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능력주의 (문단 편집) === 부작용 === > 능력주의 사회에서는 연대의식이 없다. 연대 의식이라는 개념 자체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고학력 [[기술관료]]들의 이데올로기와 모순되기 때문이다. 차차 알게 되겠지만 상위의 전문직 종사자들은 서로를 매우 존중한다. 나는 이를 <동업자 간의 예우>라고 부를 참이다. > > 하지만 같은 전문직 종사자이면서 상대적으로 덜 부유한 구성원들 - 정교수가 아니라는 이유로 학계에서 배척당하는 비상근 조교수들이나 해고된 동료들, 심지어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학생들 - 에 대해서는 어떠한 연민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이 보기에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이 팍팍한 삶을 사는 것은 놀랍거나 불공평한 일이 아니다. 세상일이 원래 그런 것이다. >---- > - 토머스 프랭크, 민주당의 착각과 오만, p.50 > 장은주 교수는 [[문재인 정부]]가 여기저기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했지만,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에 대해서는 입을 닫았던 사실을 들추어낸다. [[전교조]]가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전교조가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한 이유는 뭘까? 한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단체임에도 전교조는 기간제교사의 정규직화를 반대했다. 장은주 교수는 정규직 교사들이 교원 [[임용고시]]를 통과했다는 자긍심과 자기 정당화에서 이유를 찾고 있다. '''"우리의 권리는 임용고시라는 공적인 절차를 통했기에 정당한 것이다."''' >---- > -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37694?no=237694#0DKU|불평등을 포장하는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 [[프레시안(인터넷 신문)|프레시안]] > "Many of the factors that separate winners from losers are '''arbitrary''' from a moral point of view." >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요소들은, 윤리적 관점에서 보았을때, '''제멋대로'''('''arbitrary''')이다. > >---- >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p.51 > "Allocating jobs and opportunities according to merit does not reduce inequality; it reconfigured inequality to align with ability. But this reconfiguration creates a presumption that people get what they deserve. And this presumption deepens the gap between rich and poor." > 직업과 기회를 merit(성적)에 따라서 분배하는 것은 불평등을 감소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불평등을 merit(성적)에 맞추어서 정렬시킬 뿐이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받을만한 걸 받았다고 추정한다. 그리고 이 추정은 [[양극화|부의 양극화]]를 넓힐 뿐이다. > >---- >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p.117 > "The meritocratic ideal is not a remedy for inequality; it is a justification of inequality." > 능력주의는 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이 아니다; 그것은 불평등을 [[원천봉쇄의 오류|정당화]]하는 수단일 뿐이다. >---- >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p.122 >…소수집단 우대정책에 찬성하는 학생이든 반대하는 학생이든, 자신은 죽어라 노력해서 하버드에 왔으며 따라서 자신의 지위는 능력으로 정당화된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들이 운이나 기타의 통제 불가능 요인으로 입학한 게 아니냐는 말에는 거센 반발이 일었다. >----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원제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 2020. 함규진 역.] *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선천적인 문제로 인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능력주의가 불합리한 이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학교를 다닐 수 없을 만큼 빈곤한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나, 비장애인과 같은 일상생활을 누릴 수 없을 만큼 심각한 장애를 안고 태어난 아이는 능력주의에서 강조하는 소위 노력이나 도전을 할 기회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다. 이들에게 부유층, 비장애인들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면서 능력이 부족한 건 이들 자신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들에게 억울한 일일 것이다. 