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네로 (문단 편집) == 기타 == * 다른 씨족 가문들과 다르게, 타 씨족 태생의 양자를 들여 입양하지 않았던 [[클라우디우스]] 가문에서 최초로 입양된 남성이 네로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입양 전 네로의 프라이노멘이 클라우디우스 가문 내에서 노상강도, 살인 혐의로 [[흑역사]] 취급되어 철저히 금지된 프라이노멘 '루키우스'였다. * 원수정하의 제정 로마 시대동안 제위에 오른 황제 중, [[엘라가발루스]]가 등장하기 전까지 [[어린 나이에 즉위한 군주들|가장 어린 나이에 임페라토르직에 오른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 야사 같은 이야기들에 따르면 네로가 태어난 그날, 네로의 친부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가 친구, 친인척들에게 축하를 받는 자리에서 갓 태어난 아들을 인지해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 '''나와 아그리피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라면, 가증스럽고 혐오스러운 놈이 될 수밖에 없을걸?! 얘는 국가적 위험이 될 거야."' 따라서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자기 아들이 맞다고 인지를 한 뒤, 평소처럼 행동한 남편을 대신해 아이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하다가, 오빠 [[칼리굴라]]에게 사람을 보내 자기 아들에게 마땅한 이름을 지어달라고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이는 그녀가 오빠에게 자기 아들을 황족으로 인정해 달라는 요구였는데, 당시 칼리굴라는 삼촌 클라우디우스와 황궁 안에서 국가 사무를 논의하고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아그리피나의 시종이 이를 전하자,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 힐끗 숙부를 쳐다본 뒤 "클라우디우스라고 짓는 게 어떠냐?"라고 농담하곤 알아서 하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는 자신의 숙부 클라우디우스가 아그리피나와 그 남편 그나이우스에게도 웃음거리 내지 조롱거리로 인식된 것을, 칼리굴라가 정곡을 찌른 뼈 있는 농담이었다고 하는데, 이 이야기가 맞다면 결과적으로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는 입양을 통해 진짜 클라우디우스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 [[수에토니우스]]가 기록한 전설에 따르면 네로가 어린 시절 암살 시도가 있었는데 이때 암살자들이 뱀 허물을 보고 뱀으로 착각해서 목숨을 건졌고[* [[로마 시대]]부터 이탈리아인들은 뱀을 흉조라 생각해 전쟁 전날 뱀을 보면 전쟁에서 패할 것이라 믿었다고 한다. [[2002년 월드컵]] [[히딩크호 이탈리아전|한국전]] 전날에도 하필 이탈리아 선수단 숙소에 뱀이 나타나 다음 날 경기장에 임할 때 반쯤 멘탈이 나간 상태로 임했다고.]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이 뱀 허물을 황금 팔찌로 만들어 네로가 착용하고 다니도록 시켰는데 훗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그는 팔찌를 버렸으며 얼마 뒤에 몰락했다고 한다.[* 출처:수에토니우스, 12명의 카이사르, 네로 편 6장] * 예술에 탐닉했지만 정작 그의 능력은 함량 미달이었다는 게 중론이다. [[플로렌스 포스터 젠킨스|자기는 노래를 잘 불렀다 생각했지만 심각한 음치]]였다. 그래서 네로는 노래를 어떻게든 잘 부르기 위해 목에 안 좋다는 음식도 가려 먹고[* 한 달에 한 번은 반드시 부추와 올리브 오일을 먹거나 공연 날짜가 잡히면 빵같이 목에 안 좋다고 여기는 음식은 아예 먹지 않고 부추만 입에 달고 사는 등으로. 당시엔 부추가 목에 좋다고 여겨졌다.] 복근도 단련하는 등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결과가 영 시원찮자 박수 부대를 조직해 거금을 쥐어주며 공연마다 따라다니며 억지 호응을 유도해 바람을 잡았고, 공연장 문을 잠가 청중으로 하여금 자신의 노래를 듣게 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 한편 [[베스파시아누스]]는 젊었을 적 [[현영철|네로의 시를 듣다가 조는 바람에]](!)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는가|네로의 노여움을 산]] 적이 있다. 다행히 그 자리에 있던 네로의 총신 [[페트로니우스]]의 비호로 유배되는 선에서 끝났다. * 네로의 아내인 포파이아 사비나는 목욕을 위해 당나귀를 500마리나 길렀으며 본인의 피부 관리를 위해서 아침과 저녁에 당나귀 젖으로 목욕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500명의 노예를 두었고 여행을 떠날 때도 이들을 데리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다. *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666]]의 실체가 네로라는 설이 있다. * [[향수(화장품)|향수]], [[향신료]], [[장미]]에 대한 사랑이 대단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그리스 문화 애호가였던 네로는 유명한 향수 매니아였고, 그리스에서 로마로 넘어와 인기를 끌던 장미 역시 광적으로 좋아했다. 그래서 장미로 만든 향수로 분수를 만들어 배치했으며, 향수 바른 새를 집 안에 날아다니게 했다고 한다. 