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동당(영국) (문단 편집) === 암흑기 === 1979년 노동당은 '신보수주의'를 내건 보수당의 [[마거릿 대처]]에게 정권을 내주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당내 좌파였던 마이클 풋을 대표로 선출, 토니 벤을 중심으로 한 '벤 좌파'가 부상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당내 우파가 반발, 사회민주당으로 분당, 자유당과 연대하면서 한때 지지율 47%까지 찍으며 대처 정권을 위협하던 기세는 어디가고 지지율이 반토막, 1983년 선거에서 참패, 1918년 이후 최악의 득표수를 기록했다. 심지어 앞서 말한 토니 벤마저 보수당에게 패배했을 정도. 그나마 소선거구제여서 지역기반이 탄탄해서 이정도로 선방했지, 당시 득표율을 노동당 27%, 사민-자유당 연합 25%로 지지율 2위도 위태로웠고 비례대표제였으면 더 심하게 털렸을 것이다(…). 이 참패로 당내 우파인 닐 키넉이 대표에 취임, 노동당은 다시 우경화되었고 벤을 중심으로 한 지역당, 원외 기반의 당내 좌파와 중앙당, 원내 기반의 당내 우파 사이의 알력 다툼도 극심해져 내부 문제도 심각해졌다. 이 와중에 80년대 당내 좌파 [[켄 리빙스턴]]이 [[그레이터 런던]] 시장에 당선되고 지방선거에서 노동당, 특히 당내 좌파가 선전하여 [[런던 코뮌]] 시대가 열리면서 노동당에 빛이 보이는듯 했다. 그러나 보수당 정권의 예산 삭감에 지방 정부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과 중앙당과의 갈등, 결정적으로 대처 정권의 런던 시의회 폐쇄에 속수무책이었다. 거기다 1987년 총선에서도 대표였던 닐 키넉의 삽질로 패배, 런던 코뮌은 실패로 끝났다. 1990년 인두세 문제로 대처가 정계를 은퇴하자 노동당은 92년 총선 승리의 기회를 잡는 듯 했다. 여러 여론조사에서 노동당의 지지율은 보수당을 앞질렀고, 총선 직후의 BBC 출구조사는 [[https://www.youtube.com/watch?v=QyvifYlqihA|노동당과 보수당의 초박빙을 예측했다.]] 그러나 막상 결과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지지율 7%p차이로 보수당의 과반 확보, 노동당의 4연패]]로 나왔다.(…) 선거 막판의 뜬금없는 이슈 갈아치우기[* 국민의료서비스 개편을 반대한 광고가 성공하여 지지율을 10%p 가까이 끌어올렸으나, 계급 선동 아니냐는 비판 하나에 당 지도부가 선거 마지막 주에 이슈를 선거제도 개편으로 바꾼다(…) ]와 주요 지지층인 노동자들이 [[인두세]]를 피하기 위해 선거인 등록을 거부한 것이 큰 패인이었다. 결국 [[반어법|2연패의 빛나는 업적을 거둔]] 닐 키넉 대표는 사임, [[존 스미스]]를 새로운 대표로 선출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