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치즘 (문단 편집) == 민족사회주의가 탄압한 대상들 == 나치즘에 따라 지구상에서 멸종시켜야할 절멸 대상일 경우 '''볼드체'''로 구분했다. * '''[[유대인]]''' * '''[[집시]]'''[* 특히 집시족들은 홀로코스트 당시 인구의 72%가 사망했을 정도로 나치당원들은 이들을 유대인과 동급으로 아주 가혹하게 학대했다.] * [[슬라브족]][* [[우스타샤]]나 [[러시아 해방군]]처럼 나치에 부역한 슬라브계 군사 집단도 있었지만 나치는 공식적으로 슬라브족을 게르만족의 노예로 만들어야 한다는 강령을 내세웠다. 다만 슬라브족을 유대인처럼 절멸대상으로 지정하지는 않았다.][* 티머시 스나이더의 블랙어스에 따르면 슬라브인이 히틀러 본인이 생각했던 것만큼 열등하지 않고 유대인의 노예도 아니라는 것을 죽기 전 깨달았다고 한다.] *[[동성애자]][* 이쪽은 탄압 대상이었지만 '''절멸 대상까지는 확실히 아니었다'''. 일단 여성 동성애 혐의로 강제 수용소로 끌려간 사례도, 여성 동성애를 처벌하는 법안이 제정된 적도 없었으니 나치즘의 공식 탄압 대상이라 하기도 어렵다. 또한 남성 동성애자들을 탄압하는 법(형법 175조)은 독일 제국과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부터 존재했고, 나치 독일은 이에 처벌받을 수 있는 '동성애 행위'에 대한 범위를 늘린 것 외에는 더 한 게 없기 때문에 나치 독일의 동성애 탄압을 나치즘의 전유물로 볼 수 없다. 또한 동성애 탄압을 전담한 게슈타포 문서에 따르면 100,000명이 동성애 혐의로 체포되었지만, 이 중 재판을 받은 사람은 50,000명, 그리고 수감된 인원은 5,000명에서 15,000명으로 추산된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이지만, 재판이고 불기소처분이고 뭐고 닥치는 대로 수백만씩 잡아간 유대인이나 롬인(집시)에 비해 나치의 동성애 탄압은 확실히 약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남성 동성애자들이 강제 수용소에 끌려간 사례의 절대 다수가 1937년과 1939년 사이에 한정되어 있고, 이마저도 SS와 게슈타포의 공적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알코올 중독자, 노숙자들과 같이 끌려간 사례가 대부분이다.[* Giles, Geoffrey J (2001). Social Outsiders in Nazi Germany. Princeton, New Jersey: Princeton University Press.][* Günter Grau (Hrsg.): Homosexualität in der NS-Zeit. Dokumente einer Diskriminierung und Verfolgung. 2. überarbeitete Auflage. Fischer-TB, Frankfurt am Main 2004.] 정리하자면 나치 독일 시기에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인 탄압은 존재했으나, 나치 정부의 직접적인 탄압은 남자 동성애자들에게만 한정되었고, 유대인이나 롬인과 같은 절멸 대상은 확실히 아니었다. ] * '''[[여호와의 증인]]''' * '''[[자유주의]]자''' * '''[[사회자유주의]]자''' * '''[[사회주의]]자'''[* 여기서 말하는 사회주의는 민족사회주의의 사회주의와는 다른 [[마르크스주의]]적 사회주의를 말한다.] * '''[[사회민주주의]]자'''[* 특히 '''[[독일 사회민주당]] 인사 전원.'''] * '''[[아나키스트]]''' * '''[[공산주의]]자''' * '''[[페미니스트]]'''[*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반파시즘]] 운동을 하였으며(특히 스페인) 이들 역시 민족사회주의에서는 절멸시켜야할 대상, 즉 유사 공산주의자로 보았다.] * 민족사회주의에 적합하지 않다고 간주된 [[퇴폐미술]]가, 퇴폐예술가[* [[재즈]]처럼 나치의 입맛에 맞지 않았던 예술을 추구하거나, 유대인 혈통을 가진 사람이 만든 모든 것을 나치는 유대볼셰비즘에 물들었다며 탄압했다.] * '''선천적 불구[*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절름발이]]었지만 후천적 [[소아마비]]로 인한 것이므로 대상에서 제외함.][* 문제는 이 원칙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는데 예를 들어 T4 작전에서 희생당한 희생자 중에는 후천적 불구자들도 많았으며 그중에서는 무려 '''참전용사'''도 있었다. 다만 이는 공식적으로 참여시킨건 아니고 여기에 가담했던 카를 브란트가 몰래 실행한 것인데 그 소문이 퍼지면서 군인, 종교계, 시민들이 항의를 하여 정부에서도 T4 작전의 중단을 선언했...지만 말만 중단이고 실제로는 패망하는 그 날까지 계속 실시해서 중단 선언 전에는 7만명이 그 후에는 9만명이 희생되었다. 이런 끔찍한 만행으로 인해 당시까지 유럽에 만연해 있던, 나치즘의 기반이 되어준 우생학에 대해서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지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어 결국 우생학이 퇴출된다.], 유전적 [[장애인]], [[정신질환자]]''' * [[간질]], [[치매]] 환자 * [[자폐아]][* [[고기능 자폐증]] 제외.], [[다운증후군]] * '''[[국제주의]]자''' * [[에스페란티스토]] * '''[[혼혈]]''' * '''[[탈영병]]''' * '''[[병역기피]]자''' 볼드체로 쓰지 않은 대상은 다소 애매하다. 탄압하고 죽인 것은 확실한데 이들을 단순히 '열등분자(Untermensch, [[운터멘쉬]])[* 복수형은 Untermenschen(운터멘셴), 영어로는 Under-mankind.]'로 봐서 고의적으로 탄압했다기보다는 우수한 [[게르만족]]을 필두로 한 [[아리아인]]보다 열등하기에 그에 맞는 취급을 받게 했다고 봐야 한다. 당시 [[20세기]]의 민족사회주의는 이념이 상당히 모호했다. 그렇기에 같은 민족사회주의라도 절멸대상과 열등분자의 서로 차이가 나는 경우도 다수 존재하였으며 이는 결국 제대로된 이념으로 발전하는데 실패하였다고 봐야 한다. 물론 일부 인물들의 주장대로 파시즘에서 민족사회주의로 민족사회주의에서 또다른 이념으로 발전해나간다고 가정한다면 그리 이상한 점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민족사회주의가 제대로된 이념이라 보기는 어렵다. 또한 당시 민족사회주의의 우생학은 귀에 붙이면 귀걸이, 코에 붙이면 코걸이 수준의 유사과학정도의 부족한 수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사과학은 실상을 조금만 파헤치기만 해도 개소리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듣기엔 충분히 그럴싸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보다 모순이 더 많은 나치즘에 독일인들, 심지어 진짜 과학자들에 노벨상 수상자까지 열광한 것은 이 이념이 적어도 민중들의 상황에는 적합했기 때문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