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농업 (문단 편집) == 역사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ClaySumerianSickle.jpg]] 흑점토를 구워서 만든 [[수메르]]의 돌 낫(기원전 3000년 전 추정). >농경은 신석기시대부터 시작되지만, 잡곡을 재배하는 밭농사였습니다. 청동기시대에 본격적인 벼농사가 이루어지면서 밭농사와 함께 중요한 생활 기반이 되었습니다. 농사를 짓기 위해 마을을 만들고, 마을 내에 무덤·생산과 저장 시설·의례 공간 등 기능에 따른 공간을 구분해서 가꾸었습니다. >농사를 짓고 마을을 세우기 위해 많은 나무가 필요했고, 나무를 정교하게 가공할 여러 도구를 개발했습니다. 나무를 베고 다듬기 위한 조갯날도끼, 자귀, 대팻날, 끌 등이 대표적인 도구입니다. 여러 목공구가 만들어지면서 나무 가공 기술은 더욱 발전하고, 다양한 분야의 생산력도 증가했습니다. >---- >[[국립김해박물관]] 공식 소개 문구 마빈 해리스의 문화 3부작에 따르면, 농업의 역사는 [[신석기 시대]] 이전부터 이미 [[화전(농업)|화전]]과 비슷하게 땅을 정리하여 식물이 자라기 좋도록 관리하는 형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씨앗을 뿌리는 과정만 없을 뿐 사실상의 농업이나 마찬가지. [[수렵]]을 하며 떠도는 [[호주]] 원주민에게서도 비슷한 양태를 볼 수 있다. 본격적인 농업은 기원전 9050년 전 [[레반트]] 지역에서 최초로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텔 아부 후레이라 (Tell Abu Hureyra、تل أبو هريرة) 유적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일명 '''신석기 혁명'''이라고도 불리는 농경 혁명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빙하기]]가 끝나 당시 식량원이었던 상당수의 거대 동물이 멸종된 것이 한 원인으로 추정된다.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서는 집단 노동이 필요하였기에 씨족 중심의 정착지([[마을]])가 발전했으며, 이후 잉여 식량을 저장하는 기술을 터득하고 이러한 지혜가 확산되며 인구가 증가하였다. 잉여 식량의 축적은 사유재산의 개념을 발달시켰으며, 권력층은 생산물을 토대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계급이 탄생하였다. 이에 따라 [[여성]]도 부계 안에 포함, 동시에 상대의 재산을 약탈하기 위한 무리나 부족 간 전쟁이 빈번해졌으며, 각종 제도를 수비하는 과정에서 군사 조직과 더불어 [[국가]]의 기틀이 마련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