어느 나라나 부모의 경제력과 자녀의 성적이 비례하며, 한국의 경우 1990년대 이후 입시제도가 학생들의 학습부담을 줄여준다는 명분아래 고학력-고소득 부모를 가진 학생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개편되어 왔다. 서울대 입학생들중에서 서울강남과 특목고, 자사고 출신이 매우 높은 비율이라는 이미 통계로 명확하게 드러나 있다.[[https://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12122938947|강남 살아야 '서울대' 더 잘간다? 이유는…]] 즉 '''공정한 출발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이클 샌델]]은 2020년 9월 출판한 <[[공정하다는 착각]]>[*원제1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에서 이를 통렬하게 비판했으며, 능력주의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계층에게서 [[트럼피즘]]이 싹텄다고 역설한다.[[https://www.chosun.com/culture-life/culture_general/2020/12/09/KVHAGT54NFEXJIZK2SZLLO54AU/|#]] 강경하게 비판하는 쪽에서는 '''"21세기판 [[우생학]]"'''이라는 혹독한 평가를 내리기도 한다 . [[https://m.hani.co.kr/arti/culture/book/916274.html#cb|#]], [[https://m.etnews.com/20210326000138|#]], [[http://m.dongascience.donga.com/news.php?idx=43182|#]] * 단어 'Meritocracy' 의 원작자 마이클 영이 지적했듯이, 실제로는 능력이 '세습'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고 역시 세습제처럼 계층이 고착화되며 계층을 정당화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https://www.rnz.co.nz/news/the-wireless/373065/the-pencilsword-on-a-plate|관련된 만화: on a plate]], [[http://snsenglish.blogspot.com/2015/06/on-plate.html|번역본]] * [[과열 경쟁]]을 유발하여 사회가 피폐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마이클 샌델 하버드 교수는, 능력주의사회에서 과열 경쟁을 겪은 청소년들은 승리자와 패배자 전부 고통을 겪는다고 하였다. 승리자들은 다른 사회 구성원들에 대한 자만심(hubris)과 신경증을 동반한 정신적 장애를 얻는 사례가 증가하고,[* 샌델은 자신의 저서에서 캘리포니아 매린카운티에서 근무하는 심리학자 매들린 러빈(Madeline Levine)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다. 러빈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의 부유한 부모들 아래에서 자란 (학업적으로) 아주 성공적인 청소년들이, 심리적으로 문제가 많다는 것을(extremely unhappy, disconnected, and lacking in independence) 발견했다. 또한 이들은 주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 의지한다고(... They are overly dependent on the opinions of parents, teachers, coaches, and peers and frequently rely on others...) 하였다. 이는 즉, 시스템의 승리자, 혹은 해당 시스템 밑에서 경쟁하는 사람들이 능력주의에서 비롯되는 과잉경쟁으로 인해 정신병을 얻게 된다는 것을 시사한다.] 패배자들은 절대로 극복할 수 없는 억울함(resentment)[* 이 부분이 특히 중요하다. 완벽한 능력주의 사회 밑에서 패배한 사람들은 배경, 성별, 인종, 종교 및 그 어떤 외부요인에도 자신의 패배를 책임지울 수 없고, 그러므로 자신의 사회적 위치는 오롯이 자신의 능력의 수준 때문이므로, 이는 곧 그 어떤 걸로도 극복할 수 없는 억울함과 분함으로 표출된다고 하였다.]과 사회 엘리트들에 대한 적대심을 갖는다고 비판하였다.[* 살벌한 입시경쟁에서 패배한 일반대중들의 엘리트에 대한 적개심이 한국사회에서 [[반지성주의]]를 불러왔다는 분석도 있다.] 결과적으로 승리자와 패배자, 두 그룹 모두에게 가해지는 이런 혹독한 영향은 사회 전체의 화합(reconciliation)과 결속(solidarity)을 파괴하므로, 그 사회는 결국 파멸을 향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능력주의에 대한 마이클 영과 마이클 샌델 교수의 비판이다. 경향신문 최민영 경제부장 역시 능력주의가 공동체를 갈라놓는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2101110300045|#]] * 대한민국의 [[N포세대]], 미국의 안티 워커(Anti Worker), 중국의 [[당평]], 유럽의 [[1000유로 세대]]나 [[이케아 세대]], 일본의 [[사토리 세대]] 등 경쟁을 포기해 버리고 저소득에 안주하거나, 스스로 백수가 되어버리는 세대가 나타나 사회 활력을 갉아먹고 사회 역동성을 저해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소확행]]' 관련 비판도 있다. * 능력만을 지나치게 우선시한 결과는 능력이 우월한 사람은 어떤 짓을 저질러도 정당하고, [[약한 것은 죄악|능력이 열등한 사람은 어떤 험한 꼴을 당해도 마땅하다]]는 [[이기주의|이기적인 사고방식]]으로 변질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능력의 차이와 상관없는 차별마저도 억지로 능력과 연관지어 정당화하는데 악용될 수 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선 [[학벌]]과 결부되어 최상위계층의 엘리트의식이 훨씬 강화되는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리고 차별받는 사람들 스스로조차 이 능력주의의 환상에 빠져서 또다른 차별을 행하는,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심지어 능력이 우월한 엘리트조차 능력에 한계가 있는 신체를 혹사하는 피해자가 될 수가 있다. * 능력을 측정하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에 맞춰 공동체의 구성원을 교육시키는 시스템, 그리고 그렇게해서 능력으로 '선별'된 구성원이 정작 자기 활동분야에서 터무니없이 무능해지거나, 어리석은 선택을 할 수 있다. 