다. 특히 적벽대전 당시 유비군과는 비교가 안 될 큰 세력인 오나라의 2인자인 주유가 제갈량을 시기질투할 이유도 없고 "기생유 하생량"[* "이미 주유를 낳았거늘 제갈량을 왜 또 낳았는가"]이라고 한탄할 이유가 전혀 없다. 또한 개인의 선호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것인지 관우를 죽이거나 그를 적대하여 상대적 전적이 좋은 장수들은 말로가 좋지 않다(...)는 공통점이 있다. 관우를 죽인 마충은 미방에게 잠중에 목이 잘리거나, 강릉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주유, 육항처럼 대도독의 자리에까지 올라간 주연이 조운에게 죽어 일찍이 퇴장하는 등 푸대접하는 인물들이 있다. 후술할 서황도 아래에 나오듯이 정말 허망한 죽음을 맞았으며, 조인도 정사에 비해 꽤나 너프되었으며, 마충 그리고 주연을 제외하고도 꽤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오나라 장수들이 많다. 방덕 정도를 제외하고는 관우와 싸워서 이득을 본게 없다.[* 그 외에도 육손, 장료가 언급되는데 육손은 어디까지나 여몽에게 꾀병을 내서 관우를 안심시키라는 계략만 진언했지 직접 관우와 대적한 적이 없으며, 장료도 최대한 관우와 조조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에 가까웠지 관우와 크게 대적한 일은 없다.] 이처럼 '''나관중은 삼국의 비중을 대략 균등하게 맞춰 주면서 소설의 재미와 깊이를 최대한 살렸다.''' 물론 그래도 오의 비중이 위와 촉에 비하면 살짝 낮긴 하지만 삼국시대 내내 위나라와 촉나라의 대립이 짙었음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긴 하다. 애초에 또 역사적으로도 조비의 칭제, 유비의 칭제에 비해 손권의 칭제는 다소 평가가 낮은 감도 있고... 애당초 편향된 서술이라는 지적들은 삼국지연의는 한 개인에 의해 창작된 것이 아니라 남송시대까지 전해오던 삼국시대에 관한 모든 역사, 전설, 민담, 신화들이 집약된 거대한 전집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주장들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