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당나라 (문단 편집) === 초당(初唐) === 당국공 [[고조(당)|이연]]의 둘째아들인 [[태종(당)|이세민]]은 아버지[* 이연은 수 양제 양광과 이종사촌 관계였다. 해서 이세민은 양제의 이종조카가 된다.]에게 수나라 조정에 반기를 들 것을 진언하고[* 당시 [[수나라]]는 [[대운하]] 건설과 고구려 원정 실패 등으로 민심을 크게 잃었다.], 여러 곳에서 높은 전공을 세우며 건국에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이에 이연은 이세민을 '천책상장(天策上將)'에 봉하는 등 크게 신임하였다. 이에 불안해진 [[장남]]이자 [[황태자]] [[이건성]]과 [[삼남]] [[이원길]]이 이세민에 대한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등으로 세민은 위기를 맞게 되었고, 심지어 [[형제]]들간의 모임에서 [[독극물|독]]이 든 [[술]]을 마시고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이에 이세민은 스스로 군사를 일으켜 궁궐 안에서 형 이건성과 이원길을 살해하고('''[[현무문의 변]]'''), 직접 황태자에 봉해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이연은 스스로 이세민에게 제위를 물려주게 된다. 일각에선 당태종이 자신이 먼저 쿠데타를 일으키고는 이를 합리화시키기 위해 변명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태종(당)|태종]] 이세민은 국가의 제도를 총체적으로 정비하여 후대에 '''[[정관지치]]'''로 칭송받았다. 대외원정도 활발해서 수나라 때부터 눈엣가시였던 주변 세력을 연달아 격파했지만, [[고구려]]와 벌인 대결에서 ([[고구려-당 전쟁]]) [[연개소문]], [[안시성주]] 등의 활약으로 패배한 점이 오점으로 남았다. 뒤를 이은 [[고종(당)|고종]]은 [[측천무후]]의 진언에 따라 [[신라]]와 동맹을 맺고, [[백제]]와 고구려를 차례로 침공하여 승리했다. 내친 김에 [[신라]]까지 정복하려고 했으나 신라에게 패배([[나당전쟁]])하고 [[토번]] 전선의 약화가 겹쳐 실패하고 말았다.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토번]] 전선과 [[한반도]] 전선에 [[양면전쟁|둘 다 발을 담그고 있었고]], 두 전선 모두 무너지자 더 이상의 확장을 포기하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