또한 자신이 개최한 연회에서도 사람이 장미에 깔려 질식사할 정도로 장미와 향수를 사랑했다. 이런 까닭에 그는 아내 포파이아 사비나와 함께 사용하는 방에 장미 꽃잎을 가득 채워 지냈고, 늘 장미 꽃잎을 채운 욕조에서 목욕을 즐겼다고 한다. 아울러 네로는 값비싸기로 유명한 향수와 향신료들을 거침없이 소비했다고 하는데, [[아라비아]]에서 생산되는 향수 10년 치를 아내 포파이아의 장례식에서 한 번에 사용했고 [[시나몬]]을 한 도시에서 1년 소비할 양만큼 하루에 태웠다. * 네로는 암살당하지 않기 위해 살아있는 동안 계속 독약을 마시며 내성을 길렀다고 한다. 네로는 채찍형으로 죽을 거라는 말을 들은 이후,[* 이때 쓰는 채찍은 말채찍 같은 것이 아니라 날카로운 납 조각들이 주렁주렁 달린 것으로 살점을 거의 파내다시피 뜯어버리는 무시무시한 무기다.] 덜 고통스러운 죽음을 위해 자살을 시도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택한 방법이 독물 자살(...). [[만독불침|허나 독 내성 때문에 죽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여러 번의 시도 후 원하던 대로의 죽음을 맞게 된다. * 공교롭게도 [[칼리굴라]]와 같은 안티움[* [[이탈리아어]]로 안치오] 태생이다. 안치오는 폭군들만 나온 땅이라 네로 사후엔 잊혔다가 1944년에 와서야 [[안치오 상륙 작전]]으로 다시 역사에 나타나는데, 이때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 ~~리얼 흉지~~ * [[https://www.foxnews.com/science/archaeologists-discovered-a-hidden-chamber-in-roman-emperor-neros-underground-palace|2019년에 네로 황제의 지하 궁궐이 발굴되었다.]] 그리고 2023년 네로의 개인 극장이 발굴되었다.[[https://edition.cnn.com/travel/article/emperor-nero-theater-rome-scn-scli-intl/index.html|#]] * 네로(Nero)라는 컴퓨터 프로그램이 있다. 기능은 CD 롬이나 DVD 롬을 굽는 것. 영어로 "롬을 굽는 것"을 “burning ROM”(롬을 태운다)이라 하기 때문에, "로마에 불을 질렀다."는 네로의 이름이 붙여진 것인데 이 문서에도 나와있지만 이는 누명이다... * 69년 실각 당시, 말 그대로 [[기록 말살형]] 조치와 국가의 적으로 규정된 만큼 당해부터 말 그대로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고, [[콤모두스]] 기록 말살형 만장일치 당시에는 악랄함의 표본, 인간 말종의 교과서 등으로 가루 빻이듯 씹혔다. * [[베스파시아누스]]가 제정한 69년 제위 계승법이 새겨진 카파톨리누스 신전 내 동판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고, 동판 법령에 명문으로 아에 자신과 두 아들이 갖는 로마 프린켑스의 정통성을 "클라우디우스와 그 아들 브리타니쿠스에서 이어받았다"고 말하며, 네로를 반(半)찬탈자 내지 비정통성 프린켑스로 규정했다. 이는 기록 말살형의 결과일 수도 있는데, 70년 로마 입성 후 황제의 첫 국정 연설을 보면 그냥 황제로 취급조차 안 했던 것에 더 가까웠다. 따라서 황제와 원로원에게 네로는 다른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황제들이 언급되는 가운데, 공식적인 기념식이 없었던 칼리굴라보다 '''더 나쁜 놈'''으로 규정되어 언급조차 되지 못했다. * 기록 말살형을 당한 황제들의 조각은 파괴되거나, 코 부분만 일부로 파괴해 버렸는데, 네로의 경우에는 아예 사람, 가축들 발에 밞히도록 해버렸다. 따라서 소아시아에서 발굴된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를 위한 황제 숭배 제단의 경우, 완전 군장 차림의 10대 네로가 어머니와 함께 있는 부조는 다른 황제들과 달리 따로 떼어져 로마 가도 발굴 중 그 재료로 사용된 흔적이 발굴되었다. * [[티투스]] 황제는 천성적으로 정이 많고 따뜻한 성품을 지녔던 것으로 유명한데, 즉위 전과 즉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브리타니쿠스를 그리워했던 것으로도 로마인에게 유명했다. 따라서 그가 소년 시절 사망한 친구의 실제 크기 조각상을 만들도록 지시까지 내렸을 당시, 로마인들에게 이런 명령은 놀라운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한다. 반면 티투스는 죽을 때까지 네로라는 인간 자체를 기억에서 잊으려고 했고, 네로를 진심으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티투스가 브리타니쿠스와 유아기 때부터 황궁에서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교육받던 불알친구였던 것도 있고, 네로가 브리타니쿠스를 독살할 때 티투스도 죽을 뻔했던 아픔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고 전해진다. 브리타니쿠스가 저녁 식사 중 독살될 당시, 티투스는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다행히 티투스는 많은 음식을 먹지 않았던 탓에 기절해 의식을 잃었는데, 바닥에 쓰러진 채로 죽어가는 친구를 지켜봤다. 그때 네로는 죽어가던 브리타니쿠스와 의식을 잃어가던 티투스를 가리켜 "간질을 앓고 있어서 그런 거다. 놀라지 마라."고 둘러댔다고. 따라서 성인이 된 이후 티투스는 이 기억을 인생 최악으로 생각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종종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사후에 네로를 사칭하여 반란을 꾀한 인물들이 동방에서 여럿 등장했다. 자세한 내용은 [[테렌티우스 막시무스]] 문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