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노비 (문단 편집) == 주요 인물들 == * [[김준(고려)|김준]] * [[반석평]] * [[안용복]]: [[https://www.joongang.co.kr/amparticle/3261947|#]] * [[정명수]]: 조선에 큰 해악을 끼치긴 했지만, 정명수 개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출세한 것은 맞다. * 이상좌 * [[이만강]]: 말년에 신분을 속인것이 들통나 결국 유배되었다. * [[이의민]] * [[장영실]] * [[정충신]]: 17세 때, 권율의 노비로 들어갔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혼자서 평양에 피난을 갔던 선조 임금을 찾아가 권율의 장계를 전달했다. 일본군 점령지를 혼자서 들어간 공로를 인정받아 선조 임금으로부터 면천을 받았고, 이후 부원수와 경상도 병마 절제사까지 지냈다. * 정막개(鄭莫介): 원래는 의정부(議政府) 관아의 관노비였는데, 1513년 박영문과 신윤무가 반역을 모의했다고 조정에 고발하여 [[중종]] 임금으로부터 절충장군(折衝將軍)과 상호군(上護軍)이라는 정3품 벼슬을 받았다.[[http://sillok.history.go.kr/id/kka_10810022_004|#1]], [[http://sillok.history.go.kr/id/kka_10810025_001|#2]] * 한금 * 정학수: 본래는 [[성균관]]에서 일하던 노비였으나, 어깨 너머로 배운 학문 실력이 굉장히 뛰어나서 양반들조차 그를 정선생이라 부르며 존중했다. 정학수는 나중에 서당을 열고 훈장이 되었는데, 그한테 학문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요즘으로 치면 일종의 스타 강사였던 셈.[[https://entertain.v.daum.net/v/20140709151106803|#1]], [[https://entertain.v.daum.net/v/20161127114503853|#2]] * 임복(林福, ? ~ ?): 조선 성종 임금 무렵의 사노비로 1485년 흉년이 들자 같은 해 7월 24일 2천 석의 곡식을 나라에 바친 대가로 노비 신분에서 풀려났고, 이에 1천 석의 쌀을 더 바치자 그의 아들 4명도 모두 노비 신분에서 풀려났다. [각주] [[분류:1894년 폐지]][[분류:동음이의어]][[분류:노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