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무현/논란 (문단 편집) === 해외 [[파병]] === 이라크 파병은 [[한미 FTA]]와 함께 소위 자신의 지지세력들의 지지를 잃은 대표적인 정책이었다. 국민의 정부 말기와 참여정부 중기는 한국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반미여론이 거세던 때였고, 노무현의 대통령 당선 역시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 스스로도 그걸 이용했다. 우선 파병 그 자체에 대한 찬반의 근거는 각각 다음과 같다. 보수 세력과 일부 중도 개혁 세력을 주축으로 한 찬성 측의 근거는 한미동맹 체제 강화, 세계 패권을 주도하는 초강대국이자 우방인 미국의 파병 제안을 현실적으로 거절하기 어렵다는 현실론이 주를 이뤘고, 이에 각을 세운 진보적 노선의 반대 측의 근거는 정치이념주의에 입각한 [[반미]]주의와 함께 더러운 침략 전쟁에 힘을 보태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명분론[* 이라크 전쟁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주장은 이라크에 핵무기가 없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한층 더 강화된다.]과 무고한 한국군의 희생 등을 들었다. 국내 외 반전 여론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국회가 파병안을 통과시킨 지 한달여 만에 673명의 비전투병(서희 부대 100명, 제마 부대 573명)을 파병했다. 이라크 치안 문제로 골머리를 싸매던 미국은 다시 한국에게 2차 파병을 요구하였고, 한층 강화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도 긴 고민없이 파병을 결정, [[자이툰 부대]]의 파병을 결정했다. 다만 이 당시엔 치안 악화 문제로 파병지를 고심하던 탓에 늦어졌다. 그러나 이 파병 문제에서 그나마 괜찮게 평가받는 점은, '''파병지 현지 주민들의 민심을 잃지 않는데 노력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자이툰 부대에는 특전사로 구성된 2개 대대와 특공대에서 차출한 1개 대대, 해병대에서 차출한 1개중대, 장갑차중대가 포함되어 있었다. 자이툰 부대는 전투병력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투행위를 하지는 않았다. 또한 [[자이툰 부대]] 장병 도시 재건과 현지인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적극적으로 나서 침략을 도운 국가라는 인상을 남기지 않는데 크게 기여했다.[* 실제로 이라크에서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http://www.bluetoday.net/news/articleView.html?idxno=3957|민사작전의 모델 이라크 파병부대]] 다만 2차 파병이 결정되자마자 벌어진 [[김선일(1970)|김선일 피랍 사태]]에서 우왕좌왕하며 테러범들에게 협상 내내 끌려다니던 모습은 비판받았다. 한편 미국의 부시 행정부 입장에서 보면 이라크 전쟁을 반대했던 유럽 국가들 대부분이 [[NATO]]의 협력에 적극적으로 개입했지만 당시 노무현 정부는 계속 밍기적밍기적 거리는 모습을 보이면서 소극적인 이미지를 보였던 탓에 한국의 대규모 파병이 결정났지만 미국은 시큰둥했다. 더욱이 파병 출정식은 좌파성향의 극렬반대시위 문제로 대내-대외 이미지 (특히 미국)에 부정적인 문제가 더 컸다.[* 반대자들 대부분이 좌파이자 극렬 [[NLPDR|NL]]들이었고 이들의 사상적 마인드는 반국가적 행동의 정당화였기 때문에 대외적으로도 이들에 반대시위는 정치적으로 악영향의 부담이었다.] 게다가 한국군의 임무가 제대로 치안유지 작전수행을 미군 및 NATO군과 협력하는 적극적 모양새가 아니기 때문에 파병에 대한 평가가 절하되기도 했다. (앞 문단과 함께 읽고 해석한다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기에 이라크 내에서의 한국의 이미지가 그렇게 나쁘지 않게 되었지만 미국 및 서방에게는 많은 국가적 신뢰를 잃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파병을 결정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참전하지 않은 것은 결과적으로 이라크에 파병된 한국군이 현지무장세력에 의한 피해를 전혀 입지 않는 수혜도 있었다. 만약 당시 적극적으로 친미를 하는 정권이 집권하고 있었다면 애초에 미국이 요구했던대로 모술에 파견하여 한국군 사상자가 수백명대는 넘었을 수도 있다. 모술은 사담 후세인에 대한 지지도가 높았으며 수니파의 비율이 매우 높아서 2017년 현재 IS의 본거지 역할을 하고 있을 정도이다. 단순히 한미관계만 고려해서 적극적으로 파병하지 않았다고 비판만할 문제는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건어디까지나 한국군이 주둔지역이 쿠르드족 지역이었으니 한국군이 치안활동을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격렬하게 저항하던 레드존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에 확대해석하는 것은 금물이다. 이라크 전쟁은 당시에도 명분의 타당성 때문에 말이 많았고, 결국 부시 정부가 1차로 내세웠던 명분인 '''WMD(대량살상무기)가 나오지 않아''' 현재에는 명분 없는 전쟁이었다는 쪽의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대량살상무기의 증거를 찾지 못한 부시 정부는 결국 도중에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없애 이라크에 [[민주주의]]를 심어주자는 명분을 내세우기에 이른다.] 나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숨긴 대량살상무기를 찾고 후세인의 독재에서 이라크 국민을 해방하여 민주주의를 심어주겠다는 당찬 목적을 가지고 벌어진 이라크 전쟁에서는 부시 정부가 내세운 어떤 목적도 달성되지 못하였고, NATO 회원국, 특히 미국의 경제, 군사적 손실만 가중되었다. 오히려 [[탈레반]], [[ISIL]] 등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 창궐에 도화선 역할을 하여 중동 정세를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어 버렸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선택은 친미국가로서 국군을 파병하여 미국의 체면을 살려주는 한편, 현지에서는 대민 활동 및 치안 유지 등의 비전투 임무에 전념해 이라크 사람들에게 반감을 주지 않았다. 현재에는 '너희들이 쳐들어와서 나라가 엉망이 되었다.'는 이라크 국민, 중동 사람들의 비난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다소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미국의 편을 들어주되, 현지의 반감을 사지 않는 한편 이후의 면죄부도 마련해 둔 좋은 판단이었다고 평가할 여지가 있다.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로 빛이 많이 바랬지만, 아프가니스탄 파병 또한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주민들에게 평가 받았다고 한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187460| 아프간 파병 동의부대, 10만명 진료 대기록 달성]] 노무현 임기 말에 보낸 또 하나의 파병 태양의 후예 [[http://www.sedaily.com/NewsView/1L2IXPB00Q|신이 주신 특별한 선물 레바논 동명부대]] "해당 지역 민심을 기반으로 움직인다"는 게릴라전의 기본을 깨뜨려 버리는 전략이라 UN 평화유지군 내에서도 인정하는 듯. [[태양의 후예]](드라마)의 모티브가 이라크 파병이라고 한다.[* 태양의 후예(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가상의 나라 우르크는 이라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