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훈아 (문단 편집) == 라이벌 [[남진]]과의 비교 == 남진과 나훈아는 1970년대부터 라이벌로 경쟁했고, 두 사람의 팬덤도 갈라져 있었다. 마침 언론 및 대중들이 두 사람을 라이벌 구도로 만들기 딱 좋은 차이점들이 여럿 있었다. 남진은 수려한 외모에 호방한 목소리로 대중성이 강했고, 나훈아는 상대적으로 외모가 투박했으나 싱어송라이터로 음악성을 어필하는 느낌이 강했다. 노래의 성격 역시 남진은 도시의 세련된 이미지를 담은 가사를 주로 사용한[* 이는 남진의 대표곡인 '님과 함께'가 도시보다 님과 함께하는 농촌이 더 좋다는 내용이라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기도 하다.] 반면 나훈아는 고향에 대한 향수나 시골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담은 가사를 주로 사용했다. 두 사람의 집안 배경조차 대조적이어서 나훈아는 부산 출신의 서민 집안이지만,[* 사실 나훈아 집안도 이미지만큼 서민적인 집안은 아니었고 어느정도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집안이었다. 다만 그래도 금수저 중의 금수저였던 남진 집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남진은 전남 목포 출신의 매우 부유한[* 남진의 아버지인 [[김문옥]]씨는 곡물 정미회사, 언론사 등을 경영한 기업인이자 제5대 국회의원도 지냈던 인사였다. 남진의 회고에 따르면 한 때 전라남도 전체에 개인 자가용이 두 대 있었는데 하나는 전남도지사를 위한 전남도청 것, 하나는 김문옥씨 것이었다고.] 집안이었다. 두 사람의 상반된 외모 차이와 분위기 탓에 양쪽 팬덤에서도 라이벌 대립각이 만들어져서, 당시 공연장에 가면 남진 팬들은 나훈아에게 '소도둑놈 저리가라'고 외치고, 나훈아 팬들은 남진에게 '돼지 멱따는 소리 치워라'라 외치며 공방전이 벌어졌다고 한다. [[http://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204240020921102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2-04-24&officeId=00020&pageNo=11&printNo=18632&publishType=00020|#80년대 칼럼]] 두 사람은 '어머님 생전에(1973년)'같은 영화에 나란히 출연하기도 했다. 이 시기에는 남진이 인기가 좀 더 많았지만 나훈아가 후에 부각되며 라이벌로 불리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예술적인 곡을 많이 작곡, 작사를 한 나훈아는 가수, 예술가로서 확실한 자리를 잡는다. 남진 콘서트도 매번 매진되지만 나훈아 콘서트는 티켓은 발매를 개시하자마자 10초도 안 되어서 동나기 때문에 콘서트 가기가 하늘의 별따기에 가깝다. [[BTS]], [[이승환]][* [[http://sports.hankooki.com/lpage/entv/202002/sp20200217082304136690.htm|이승환, 공연 종합매출 순위 ‘5위’ 기록…“공연계 레전드”(스포츠한국)]]], [[한국시리즈]] 7차전[*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8/11/05/2018110500279.html|PO 5차전 명승부가 불지핀 열풍, KS 7차전까지 매진(스포츠조선)]]], 명절 전 일반 열차 급으로 티켓 예매하기 어려우며, 아들 딸 전부 동원해서 예매를 해도 성공하기가 불가능에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5491276|가깝다.]] 다만 이것은 활동노선의 차이도 있다. 나훈아는 극도의 신비주의로 신곡을 발표하는 텀도 길게 두고,[* 물론 나훈아가 2020년 KBS 공연에서도 밝혔지만, 무작정 고의적으로 그렇게 가기보다는 신곡 하나 만드는데 상당한 공을 들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신곡도 오직 콘서트에서만 들을 수 있다. 반면 남진은 가요프로 출연도 잦고 후배들과 자주 협업하는 등 트로트 가수치고는 다작하는 편이다. 팬 입장에서는 '반드시 콘서트에 가야 할'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이는 가수로서의 각자의 철학에 따른 것이기도 한데, 나훈아는 '저 하늘 위의 별'로서 본인을 포지셔닝한 반면 남진은 어디까지나 '대중의 친구'를 지향했다.[* 요즘 가요계 식으로 보자면 '''코어팬덤형''' 아이돌과 '''대중형''' 아이돌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맞고 틀린게 아니라 두 사람이 가진 가수로서의 가치관이 '''다른''' 것.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