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동당(영국) (문단 편집) === 노동자의 정계 진출에서 창당까지 === [[1867년]] [[차티스트 운동]]의 결과로 도시 거주 남성에게 보통선거권이 주어지면서 노동자의 정치 참여가 보장되었다. 이들은 노동조합의 보호와 노동자의 처우 개선을 위해 활동하였고, 대개 [[영국 자유당|자유당]]과 연대하여 자유당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하였다. [[1874년]], 광산 노동자 출신의 2명이 자유당-노동자 연대를 통해 의원으로 당선되었고 이것이 영국 노동자들의 정치 참여의 시작이었다. [[1889년]] 비숙련직, 단순노동자들이 주도한 제1차 노동자 대투쟁과 신노동조합운동 이후 기존 노동자들의 정치 활동을 정당으로 묶어내기 위해 [[1893년]] 독립노동당이 창당되어 영국 최초의 노동자 정당이 탄생하였고, [[1900년]]에 독립노동당과 [[공상적 사회주의]]성향의 페이비언 협회, [[마르크스주의]] 성향의 사회민주연맹, 그리고 기존 노동조합이 연합, 노동대표위원회(Labour Representation Committee)라는 이름으로 발족하여 공식적으로 노동당이 시작되었다. 그 해의 첫 선거에서 얻은 의석은 고작 2석.[* 자유당 소속으로 당선된 노동자를 합하면 11명이다.] 물론 자유당과의 연대는 계속 유지, [[사회주의]] 강령은 넣지 않고 기존의 노동조합 보호와 노동자 권리 보장들의 사안에만 집중하였다. 현재의 이름인 노동당으로는 1906년 총선에서 29석을 얻으며 의석수를 크게 늘린 후에 개칭하였다. 이듬해인 [[1907년]] 노동당 소속 국회의원들은 '노동당 의원단'을 구성, 이들이 당 대회에서 의결된 사안의 결정권을 쥐게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는데, 이는 이후 노동당의 오랜 전통인 원내 노동당(중앙당, 우파) vs 원외 노동당(지구당, 좌파) 갈등의 불씨가 된다.[* 물론 100% 이렇게 양분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노동당의 갈등은 대체로 이런 경향을 띄었다.] 1900~1910년대 노동당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통해 약진 의석수를 늘려갔으나 정책에서는 지나치게 우경화, 자유당과 큰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러한 성향은 1910~1914년 벌어진 제2차 노동자 대투쟁에서도 비슷했는데, 노동당은 노동자 대투쟁에 대해 [[양비론]]에 가까운 입장을 취하며 파업 강경 진압에 찬성하였다. ~~'노동'당 맞아?~~ 다만 이때는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폭격기'(진짜 육군 폭격기를 돈 주고 빌려왔다)로 폭격을 하고, 여성과 아이들이 있는 캠프엔 박격포를 쏴서 진압하던 시대임을 감안하면, 어느정도 구체제와 타협할 필요도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