샌델은 미국의 능력주의 시스템에서 가장 인증된 학벌을 지닌 구성원들로 구성되었던 [[존 F. 케네디|케네디 행정부]]와 [[버락 후세인 오바마|오바마 행정부]]의 사례, 그리고 잘 훈련된 엘리트야말로 그 분야의 최고일 것이란 믿음의 반례로 [[FDR]]의 행정부를 든다. 당대 최고의 명문대학 출신의 엘리트[* 케네디 대통령은 정치 명가 케네디 가문에서 태어났고, 하버드를 나왔다.]들로 내각을 구성했던 케네디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 전까지 미국이 치른 최악의 전쟁이라는 [[베트남 전쟁]]이라는 수렁으로 미국을 빠뜨린 전력이 있고, 오바마 행정부[* 오바마 본인은 [[자수성가]]한 정치 엘리트로 자기 능력으로 하버드 로스쿨에 입학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다.]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의 [[월가]]에 사실상 면죄부를 던져 줌으로서, 지지자들을 큰 실망으로 빠뜨린데다, 월가의 [[도덕적 해이]]를 사실상 방기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 외의 대외 외교에서 초래한 여러 결과들 또한 오바마의 측근들이 [[그들만의 리그]] 혹은 대학에서 가르치는 좁은 학문적 틀 안에서 세상을 보면서 정작, 세상 돌아가는 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고 샌델이 비판한다. 반면 전혀 엘리트라고 보기에는 힘든, 지역 공무원이나 평범한 중산층 출신으로 행정부를 구성한 FDR의 행정부가 얼마나 유능했는지를 상기하며, 대학 등을 통해 훈련된 엘리트가 유능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신랄하게 비판한다. * 능력주의 엘리트를 선별하는 시스템 또한 사회적 기득권층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마디로 능력주의 시스템마저도 세습의 도구로 전락한다. 한국에서는 상류층이나, 이미 사회적으로 어느정도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자식들을 명문대학에 입학시킴으로서 실질적으로 부와 사회적 계급을 세습한다는 비판이 나오며, [[아메리칸 드림]]의 나라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심하다. [[인종차별]]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최고의 [[인맥]]지향사회라서 인맥없이는 어디 진학하기도, 취직하기도 힘든 것이 현실이다. 샌델 또한 언급하지만 입시 컨설턴트 윌리엄 릭 싱어의 부정입학 스캔들[* 몇 천만 달러에 해당하는 기여입학 비용에 비해 터무니 없이 싼 가격(!)인 '''몇 백, 몇 십만 달러'''로 상류층이나 부유층 자녀들을 명문대에 부정입학을 알선해서 발칵 뒤집어진 사건, 몇십명이 줄 구속을 당했으며 싱어의 고객은 배우, 지역 사업가, 사모펀드 매니저 등으로 매우 다양했다.], 한국에선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정유라]]의 악명높은 이화여대 부정입학 등으로 인한 사건들이 끊이질 않는다. 결국 처음에는 능력 위주로 어느 정도 선별이 진행되었더라도 해도, 한 사회가 지속되고 그 안의 엘리트 선별 시스템이 고착화되면 그 시스템은 늦든 빠르든 기득권층에게 분석되어 그들의 세습을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다는 뜻이다. 멀리로 보면 조선시대의 [[과거 제도]]가 그랬으며, 기술과 산업의 수준이 높아지고 선진화되었다는 현대 문명 안에서 조차도 결코 이러한 현실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다. 통계를 보면 2019년 기준 [[SKY(대학교)|SKY]]의 재학생들의 41%가 고소득층의 자녀들이며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의 자녀들은 5.05%밖에 차지하지 못한다.[[https://www.donga.com/news/Society/article/all/20190927/97611929/1|#]] 또한 2020년 [[SKY(대학교)|SKY]] 신입생들의 55%가 고소득 가구 자녀이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965412.html|#]] 이렇게 고소득층으로 편향된 명문대 학생들의 비율은 결국, 높은 학업성취도를 위해선 '환경'의 요소가 개인의 노력 혹은 의지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 능력 검증에 한계가 있다. 시험으로 능력을 검증하려면 객관화해야 한다. 그런데 시험대상이 주관적인 존재라면 시험기준을 마련하기가 어렵다. 능력을 검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능력주의를 말하는 것은 허구라고 볼 수 있다. * 능력으로 성공하는 것은 결국 '''[[운]]'''에 좌우된다. 특히 [[재능]], [[노력]]이 출중하다 한들 그것을 알아주고 커다란 보상을 해주는 사회에서만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리오넬 메시|메시]]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호날두]]는 [[축구]]로 엄청난 돈과 명성을 얻었고, 꼭 1인자가 아니더라도 톱클래스 선수들은 어마어마한 돈을 벌지만, 돈이 안 되는 비인기 스포츠라면 남이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 1인자라 한들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하게 살 수 밖에 없다. 