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운폴 (문단 편집) == 실제와 다른 점 == 이하의 출처는 ≪히틀러북(The Hitler Book)≫[* 헨릭 에벨레 & 마티아스 올 편저. 소련군이 포로로 잡힌 히틀러의 부관 하인츠 링게와 오토 귄셰와 기타 총통사령부의 인물들의 취조를 취합한 NKVD 비밀문서 등을 바탕으로 소련 해체 후 비밀문서가 공개되고 편집되어 출판되었다.]을 주로 참조했고 영화 원작인 요아힘 페스트의 책과 [[트라우들 융에]] 회고록 기타 다른 서적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 제3제국의 중심에서≫, 이언 커쇼의 ≪히틀러Ⅱ(몰락)≫ 내용을 일부 참조했다. 위에서 서술한대로 요아힘 페스트와 타자수 [[트라우들 융에]]의 책을 비롯해서 여러 증언들과 기록을 참고했기 때문에 실제 역사와 비슷하지만 영화로 스토리를 만들어야 되기 때문에 몇몇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 히틀러의 대사 중에선 시간상으로 전후가 엇갈린 것도 있고 영화 몰락 시기가 1945년 4월 말이 아닌 그 이전에 한 발언도 상당수다. 다른 인물들의 대사도 마찬가지다. 이외에 다른 점을 적자면, * [[마르틴 보어만]]이 회색 [[슈츠슈타펠]] 제복을 입고 나온다. 실제론 보어만은 SS 제복을 입지 않았고 황색의 나치당원 제복을 입었다. 애초에 보어만은 SS의 힘러와 서로 적대하는 관계에 있었다. 영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오류.[* 실제 [[마르틴 보어만]]의 사진만 봐도 구분이 되는데 이상하리만큼 영화에서 많이 보이는 오류이다. 다운폴과 같은 내용을 다루는 [[안소니 홉킨스]] 주연의 1981년작 더 벙커(The Bunker)에서도 보어만은 SS 제복을 입고 나오며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도 잠깐 등장하는 보어만은 SS 제복을 입고 있다.][* 다만 마르틴 보어만은 1940년 3월에 SS 상급집단지도자 계급으로 승진한 전력이 있다. [[http://www.kehlsteinhaus.com/the-road.html]]] [[파일:마르틴 보어만 친위대 대장.jpg]] 다만 일부 사진에서 친위대 제복을 입은 모습이 꽤 많이 있다. 보어만은 전쟁 말기 사진에는 대부분 슈츠슈타펠 제복을 입은 모습이 많이 있으므로 전쟁 말기를 다룬 영화인만큼 보어만의 고증은 틀리지 않았다. * 아르투어 악스만(히틀러에게 공을 세운 소년들을 소개하는 사람)은 전쟁 중 부상으로 오른팔을 절단해서 영화처럼 [[나치식 경례]]를 못한다. 이미 알려진 걸 뺀 것은 감독이 영화 전개상 불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뺀 듯 하다. * 슈페어와 히틀러의 마지막 만남은 영화에서처럼 극적인 장면은 없었다. 슈페어의 자필 회고록에서도 슈페어가 담담하게 파괴정책을 수행하지 못했다고 보고하고 히틀러는 건성으로 듣기만 하고 끝난다. 영화에서처럼 슈페어가 '''그건 독일 민족을 죽으라고 하는 겁니다''' 하고 대드는 일은 없었다. * 히틀러의 주치의는 영화에서 나오지 않는 [[테오도어 모렐]] 교수이다. 그는 베를린이 포위되기 전에 탈출하므로 등장이 없는 것은 맞지만, 언급조자 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방공호에서 에바 브라운조차 종종 '이러시다가 중독되시겠어요!' 라고 우려를 표한 적이 있었고, 히틀러도 '내가 약에 내성이 생겨서 청산가리만으로는 빨리 안 죽을 수도 있으니 권총도 함께 쏴야겠다' 는 식의 뉘앙스의 말을 한 적도 있다. 작중에서는 슈툼페거나 베르너 하세가 주치의로 나오나 실제로는 모렐 교수가 처방해준 총통 전용약(각성제)을 주사해주는 역할이다. * 벵크와 슈타이너 부대를 부른건 히틀러가 아니다. 카이텔과 크렙스 부르크도르프가 작전을 지휘했다. * '''패러디로 유명한 히틀러가 열받아 날뛰는 장면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에 대하여 논란이 있다.''' 베를린 지도를 놓고 크렙스가 설명하는 건 4월 23일 작전회의 장면인데 영화에서보다 실제보고가 희망적이었다. 작전회의 중 히틀러가 폭발했다는 일부 증언은 신빙성이 낮고 연출이다. 4월 24일에 슈타이너가 공격을 망설이자[* 영화상에선 아니고 종전 후에 힘러의 지시로 밝혀진다. 