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공(작위) (문단 편집) ===== [[파벨 1세]] 즉위 이후 ===== 1796년, [[예카테리나 2세]]가 사망하고 그녀와 [[표트르 3세]]의 장남이던 파벨 1세가 즉위했다. 파벨 1세 이전의 러시아는 황제가 직접 후계자를 선정하는 지명제로 황태자를 정했었는데 이 때문에 쿠데타가 자주 일어났다. 이에 서유럽에서는 러시아의 야만성을 비웃었는데 특히 [[볼테르]]는 예카테리나 2세와 서신을 교환할 정도로 친분이 있었음에도 지명제가 아니라 점령제가 아니냐며 예카테리나와 러시아를 대놓고 비웃을 정도였다. 또한 러시아는 여성에게도 계승권이 있었지만, 영국처럼 남성에게 우선권이 주어졌고, 러시아에서 여제가 즉위한 모든 경우는 황후 혹은 공주가 귀족들의 도움을 받아 쿠데타를 일으켜 자기 남편이나 친족들을 제거한 뒤 무력으로 오른 것이었다. 파벨 1세가 즉위했을 무렵엔 어머니의 쿠데타를 지원한 방계 황족과 귀족들의 권세가 막강했고 갓 즉위한 파벨 1세는 이를 누를 필요가 있었다. 파벨 1세는 아무리 황족이라지만 신하가 황제를 함부로 폐위시키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불쾌하게 여겼고, 특히 아버지인 표트르 3세를 폐위시키고 제위에 올랐으며 독살까지 한 것으로 추측되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라는 개인적인 감정과 자신의 부계가 독일계라는 점을 모두 이용해 [[살리카법]]의 원리를 러시아에 도입하기로 한다. 이에 1797년에 Pauline house law라는 황실 규범을 발표했다. 이 법의 효력으로 여성의 제위계승권이 박탈되었고, 이에 따라 황태자·황태자비 부부만이 차르에서 따온 '''체사레비치(Tsesarevich)'''[* 차르의 맏아들 정도의 의미이다.]와 '''체사레브나(Tsesarevna)'''로 불리게 된다.[* 그러나 영국 등 서구권의 매체에선 황태자를 차레비치로 틀리게 부르는 일이 흔했다고.] 대신 그밖의 남성 황족들은 '''벨리키 크냐지(Великий Князь)'''로, 여성 황족이나 남성 황족의 정실 부인[* 정실부인이라도 귀천상혼일 경우 해당 칭호를 받지 못했다.]들은 '''벨리카야 크냐즈나(Великая Княжна)'''로 불렸다. 동양식으로 따지자면 친왕으로 불리던 황족들을 대공으로 부르게 해서, 방계 황족들을 견제하고 본인의 권위를 높이려는 정책이었던 것. 체사레비치 작위를 만들고 시행한 파벨 1세의 정책은 러시아의 제위 계승 과정 중에 벌어지는 내전을 종식시켰고, 세습을 굉장히 원할하게 만들어 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