태어난 곳도 중요한데, 축구 인프라가 충분한 유럽이나 아르헨티나에서 자란 이들에 비해, 축구 인프라가 부족한 곳이나 축구가 인기 없는 국가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재능을 펼칠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이다. 이외에도 재능을 완전히 펼치기 전에 선수생명이 끝장날 정도의 부상이나, 사고 후유증, 질병에 걸리지 않는 운,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사회가 부패하지 않아 자신의 재능이 가려지지 않을 수 있는 운 등 수많은 행운이 겹치고 겹쳐서 얻은 것이다. 애초에 재능과 노력도 운일 수 있다. 재능과 끊임없이 노력하는 자질조차도 그 사람의 자격에 대한 보상으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운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 반대로, 능력이 미달하는 자를 그 집단이 어떻게 할 것이냐도 능력주의의 중요한 문제다. 경제논리와 능력주의에 입각한 회사라면 직원이 능력 없으면 해고하거나, 구매능력이 없는 고객은 무시하고 상품,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다. 사실 그것조차 무조건 기업에 이익이라고 할 수 없는데, 그 주체가 만약 국가라면? 장애인이나 사회부적응자가 국가 이익에 해가 된다고 국적을 박탈하거나 불이익을 줄 것인가? 세금을 안냈다고 국적을 박탈할 것인가? 아니 국가가 기업처럼 자의적으로 국민을 해고(국적박탈)하는게 가능한가? 같은 국민입장에서 무시무시한 선택을 강요당하는 일이 능력주의사회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 능력주의와 비슷한 현상(마이클 영이 주장하는 경쟁을 통한 세습)은 고대로부터 흔히 있었고,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익숙한 편이다. 바로 '''[[조선]]의 [[양반]] 계급이 바로 이렇게 형성된 계층'''이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조선에 노비를 제외한 [[양민]]과 [[양반]]에 법적인 구분은 없으나, 현실적으로 양반 자제가 아닌 이상 합격률 '''1만 대 1'''의 극악한 확률을 뚫고 과거에서 급제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고,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초창기 귀족층이었던 [[신진사대부]]의 후손들이 자연스럽게 명문가이자 "[[사족]](士族)"을 형성하며 "(과거제도라는) 시험을 통한 신분제"를 형성하는 데 성공했다.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쪽의 주장은, '''능력주의가 공정하다는 것이 큰 착각'''이라는 뜻이다. "공정한" 능력주의 사회에서 자연적 귀족들로 태어난 사람들은 능력주의 시스템 밑에서 공정하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시스템의 패배자들은 "정당한" 경쟁에서 패배했으므로 능력없는 패배자들에 대한 멸시 또한 그 자체로 "정당화" 된다. 더 나아가서 이 정당화 과정은 결국 승자들의 패자 멸시를 부추기는 도구로 사용되고, 마지막에는 민주주의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한, 동료 시민들과의 조화와 결속을 끊어놓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961853.html|#관련기사1]] [[https://www.pressian.com/pages/articles/2021012017074039223|#관련기사2]] 한국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성적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 있어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능력주의'를 주제로 하는 어떤 철학적, 사회학적 학술성과로 곧장 이어지진 못했다. 한국사회에서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이 주목받은 것은 2015년 번역출판된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0268648|능력주의는 허구다]][*원제2 - The Meritocracy Myth]>부터라고 볼 수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사회학과의 스티븐 J. 맥나미, 로버트 K. 밀러 주니어 두 교수가 공동집필한 이 서적은 미국사회의 심각한 불평등의 원인을 능력주의 '신화'에서 찾고 있다. <능력주의는 허구다>의 출판 이후 최근 몇년간 마이클 영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7192550|능력주의]][*원제3 : The Rise of the Meritocracy (1958년)]>,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 대니얼 마코비츠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4539602|엘리트 세습]][*원제4 : The Meritocracy Trap: How America's Foundational Myth Feeds Inequality, Dismantles the Middle Class, and Devours the Elite. (2019년)]>, 하승우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4488289|신분피라미드 사회]]>, 박권일 외 공저한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6902815|능력주의와 불평등]]> 등 능력주의를 비판하는 서적들이 국내 출판계에서 쏟아지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