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공황 (문단 편집) === [[일본 제국]] === [[일본 제국]]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 국가들이 혈전을 벌일 때 유럽에 무기를 팔면서 돈을 번 결과 중국 무역을 독점하여 나리킨(成金)이라는 [[벼락부자]]가 나올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대전 종결 후 다시 유럽 국가들이 무역 전쟁에 뛰어들면서 [[쌀 소동]][* 이 쌀 소동으로 조선총독부 출신인 데라우치가 이끄는 번벌내각이 총사퇴했다. 이에 일제는 조선에서 가져갈 쌀을 늘릴 궁리를 하게 되는데... [[산미증식계획]] 문서 참고.]을 시작으로 1920년대에 불황에 시달리게 되었다.[* 다만 이때도 경제성장률 자체는 준수했다.] 공업화로 노동자들이 크게 늘었으나 주요 공업국들이 대전기의 폐허에서 일어나자 대전기에 크게 투자한 조선업(造船), 철강업 등 중공업이 경쟁력이 딸리게 되어 수출이 지지부진해졌고 이로 인해 노동 쟁의가 빈발함과 함께 면사 주 수출시장이던 중국이 일본의 제국주의 행보를 경계하면서 일본 상품 배척 운동으로 타격을 받았다. 농가의 주 수입이던 생사의 미국 수출도 감소하기까지 했다. 이러다 보니 1920년 3월 도쿄 증권시장의 폭락으로 본격적으로 공황에 빠져들었으며 '''[[관동대지진]]'''은 여기에 치명타를 입혔다.[* 관동대지진은 1922년 국민총생산액의 1/3에 이르는 피해액을 남겼다.] 이후 여차저차해서 회복하나 싶었지만, 긴축정책의 일환으로 1928년엔 [[금해금]](金解禁)을 결정하였다.[* 금 수출 금지정책 중단. 당시 일본은 열강으로 인정받던 5개국(영국,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중 금 수출 통제를 마지막까지 시행하던 국가였는데 국가재정 긴축에 들어갔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대공황이 터졌는데 당시 일본은 정부 시스템이 [[대일본제국 헌법]]에 따라 정책 결정 시 모든 장관들이 만장일치로 동의해야 하는 등 대공황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에는 지나치게 복잡한 구조였다. 때문에 군내에서 '무력한 정부와 싸움질만 하는 정당들을 다 갈아엎고 [[히로히토]] [[천황|덴노]]에게 절대권력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황도파 등 극단주의 파벌들이 [[2.26 사건|쿠데타]]를 일으키는 등 소동을 벌이자 정부는 점점 군의 요구를 들어주게 되고 한술 더 떠 상당수 일본 국민들이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 대전]] 등 전쟁경제로 인한 호황을 여러 번 경험했던 만큼 이번에도 징고이즘으로 경제 위기를 돌파한다는 군대의 정신 나간 주장을 지지하기 시작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1931년 [[관동군]]이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세워 수탈하는 방식으로 해결책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경제 대공황은 [[나치즘]]과 일본 [[군국주의]]의 정권 장악에 모두 일조를 한 셈.[* 이 과정에서 일본에서 [[5.15 사건]]과 [[2.26 사건]]이 터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