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관중 (문단 편집) === 전투 규모가 과장되었다? === [[관도대전]], [[적벽대전]], [[이릉대전]]를 비롯해 여러 전투의 규모를 실제보다 몇 배나 더 부풀렸다고 비난하는 경우가 있는데, 연의는 역사서가 아니라 엄연한 [[소설]]이며, 나관중 자신이 "삼국 '''연의'''" 라는 명칭을 직접 붙였다. 소설의 재미를 위해서 과장이 들어가는 것은 현대나 옛날이나 다를 바 없다. 그리고 전근대에서 정사, 소설을 막론하고 단위가 과장되는 것은 상당히 많았다.[* 서양 최초의 사서라고 할 수 있는 [[헤로도토스]]의 역사만 봐도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많다.] 이것은 통설처럼 중국인이 허풍이 많아서가 아니라, 당시 통계의 개념이 없었던 때인데다가, 비교적 정확한 계산을 할 수 있던 주판이 중국에 도입되거나 발명된 시기가 송원대이고, 그 이전의 산법에서는 100이 넘어가면 그때부터는 그냥 많다는 개념으로 만, 십만, 백만이라는 수를 별 구분 없이 쓰곤 했다. 그러니 [[호왈백만|호왈]]이 당연시되던 시기였다. 그 외에도 아군의 병력을 부풀리는 건 적에게 심리적인 압박을 준다는 목적도 있다.[* 사기 같은 사서를 보면 실제 병력 얼마를 얼마로 부풀려서 호왈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더욱이 중국 총 인구가 5천만 남짓이던 후한 말과 달리 나관중이 살았던 원말명초에는 이미 중국 인구가 1억에 달해서 수십만 대군은 기본이고 정말 백만대군이 동원되거나 호왈로는 800만 대군을 일으키는 경우도 간혹 볼 수 있었으므로 이정도 과장을 곁들이지 않았으면 당대 독자들에게 대전투의 감흥을 전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