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키아 (문단 편집) === 105년 ~ 275년, 로마 제국, 다키아 속주 === 제 1차 제 2차 다키아 전쟁을 통해 로마는 이 지역에 다키아 속주를 세우고 데케발루스 휘하 기존 다키아 왕국의 지배층과 민족들을 완전히 말살 초토화 시켰으며 이후 이 지역 주민들은 로마 제국 전역에서 모여든 로마인들로 채워지게 된다 기존에 로마 제국이 피정복민들에게 보였던 관대한 조치와 비교하면 상당히 잔인하고 단호한 정책이라고 할수 있겠는데 이러한 조치는 훗날 트라야누스의 파르티아 전쟁때 나비효과로 돌아오게 된다. 다키아의 풍부한 금 은등의 자원들과 전리품들은 그후 로마제국 전역의 토목공사 등에 사용되었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를 본떠 트라야누스 또한 다키아 전쟁기를 서술하였다고 하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고 있고 다키아 전쟁의 일대 경위는 트라야누스 포룸에 부조로 조각되어 남겨져 오고 있다 [[파일:VpV4eR2.jpg]] 서기 2세기 초 하드리아누스 황제 시기 로마는 마음만 먹었다면 다뉴브강 부근에 살며 이당시만 하더라도 세력이 미약했던 야지게스족, 마르코만니족들을 병합하여 다뉴브강 방어선의 단축을 노리고 국경 강화 및 다키아 속주의 방위력 강화등을 노려볼수도 있었으나 재위 기간 내내 제국 순행을 통해 로마군의 정예화와 제국 방어선 역량 강화에만 매진 했던 하드리아누스에게 이 문제는 아직 피부로 와닿는 문제라 할수 없는 사항이었고 결과론적이긴 하나 마르코만니족, 야지게스족은 이후 아우렐리우스 시기 콰디족과 함께 로마군을 괴롭히는 다뉴브강의 북방 게르만족들중 주요 한 부족이 되어 오랜 세월 로마와 적대를 거듭하게 된다 170년 봄 게르만족들의 침입을 맞아 격퇴 하는 과정에서 다키아 속주에서부터 북상해 대규모 공세를 감행하던 클라우디우스 프론토가 이끌던 로마군은 이과정중에 사령관 프론토가 전사하고 2만명이 포로로 끌려가는 참사가 발생하게 된다 로마인들과의 크고 작은 교류 및 [[반달족]], [[고트족]]같은 먼 게르만족들의 남하가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시작된 부족들 간의 통합 과정을 통해 시간이 갈수록 제국을 닮아가며 정예화 조직화 역량 강화를 거듭해나가던 가까운 북방 게르만족들의 공격으로부터 다키아 속주 국경 방어의 어려움을 이미 오래전부터 잘알고 있었던 로마제국은 178년 5현제의 마지막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기 시작된 게르마니아 전쟁을 통해 다뉴브강 북쪽 지역에 보헤미아 속주라는 교두보를 확보 다키아 속주화를 통해 불가피하게 차질이 생기게 된 기존 선 방어 전략의 수명을 연장 시키고 선 방어 전략에서 아주 중요한 방어선의 단축 효과를 포함 이중 방벽 체제를 통해 다뉴브강 방어선의 강화를 노려 보고자 하였으나 180년 빈도보나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지병 악화로 인해 병사하고 그뒤를 이은 콤모두스가 돌연 취소함에 따라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183년 [[콤모두스]] 황제 시절에 다시 이 지역에서 전쟁이 발발하는데, 다키아족의 반란인지 아니면 게르만족 같은 야만족의 침략인지 자세한 정황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