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우루 (문단 편집) === 전성기 === [[파일:nauru rich.jpg]]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미국]]에 의해 해방된 후 나우루는 [[호주]]에 귀속된다. [[1951년]]에 지방 정부 회의가 나우루에 설립되고 섬에 일부 자치행정이 부여되었다. 이후 [[영연방]]과 합의해 [[1968년]] 독립했다. 나우루는 [[구아노]](동물의 똥)로 섬이 이루어졌고, 그 똥이 [[인광석]]이라는 자원으로 변해 묻혀 있었다. [[1970년]]에 호주, 뉴질랜드, 영국이 갖고 있던 인광석 채굴권을 넘겨받았다. 여기서부터 나우루의 본격적인 황금기가 시작된다. 나우루는 인광석을 채굴해 수출하여 엄청난 돈을 벌었다. 광업 초기에 국영회사는 광산 지대에 땅을 소유한 나우루인들에게 선적된 인산 1톤에 대해 1/2 페니씩을 지불했으며, 연간 선적량은 100만 2,000톤에서 200만 톤에 이르렀다. 20년 동안 인광석을 채굴했던 신탁회사들의 로열티만 하더라도 2억 3,000만 달러로 추정된다. 그 결과 [[1980년대]]에는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가는 부국이 되었다. 미국은 물론, 최고의 경제 호황기였다는 [[1980년대 일본 거품경제|버블경제 시절]]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도 1만 달러 정도였는데, 울릉도보다 작은 섬나라가 이들의 국민소득을 아득히 뛰어넘었던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카타르]]나 [[룩셈부르크]] 정도의 부국이 된 것이다. 국민들은 모두 부자가 되었고 워낙 [[인구]]가 적었기 때문에(1980년 당시 7,750명) 부의 분배도 비교적 공평하게 이루어져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적었다고 한다. [[오일머니]] 저리 가라 급의 [[돈지랄]]을 뛰어넘는 수준으로 전 국민이 모두 잘 살게 되었다. 예를 들면 '''개인 전용기'''를 타고 [[피지]]나 [[하와이]], [[싱가포르]]로 매일같이 쇼핑을 하러 가고, 간선도로가 나라에 딱 1개밖에 없어[* 그것도 길이가 18㎞에 제한속도는 40㎞/h에 불과했다.][* 다만 우회도로는 있다. 인광석을 나르기 위해 인광석 광산까지 이어주는 도로는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속도로가 없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너도나도 [[람보르기니]], [[포르쉐]] 같은 고급차를 '''기본적으로 두 대씩 소유하며''' 타고 다녔다. 그 좁은 섬에 여객기만 9대에 주유소는 29개나 있고 걸어 다니기 귀찮아 얼마 안 되는 거리도 차를 타고 다녔으며, 마트에서 쇼핑을 하기도 귀찮아서 차를 몰고 마트 앞에 가서 전화하면 종업원이 주문한 물건을 들고 나와 차에 실어 주었다. 채굴산업에 현지인들은 없고 외국 자본가와 [[외국인 노동자]]들만 있었는데도 국민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이들이 서비스를 제공받기 위해 필요한 노동력은 전부 외국인 노동자로 대신했다고 한다. 심지어 [[공무원]]까지 [[외국인]]이었으며 [[세금]]도 없고 주택, 학비, 유학 경비, 의료 서비스도 모두 국가에서 지원했기 때문에 전부 공짜였으며 심지어 빨래나 청소도 [[메이드]]가 다 해주었다. 인광석으로 인해 부자가 된 나우루 국민들은 별 생각 없이 돈을 탕진했고,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