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선정벌 (문단 편집) === 한반도: 조선의 상황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북벌론)] [[병자호란]]에서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조선에 새로 즉위한 국왕 [[효종]]은 그 지지 기반이 매우 취약했다. 일단 청나라에 비굴하게 고개 숙인 조정에 들어가 관직을 하지 않겠다는 [[양반]]의 수가 전국적으로 매우 늘어났다. 재야의 여론을 장악한 이들 [[산당]] 세력은 한성과 조정 내의 [[사대부]]들에 비해 유교적 명분과 수에 있어 압도적인 우세를 지니고 있었다. 거기다 효종 본인도 본인의 것이 아니었던 왕위를 형 [[소현세자]]의 석연치 않은 죽음으로 인해 받은 것이었기에 그 정통성이 좋지 않았다. 그렇기에 효종은 산당 세력을 확실하게 제어하고 왕권을 확립하기 위해 '''[[북벌]]'''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명나라]]를 위한 복수라는 명분을 통해 거대한 산당 세력의 지지를 얻음으로써 권력을 바로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국방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도,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이괄의 난]], [[병자호란]]을 거치며 박살이 나 있었던 [[조선군]]의 군제를 개편할 실질적인 필요 또한 있었다. 다만 그가 실제로 북벌을 통해 청나라를 칠 생각이 있었다는 정황은 보이지 않는다. 형 소현세자와 마찬가지로 효종 또한 중원에서 천하가 뒤바뀌는 현장을 직접 목격했고, 청나라에 전쟁을 다시 시도하는 것은 무익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북벌은 국가의 무너진 기틀을 다시 재확립하기 위한 내부 단속용 기치였다. 어찌되었건 북벌론에 따른 효종의 개혁 시도는 점차 효과를 거두기 시작한다. 그 중 하나가 [[조총]]의 보급률을 대대적으로 늘리는 것. 그러던 1654년 2월, 조선에 청나라 사신 한거원이 도착했다. 한거원의 서신에는 '''"조창선수 100여 명을 보내시오. 나선을 정벌하려 함이오."'''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이에 효종이 '''"나선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으며, 한거원은 '''"닝구타 인근의 별종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재미있는 점은 당시 청나라는 러시아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이 "나선"의 정체가 러시아의 시베리아 원정대라는 것은 전혀 몰랐다는 것이다. 중원에 파송된 가톨릭 선교사들 덕분에 청나라도 유럽 구석탱이에 모스코비아[* 말할 것도 없이 [[모스크바 대공국]]을 말한다.]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가톨릭 선교사들이 유럽의 소식을 가져오는 데엔 큰 지연이 있을 수밖에 없었고, 러시아는 유럽에선 변방 중의 변방인지라,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평정하려 원정대를 뿌리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가능성도 낮았다. 따라서 청나라는 이들이 만주 너머 시베리아에서 남하한 정체 모를 유목 집단 같은 것으로 파악, 대충 "나선"이라는 명칭을 붙였다. 상식적으로 누가 그 먼 유럽에서 시베리아를 건너 만주까지 오리라 생각했겠는가? 심지어 러시아 본국에서도 자기네 원정대들이 극동에 가서 청나라의 권역을 들쑤시고 있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청나라는 나선정벌이 끝난 이후에야 나선이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단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러시아의 사절단에게 강력하게 항의했는데, 러시아는 이 항의를 받고 나서야 자기네 원정대가 시베리아 너머에서 적을 마주쳤다는게 사실 청나라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러시아의 시베리아 개척이 얼마나 막무가내로 이루어지고 있었는지 체감해 볼 수 있는 일화다. 어쨌든 이런 청나라의 요청에 [[효종(조선)|효종]]이 호응하여 변급을 지휘관으로 삼고 포수 100여 명, 초관, [[통역]]들을 포함한 152명의 부대를 결성, 파병함으로써, 조선 또한 나선 정벌에 참여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