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군조선 (문단 편집) == 상세 == [[일연]]이 쓴 《[[삼국유사]]》에 기록되었다.[* 정확하게는 단군조선이 아니라 '왕검조선'으로 기록하긴 했으나 둘의 차이는 없다.] [[조선시대]] 《[[동국통감]]》의 기록을 따른다면 기원전 2333년이 건국년이지만 이는 [[신화]]적 표현에 가깝고, 현대 한국 역사학계에서는 실제 건국년을 두고 여러 설이 오간다.[* 정확하게 말하면 언제 건국했는지 '''모른다'''가 정답일 것이다. 애초에 자료가 부족한 고대사란 것이 그렇기도 하고. 때문에 [[개천절]] 같은 개념 자체가 역사적으로 [[허구]]에 가깝다며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다만 아무리 늦어도 [[조선왕 1세|기원전 4세기에 요동을 중심으로 고조선이 존재]]했다는 것은 인정받고 있다.] 단군조선이 건국된 해를 기준으로 잡아 [[단군기원]]을 사용한 적도 있었다. [[단군 신화]]의 모태가 되는 국가이기도 하나, 근현대 들어 [[실증주의]]가 도입된 이후 한국 사학계에서 '단군조선'에 대한 의미는 조금 달라졌다. 신화 속의 [[단군]]을 역사상의 실제 인물로 인정하고 그 후손들에게 이어진 왕조를 뜻하는 전통적인 사관에서의 단군조선과는 다르게, [[위만조선]] 이전의 토착계 고조선 왕조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것이다.[* 고구려 [[안시성주]]의 실제 이름은 오늘날 알 수 없지만 대중적으로는 [[양만춘]]이라는 이름이 통용되듯, 실증적 실체는 없지만 대중적으로는 토착계 고조선 [[왕]]을 [[단군]]이란 상징적 표현으로 쓰는 식이다.] 이는 단군신화가 부분적으로 [[청동기시대]] 한국의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여 형성되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더불어 현대 역사학 도입 이전부터 단군조선은 한국의 독자성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단군은 창업 혹은 개국을 상징했고, [[기자(상)|기자]]는 문명의 교화를 상징했다. 물론 기자의 경우 지금까지 그렇다는건 아니고 [[기자조선]]이 인정되던 전근대의 역사관에서 그랬다는 것이다.] 상징하는 왕조로 받아들여진 이유도 있다. 그러나 이것도 편의적인 설명이고, 보통은 학술적으론 그냥 [[고조선]]이라고 칭하고 현행 역사 [[교과서]]에도 고조선을 '토착 고조선 - 위만조선'의 틀 안에서 설명하는 경우가 많다. 당대의 문헌자료와 고고학적인 발굴자료가 어긋나는데다가[* 대표적으로 [[기자조선]].] 고조선 당대의 사료 가운데 중국사서에 적힌 자료는 한정적이고 토착자료는 신빙성이 불분명한 자료가 대부분이라 단군조선이나 기자조선같은 왕조의 실존이나 부재 및 의미를 완벽히 밝혀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서 그렇다. 때문에 이를 감안하여 위만조선 이전 토착 고조선의 명칭을 그냥 고조선이라 부르기로 타협하는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