친위대 병력을 보존해서 항복협상에 써먹으려고 공격을 방해함.] 회의 중에 욕을 퍼붓고 페겔라인을 직접 파견한 적은 있다. * 1973년 발표된 요아힘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에선 영화상 연상되는 장면이 있다고 나온다. 2000년에 나온 ≪히틀러≫의 저자 이언 커쇼의 책에서도 비슷한 장면은 있지만 평소 히틀러가 화내는 장면에 익숙한 장성들도 놀랄 정도로 더 화내는 편이었다고 서술했고. 멘붕했다기보다는 끝까지 싸우다 총리공관 계단에서 전사하겠다고 길길이 뛰었다고 한다. [[트라우들 융에]] 회고록에서는 4월 22일 그날 '히틀러의 고함소리와 소련 대포소리로 뒤덮였다. 회의실에서 나온 장군들의 얼굴이 붉어졌다'라는 묘사는 있었지만 금방 히틀러가 회복해서 차분하게 냉정을 되찾았다는 내용이다. 영화상처럼 멘붕은 아니라는 서술... 결론적으로 영화상 장면에 대해선 증언이나 기록이 엇갈린다. 다만 히틀러북의 증언자인 하인츠 링게, 오토 귄셰, [[트라우들 융에]]는 직접 목격자이고 1차 사료임을 감안하고 요아힘 페스트의 저작(90년대에 개정판이 나오긴 했다.)이 [[동독]], [[소련]] 등 동구권 문서가 공개 전에 발표된 걸 감안함. * 히틀러가 카이텔을 외부로 보낸 명령은 독단적으로 내린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카이텔이 히틀러를 직접 설득해서 히틀러 대신 벵크 부대를 격려차 나오려 했다. 히틀러는 '귀관은 여기서 지휘해야지 어딜 간다는거요?' 라면서 거부했지만 나중에 보내주는데,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 당시 카이텔 덕분에 목숨을 건졌기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카이텔과 그의 가족들을 보내준 것이다. * 히틀러가 벙커 속 여인들 ([[트라우들 융에]]를 포함한 4명)에게 [[청산가리]]를 나눠준 것은 확실하게 자살하라는 뜻이었다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데 정작 융에의 회고록을 읽어보면 표현이 중의적이어서 확실하지는 않다. 오히려 책에선 히틀러가 그녀들을 위해 배려차 독약을 준 느낌이 들기도 한다. 베를린에 남아있는다면 소련군에게 강간당할 가능성이 높을 테니...[* 나치 독일은 특유의 인종론에 기반해 "더러운 슬라브 민족에게서 독일 여자를 지키는 것" 에 상당히 예민했다. 대표적으로, 포위된 [[스탈린그라드]]에서는 탈출용 수송기가 모자란데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직언으로 여성 간호사들과 군무원들은 전원 철수시켰다. 그리고 실제로도 베를린에서만 10만명, 독일 전체에서는 200만명의 독일 여성들이 소련군에게 강간당해서 1945~1946년의 신생아들 중 3.7%가 독소 혼혈아였고 나이도 8세 소녀부터 80세 노인까지 가리지 않고 벌어졌다.(서독 수상이었던 헬무트 콜의 영부인과 그 어머니도 이 때 피해를 입었고 그 후유증으로 고생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묵인했던 소련군 사령부도 너무 지나치다고 여겨서 강간범들을 피해자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처형하거나 굴라그로 보냈을 정도다.] * 페겔라인이 체포되는 건 4월 27일 힘러가 배신을 때리자 히틀러가 격분해서가 아니고 다음 날 부관 오토 귄셰가 체포하라고 건의하고 나서이다. 또한 영화에서처럼 파티장에서 술먹고 퍼자다 끌려나와 처형된게 아니고 자기 아파트에서(역시 술에 취해서) 체포된다. 다음날 히틀러와 에바 브라운의 결혼식이 진행될때 약식 군사재판이 열렸고 베를린에서 탈출 시도한 것을 순순히 자백... 직후 총통 벙커 근처에서 처형된다. 또한 영화에서처럼 에바 브라운의 간청을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하고 강등후에 군법회의 회부하고 몽케 부대로 복무시킨다고 달랬다. * 괴벨스 부부가 자살한 곳은 실제로는 벙커 내부다. 아이들까지 동반자살을 종용한 것은 괴벨스가 아니라 아내 마그다였으며, 괴벨스는 마그다와 아이들을 베를린에서 탈출시키려고 했으나 마그다가 반대했고, 마그다 괴벨스가 의붓아들 하랄트 크반트에게 보낸 편지의 문구 중 '''제3제국이 없는 세계는 의미가 없으니 아이들에게 그런 세계에서 살지 않게 하겠다'''라고 쓴 것이 결정적인 증거다. 