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단천시 (문단 편집) == 역사 == 대한민국 역사에서 고대 시대에는 동[[옥저]]의 영토였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의 영토 아래에 있었다. 6세기 신라 전성기에는 일시적으로 [[신라]]의 영토에 속하기도 했으며, 이는 [[마운령 진흥왕 순수비]]에 기록되어 있다. 남북국 시대에는 [[발해]]의 5부인 [[남경남해부]]의 일부였다. 발해 멸망 이후 [[여진족]] 치하에 있어 오림금촌(吳林金村)이라 불리다가 [[고려]]시대 여진정벌 때 윤관이 이곳에다 복주성(福州城)을 축성함으로써 한때 고려의 영토가 되었다. 이후 [[원나라]]의 영역으로 독로올(禿魯兀)이라 불리다가 공민왕대에 다시 수복하였다. 원래 이름이 '단주(端州)'였던 것을 [[조선]] 시대([[태종(조선)|태종]])에 들어와서 고려 시대에 지명으로 많이 사용했던 '주(州)'의 상당수를 '천(川)'이나 '산(山)'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단천'이 되었다. 1930년에는 이 지역에서 농민운동이 일어났고, 1년 후에 해체되는 신간회가 이 농민운동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때까지 북한 행정구역상 [[허천군]]의 남동쪽 절반까지 총 1읍 9면을 관할했었으며, 면적 2,386㎢였다. 광복 후 [[소련군정]]을 거쳐 북한의 통치하에 들었다. 1952년 군면리 대폐합 당시 수하면을 잘라서 새로 신설되는 허천군에 내어 주고, 광천면, 남두일면, 북두일면을 새로 신설되는 [[광천군]]에 넘겨주었다가 1974년 광천군을 다시 흡수하였다. 북쪽으로 길쭉하게 뻗은 지역이 구 광천군 지역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