괴벨스는 담배 한 대를 피우고 귄셰와 악수를 한 다음 방으로 사라졌다고 한다.[* 영화상에선 밖에서 먼저 부인을 쏘고 자살하자 총통 벙커 옆에 있던 군인들이 바로 휘발유를 끼얹으러 달려온다. 실제로 사용한 연료는 히틀러처럼 [[벤젠]].] * 영화상에서는 5월 1일 밤에 총통벙커의 잔존 병력들이 탈출을 위해 나가자마자 크렙스와 부르크도르프 장군이 자결한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이들은 다음날인 5월 2일 새벽 1시경에 자결했다고 한다. * 외교관 헤벨이 자살한 시점은 도망다닐 때가 아니다. 포로로 잡히고 무장 해제하려 할때 권총을 빼들고 자살한다. 히틀러의 신임도 영화에서 보단 떨어졌다고 한다. 1944년 9월쯤 영국(연합국 전체가 아닌) 단독 협상 시 강화협상 선결 조건으로 히틀러 퇴진이 우선조건으로 거론되었다는게 알려져서 아예 찬밥이었다고 한다. 물론 웬만한 신임이 아니었으면 총살이었겠지만. * 주인공 격인 [[트라우들 융에]]는 영화에서의 결말처럼 기적적으로 탈출하지는 못했다는 의혹도 있다. 포로로 잡혀 [[강간]]당하고 소련군 고위장교의 현지처로 수 개월 동안 감금되었다는 말이 있다. 물론 확인된 사실은 아니고 그렇다는 주장도 있을 뿐이다. * 이는 헨릭 에벨레, 마티아스 올 편저의 ≪히틀러북≫, 미국의 저널리스트인 제임스 오도넬의 책인 ≪벙커(The Bunker)≫에 등장하는 내용으로, 융에의 회고록인 ≪최후의 시간까지(UNTIL THE FINAL HOUR)≫의 내용과는 상반된다. 융에의 회고록에 따르면 융에는 동료들의 재촉을 받고 착용하고 있던 헬멧과 군용 자켓을 벗어던지고 러시아군들이 항복을 하는 독일군들에게 담배와 슈냅스를 나눠주고 무기를 수거하는 혼란한 상황을 틈타 무사히 이를 벗어났다. 이후 연합국 지역으로 접근을 시도하다 러시아군에게 생포되었지만 큰 탈 없이 억류생활을 하다 미군에게 인계되었고 곧 석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융에가 2002년 타계한 현재 정확한 진실은 알 수 없다. * 이 영화를 봤던 생존자 중 한명인 로후스 미슈는 융에가 무사히 탈출하는 결말을 보고 분노하여 '이건 리얼리티가 아니라 할리우드 드라마다!'라고 깠다. 다만 [[트라우들 융에]]가 소련군 장교에게 폭행, 강간당하고 억류되는 장면같은 걸 넣었으면 그쪽이야말로 자칫 이 영화의 맥락에서 너무 튀는 드라마틱하고 불필요한 묘사 논란, 그리고 [[소련군]]을 깎아내리는 거라며 까였을 게 뻔하다.[* 수많은 친독 서적과 매체에서, 혹은 알고 있을 거라 생략하고 넘어간 저작물에서 [[피장파장의 오류|소련의 보복 행위를 만행이라 까면서 정작 먼저 더 끔찍한 침략과 전범행위를 한 독일을 물타기]]하거나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나 저러나 달라질 건 없었을 듯. 애초에 강간당했다는 위의 주장은 증거가 있지도 않으니 굳이 논란을 만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융에가 결국 그 벙커의 인물들 중에서 무사히 살아남아 보는 자, 즉 이 영화의 근거이자 시대의 증인이 되었다는 점이니까. * 소련군의 경우 바실리 추이코프의 머리 모양은 극중에서 우측(오른쪽) 가르마를 탄 것으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머리를 모두 올린 모습으로 보인다.[[https://cdn4.static.ovimg.com/m/02s431/?width=1200]] [* 실제 머리 모양은 극중 추이코프 본인이 옷장 안에 집어넣은 마트베이 블란테르나, 추이코프의 오른편에 배석한 부관과 유사하다. 굳이 당대 소련군 장성 중에서 극중 추이코프의 이미지와 유사한 사람을 찾자면, 바실렙스키가 있다.] * 한국어 자막으로는 트라우들 융에를 지칭할 때 "융에 양"이라고 하는데 이는 틀렸다. 그녀의 원래 성은 훔프스이고 SS 장교 한스 융에와 결혼한 바 있는데 영화에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사실대로라면 융에 부인이 맞는 표현이다. 다만 영화의 배경인 1945년에는 이미 남편 한스 융예는 전사한 뒤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